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참 장혜영

2020.03.03 22:34

Sonny 조회 수:741

현재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선거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장혜영씨를 좋아합니다. <어른이 되면>이라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장혜영이란 사람은 저에게 어떤 표본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를 훌륭하다거나 뛰어나다고 평가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의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을 "감동"이라는 드라마틱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 부당하다고도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삶은 과연 이렇게 보여지고 감상으로 결론지어질 수 있는가, 그런 의문을 더 많이 품었습니다. 그가 직접 보고 느낀 부조리와, 부조리한 세상이 한 인간 자체를 부조리로 오해시키는 그 과정을 보면서 긍정적인 피로를 느꼈습니다. 그의 영화는 장혜영의 동생 장혜정이 혼자 스테이크를 먹지 못하던 지점에서 출발해 장혜정이 혼자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지점에서 끝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장혜영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필요 이상의 책임에 얽매여있는지 영화는 고스란히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 영화를 인간극장 같은 "휴머니즘"으로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현재진행형 인생을 담은 영화는 저에게 있어 세상을 해석하는 전혀 없던 첫문단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제가 장혜영을 지지하는 감정은 여타 정치인들을 향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전에는 "저 사람이라면 세상을 조금 더...!" 같은 일종의 히어로이즘을 정치인에게 투사했습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고 고정된 세상을 조금씩 움직여내는 거인 같은 느낌으로 숭배했죠. 그리고 모조리 실패했습니다. 한 때는 제가 정치에 결국 무관심하고 사람의 팬질을 못하는 체질이라 그런가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정치를 해석하는 관점이 조금 달라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저는 정치를 의지와 지혜와 매력이 뛰어난 소수의 경연장으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망가진 세상을 복구하는 것을 보며 굉장해!!! 하고 감탄하는 것이 제게는 이제 좀 이상합니다. 정치인이 찬양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 장혜영은 제가 희망의 개념을 달리 제시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고통이 소거된 미래시제 문장이 아니라, 고통이 가득한 현재시제 문장을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가 너무 순진무구한 소리를 하고 있나 싶을 떄 좀 슬퍼집니다. 온라인에서의 키배를 오프라인에서 펼칠 수가 없기에 개념과 가치관이 충돌하면 그 때부터 저는 좀 막막해집니다. 차라리 상대가 개빻은 소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대놓고 화를 낼 수 있거나 싸늘하게 경고를 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오프라인에서의 혐오란 조금 더 은근한 것들입니다. 나쁜 건 아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 에이 웃자고 한 소리지 뭐. 아니 근데 따지고 보면 솔직히 그렇잖아? 전력으로 응하지 않을 상대에게는 가시를 곤두세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싸스러운" 혐오가 슥 하고 저를 흝고 지나갈 때 별 수 없이 저는 좀 소외감을 느끼고 맙니다. 정색하지도 못하고 진득하게 설득하지도 못하는 제 자신이 좀 깝깝합니다. 더 힘든 것은 이 가치관이라는 게 결국 정치적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상대를 비난하는 포지션으로 흘러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저라고 해도 누가 절 자꾸 지적하고 입바른 소리를 하면 좀 짜증이 날 겁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딱히 화나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특히 오프라인에서의 주변인들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상대방은 항상 언짢아하고 자신의 도덕적 하한선을 지키기 위해 감정적으로 자신을 무장합니다. 이 과정은 전혀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혜영은 이걸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은 욕을 먹으면서, 기어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를 볼 때면 그래서 덜 슬퍼집니다. 나보다 더 한 인간이 저기 있구나. 지금 내 기분이야 일시적인 거지 뭐.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말할까. 이 사람은 좋아하고 싶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말할까. 너무 쉽고 단정적인 말들, 여성, 장애인, 활동가, 빈곤층, 조선족, 노숙자 등 다른 약자들을 향해 쉽게 비웃거나 이해해보고자 하는 말들을 가볍게 묵살할 때 저는 이해와 설득의 상충된 의지 속에서 마음만 어지러워집니다. 저는 당신을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당신과 제가 세상을 더 넓게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 뿐이에요. 그럴 때 저는 졸지에 나이브하고 착한 척 하는 인간이 되고 말죠. 그럴 때 장혜영을 생각합니다. 저보다 더 절실하고 더 가까이 붙어있는 "어떤 사람"을 포기할 수 없어서 더 많은 사람과 세상을 포기할 수 없던 그는 저보다 얼마나 고되고 피곤할지. 그리고 저보다 얼마나 이 피로한 과제를 능숙하게 다룰지. 사실 두번째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첫번째가 더 중요한 이슈죠. 저는 장혜영을 떠올릴 때마다 괜히 위로를 받습니다. 이렇게 피곤하고 진지하게 사는 인간이 뭐라도 해볼려고 아둥바둥하는 게 제가 실생활에서 겪는 흐리멍덩한 노력을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거든요. 저야 표를 받을 일도 없고 시간 지나면 다 풀릴 사이거나 안보면 그만인 사이들이지만, 장혜영은 그렇지 않잖아요. 저보다 더 악독한 상황에서, 저보다 더 지독한 노력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괜히 희망을 갖습니다. 세상에는 장혜영 같은 사람도 있는데 장혜영만큼은 아니어도 장혜영처럼 생각많은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장혜영만큼 외롭고 슬픈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그래도 좀 힘차게 마무리해야겠죠? 아무튼 정치인 응원글인데... 장혜영이 나중에 정의당 장혜영! 대한민국 장혜영!! 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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