스포일러] 기생충

2020.02.10 16:40

겨자 조회 수:1456

유튜브에 나와 있는 클립을 몇 개 보고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유튜브 클립만 봐도 제가 감당하기 힘든 영화일 거라는 게 짐작이 되더군요. 봉준호 감독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해, 관객이 정지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감독의 리듬 대로 흘러가야하는 체험이라고 말하더군요. 영화관에서 봤으면 마음이 괴로워서 중간에 뛰쳐나갔을 겁니다. 이 가족이 추락하는 걸 보기가 괴롭습니다. 특히 폭력 나오는 장면은 건너 뛰고 봤어요. 


왜냐하면 저는 기우, 기정이네 가족이 잘 되기를 바랬거든요. 기우 기정 둘 정도 취직했을 때 여기서 그만하지, 기우 기정 기택 셋 정도 취직 했을 때 그만하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이게 임금 노동자의 삶을 메타포로 잡은 거라면, 아마 셋 정도 취직했을 때 이 가족은 그만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보통 임금 노동자들은 (제 경험으로는) 풀타임으로 일하면 초죽음이 되거든요. 나머지 시간은 쉬어야 해요. 집에 가사노동, 돌봄노동 전담해줄 사람이 있어야, 두 세 명의 임금 노동자들이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어요. 기우, 기정이는 일주일에 세 번 두시간씩, 일주일에 네 번 일한다고 하지만, 사실 기택씨가 하루종일 일하는 노동은 만만하지 않아요. 


영화는 1초도 낭비 없이 마지막 장면까지 달려갑니다. 1/3 정도 지났을 때 이미 많은 이야기가 흘러가 있어요. 이 영화가 왜 앙상블 상을 받았나 이해가 되네요. 배우들이 대사를 치고 받아내는 게 조화를 이룹니다. 그렇다고 캐릭터들이 흐릿하거나 흐트려지는 것도 아니예요. 박사장 역할의 이선균, 최연교 역할의 조여정도 연기가 참 대단하네요. 


볼 때마다 인상적인 부분이 제게는 다른데, 오늘은 이 대사가 기억에 남더군요.


“전 사실 그 아주머니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구요, 그 공중보건, 또는 보건위생의 관점에서 인제 어쩔 수 없이 말씀을 드린 건데, 그게 자칫 오해를 하며는 제가, 고자질이나 하는 그런...”


(중략) 


“저기, 손은, 씻으셨어요?”


미국에서도 이 작품을 보고는 제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절실히 중요한지 아니까, 상당히 공감을 샀는가봐요. 


제인 폰다가 작품상 발표 전에 한 템포 쉰 게 인상적이더군요. 이 분, 배우 답게 드라마틱한 리듬을 아네요. 이병철 회장의 손녀, '묻어둔 이야기'란 책을 낸 이맹희씨의 딸, 미키 리가 단상에 올랐네요. 건어물, 능금 팔던 상회의 손녀딸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영어로 소감을 말하는 날이 오는군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박태원 외손자가 감독상을 비롯 오스카에서 상을 네 개나 받구요. 한국 사회의 자본과 재능이 지난 백일년 동안 쉴새없이 축적되어왔다는 뜻이겠죠. 작년이 한국영화 100주년이었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1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7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52
123801 오늘 있었던 일.. Apfel 2010.07.06 1639
123800 정말... 손은 눈보다 빠르더군요. [2] 클로버 2010.07.06 2635
123799 멕시코만 원유유출 &... [4] 프루비던스 2010.07.06 2006
123798 훼미리마트에서 핫식스 1+1 하네요. [6] hwih 2010.07.06 2977
123797 제 기준에선 전혀 의외의 인물이... [2] 메피스토 2010.07.06 4188
123796 늙었어요. [9] art 2010.07.06 2587
123795 [바낭] 심야영화 보러가요 [6] 서리* 2010.07.06 1998
123794 구로사와 아키라전 인기폭발이네요 ㅠㅠㅠㅠ [18] 빛나는 2010.07.06 3402
123793 [음악+바낭] 정재일 2번째 앨범, 그리고 난 쫒겨날지 모른다.. [7] 서리* 2010.07.06 2756
123792 오늘 동이... [51] DJUNA 2010.07.06 2140
123791 오늘 구름의 모양새와 커피잔에 남은 찌꺼기를 가만히 보니까 [1] 셜록 2010.07.06 1954
123790 구미호 2회 시작합니다. [101] mithrandir 2010.07.06 2365
123789 사진을 찾습니다. [1] nishi 2010.07.06 2727
123788 지금 듀게에 하나 바라는 것... [17] nishi 2010.07.06 3139
123787 [듀나in] 로자 룩셈부르크의 시신 말이예요 [1] 무한자와우주와세계 2010.07.06 2199
123786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분들께 [4] zucchini 2010.07.06 3489
123785 포미닛 신곡;주격 소유격 목적격 소유대명사 MV [18] 메피스토 2010.07.06 3999
123784 슈퍼스타 K 시즌 2가 23일부터 방송되는군요. [1] Jager 2010.07.06 1901
123783 잡담...입니다. [1] Mothman 2010.07.06 2055
123782 "개 식용을 반대한다면 모든 동물 식용을 반대해야한다" 라는 진중권 씨의 발언 [45] 프레데릭 2010.07.06 486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