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지난 금요일 늦은 오후 회사에서 일하는 중에, 제 핸드폰으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얼핏 번호 앞자리가 9월에 예약해 놓은 종합검진 병원센터와 비슷해 보여서, 예약 확인차 전화를 건 줄 알고 전화를 받았지요.

  

  그런데 전화를 받아보니 으레 예상했던 여성간호사님이 아닌 걸걸한 남성분이 전화를 거셨더라구요. 의아해서 누구시냐 하니까 제 사는 지역 구청 공무원이 연락을 한 것입니다. 이유는 815 집회 관련하여 역학조사중인데 해당구역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구요.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제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냐고 반문하니까 집회장소 인근의 통신사 기지국에 검색되는 모든 번호로 전화를 하는 거라고 하네요. , 제 거주지가 집회장소가 있는 동네이긴 합니다만, 당연히 저는 집회랑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구요, 그리고 인근에 산다는 이유로 연락을 받는 것이라면 해당일로부터 잠복기가 끝난 이 마당에 이런 전화를 받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서 이게 필수의무사항인 것인지 이행하지 않을 시 불법에 해당되는지 자꾸 물었더니, 이 공무원 분이 아주 고압적으로 그래서 검사를 받겠다는 거냐 안 받겠다는 거냐 둘 중에 대답만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난데없는 전화 받고 놀랄 사람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고 짜증 섞이고 일방적인 말투에 너무 화가 나서 이런 갑작스러운 연락 받고 놀랄 사람은 생각 안하고 검사 받으라는게 무슨 명령이냐, 왜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무고한 시민들만 무조건 협조하라는 것인지, 당신 같으면 이런 전화를 받고 검사를 받고 싶은 마음이 들겠냐고 한 마디 하고 끊어버렸거든요.  

 

  하지만 큰소리와 달리 곧바로 올라오는 불안감. 815일 토요일의 내 동선을 자꾸만 복기하는데 미심쩍은 순간이 하나 있었거든요. 저는 사실 그날 집회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주말 늦잠을 자고 정오쯤 일어나 폭우가 엄청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학원을 갔을 뿐이고 3시간 넘게 열심히 수업을 받고 너무 허기진 첫 끼니를 때우러 근처의 식당을 갔을 뿐입니다. 저녁식사를 하기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종종 가는 동네 식당이라 별다를 것도 없었고, 그날 따라 다른 날보다 손님이 좀 더 많긴 했지만 답답하게 만석도 아니라(코로나 이후엔 어딜 가도 사람 많은 곳은 피하는 탓에), 혼자서 밥을 시켜 먹고(그러니 주문할 때 빼고는 당연히 마스크 벗고 누구와 대화를 나눈 적도 없음) 1시간 이내에 조용히 나왔을 뿐인데, 하필 그 식당이 이번 급증된 코로나의 확진자가 출몰한 식당인가 싶으니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었구요. 역시 사람은 자기에게 닥치는 일이 아니면 실감할 수 없었던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이 몰려와 유사 증상이 없는지 체크하고 또 해봐야 나오는게 없지만, 저는 검사를 받아야할 운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직장에 묶인 몸이라 주말 밖엔 시간이 없으니 결국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 밖에 없는데, 주말은 작품반 마무리와 정부에서 내려온 공지시책에 따라 31일부터 휴원결정을 내려 여러모로 당분간은 마지막 수업이 되는 상황이었던 거에요. 뭐랄까…. 사람이 뭔가 자꾸 몰두하고 집착하면서 어떤 순간 어떤 부정적인 촉이 올 때가 있는데, 제가 이번 작품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열심히 어느 때보다 열정을 쏟았고 무대의상 까지는 아니지만 캐릭터에 맞는 의상까지 생각해 놓은 상황이었어요. 혼자서 연습을 마치고 연습실을 나와 집까지 걸어가며 마시던 딱 한 캔의 맥주맛이며, 그때그때 느껴지던 충족감으로 장마와 코로나 때문에 집콕하느라 날려버린 여름휴가도 하나도 아쉽지 않았고, 그나마 나에겐 발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가, 불현듯 아주 잠깐, 나 이거 진짜 잘 하고 싶은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싶은 불안함이 전구불처럼 번쩍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결국 그 불안한 촉이 이렇게 실현이 되는가 싶으니 사실 저는 제가 코로나 확진이든 아니든 그 보다는 이 작품을 마무리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슬프고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거에요. 그리고 만약 내게 무슨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모른 채 다녔던 학원에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공간인데 어떤 피해가 갈지, 내 신상은 어디까지 공개가 된다는 것인지, 그렇게 혼자 고상한 척 하더니만 결국 이런 피해를 주느냐는 다른 회원들이 원성이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아 질식할 것 같았어요. 맞아요. 저의 제일 큰 두려움은 닥치지 않은 고통을 아직 모르는 건강에 대한 염려보다는, 제가 어찌되면 누가 고양이를 돌보나, 동시에 사방팔방에 떨치게 될 사회적 망신살 같은 것이었지요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을 듣지 않는다 한들 그동안 다녔으면 이미 전파가 됐을 텐데? 라는 위험천만한 합리화로 갈팡질팡 하면서 금요일 저녁 약속된 개인레슨은 취소하고, 혼자서 연습실을 2시간 빌렸는데 그전까지 그렇게 날아갈 듯 하던 모든 동작들이 순서들이 다 엉키면서 한없이 무겁고 휘청이는 경험을 하게 됐어요.

  

  사실은 며칠 전에 연습실에서 이 작품을 혼자 연습하면서 그날따라 너무 잘 되고 아무리 혼자 하는 연습이라지만 실수없이 완벽히 잘 되는 날이어서, 저조차 알 수 없는 희열 때문에 엉엉 운 적이 있었어요. 살면서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쉽지 않은데 그 날이 그런 날이었던 것이죠, 이번 만큼은 내가 제대로 잘 할 수 있다는 어떤 확신과 제대로 몸을 쓰는 개운함을 드물게 같이 느꼈던 날인데 며칠 만에 이렇게 엉망이 되다니. 2시간을 어떻게 채웠는지 모르게 허덕이다 그냥 연습실을 나오면서, 나는 과연 마지막 수업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채요. 정작  주말 수업 전에 1시간 더 예약을 해놓은 상황이라 그때까지 결정을 하자는 생각에 결국 밤새 뒤척이다 밤을 새우고주말 아침, 특별한 가족행사 또는 아주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아니면 세상에 절대 일어날 수 없었던 아침잠을 다 포기하고 핸드폰 알람에 맞춰 일어나 연습실로 향하게 되는데… …

     

  2. 주말의 보건소는 종잡을 수 없는 올해의 모든 상황의 살풍경 같고, 뒤늦은 폭염은 마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복수심에 불타서 찾아온 혼외자식처럼 버겁고 낯설기만 했어요. 주말이라 마감시간이 이른데 무엇이 그토록 두려워 미적거리다 기어이 낯술을 딱 한 잔 마시고, 사전에 보건소로 또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상황을 챙기며 제 두려움을 호소하면서도, 결국은 가야 했죠.

  

  무슨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모자에 선그라스에 마스크에 양산까지 중무장하고 느릿느릿 걸어가서 보니 그 더위에도 방호복 입은 분들이 접수를 받고 저처럼 구청에서 연락 받은 사람은 이미 등록이 됐는지 신분증만 보여주면 조회가 되더라구요. 저는 그 와중에 조금 놀란 것이 이런 시국에도 출입국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며, 그들은 무슨 사연과 목적으로 이 위험한 비행을 감행한 것인가 하는 호기심, 그리고 유리벽으로 전면 차단하고 마스크까지 낀 상태이니 본인의 신원정보를 마이크에 대고 얘기를 하다보니 뒤에서 대기중인 사람에게도 노출이 된다는 불편함. 물론 누가 그것을 악용하겠는가만,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보안 등이 그냥 다 못마땅한 채로, 떠듬떠듬한 한국어와 어색한 영어 사이로 개인신상을 말하는 중국교포들과 보건소 직원의 대화를 망연히 듣고 있자니 이 시국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기란 이미 사치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 비닐장갑 낀 손으로, 신분증을 끼어 넣고 전화번호를 대고, 몇 가지 신원을 또 확인하고 호명하는 번호로 가서 몇가지 사실을 또 말해야 하는데, 전화로 문의할 때는 하고싶은 얘기가 있으면 검사할 때 상담해도 된다고 했지만 이미 보건원은 기본 신원을 전달받는 것으로 지쳐 보여서 진단키트 받고, 옆 번으로 또 이동. 수십 년도 넘게 살아서 이미 늘어진 내장과 살가죽임에도 검사는 아팠습니다. 특히, . 검사를 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이 너무 차갑고 지쳐보여서 더 위축됐는데 검사 할 때 아파서 잠깐 움찔하니까 움직이면 다칩니다라고 어찌나 근엄하게 말씀하시는지 그래서 얼음검사 통보를 받고 고민하고 망설이는 시간에 비해 너무 짧고 강렬히 끝난 검사였어요. 집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항목에 도보로 간다고 하니, 절대 어디 들르지 말고 집으로만 가야한다고 해서 네네 알겠다 했는데 오다가 너무 지쳐서 아무도 없는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한 30분 멍하니 흐린 하늘을 올려다 봤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아주 간단히 밥을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가 결과가 나올 만한 시간까지 몇 번을 깼는지, 지금까지의 모든 대기보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어요. 전에는 오전에 일찍 통보가 됐다는데 이번에는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번 주말 검사자도 너무 많아져서 더 늦어지는 듯 했어요그 초조함을 달래려 가라님의 코로나검사 후기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불안초조한데 아내와 자녀분까지 두신 가라님은 그래도 덤덤하고 무던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뭔가 더 성숙하게 느껴졌구요. 저에게 도움이 되라고 쓰신 글은 아니었지만 몇번이고 정독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도 미친 듯 검색하면서결과적으로 문자가 오면 다행인데 보건소에서 직접 연락이 오면 바로 격리조치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그런데 11시 넘어가도록 아무 연락은 오지 않고나는 혹시 이송될지 모르는 이 상황에 염치없게도 배가 고파져 마지막 끼니로 그래 라면이나 먹자 하며 냄비에 물을 올리는 순간, 묵직한 진동 문자음멀쩡하니 이렇게 손가락 놀리며 글을 쓰고 있지요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이게 음성이 맞는 건지 양성이 맞는 건지 갑자기 헛갈려서 또 가라님 글 찾아보고 안도했어요.

 

  평소엔 그렇게나 출근하기 싫은 아침인데, 없는 회의 주제 만드느라 머리 쥐어짜더라도 내 책상에 앉아있는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싶고, 내가 확진자가 되었다면 나를 미워했던 모든 사람들은 잘난척 하더니 잘 됐다 싶을 것이고, 그나마 저를 좋아해줬던 사람들이라도 사람은 본인의 안위가 우선이니 발을 떼며 본인들에게 전염이 되지 않았을까 나를 원망하겠지 싶은 생각에, 그리고 고양이는 우리 고양이는 누가 돌보나? 수천 수만 번씩 되풀이 되어 머리통 밖으로 기어나올 것 같은 이 고민의 종료버튼은 보건소에서  눌러주셨어요! 너무 안도가 되고, 구청직원분과 다르게 너무 친절하고 자상하게 인내심을 갖고 시민을 안심시켜 주시던 분들이라, 문자 받자마자 바로 전화드려서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인사드렸습니다.       

 

  3. 활기가 넘치는 광장을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고즈넉한 개인의 삶들이 있고, 큰 의미와 울림이 있었던 함성들, 촛불들, 몇 번의 영결식과 축제들로 교통이 마비되어 일상생활적으로는 불편함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사랑했던 동네, 이따금 늦여름 밤이면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께 각각 열 번씩 큰절을 하며 원을 크게 돌아 걷고 뛰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가장 큰 운동장이 되어 주었던 이 곳에 대한 회의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쉽게 떠날 수는 없겠죠.

 

   4. 작품은 결국, 어찌어찌 마무리를 했어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침착함을 잃어버린 모든 동작이 한 박자씩 빠르고, 턴은 다 엉킨 채로 겨우 돌고, 점프는 꿀렁거린 채로 날지 못하고. 하지만 연습하면서나마 완벽했던 희열감으로 울어도 봤으니 미련은 거둬야겠지요. 이번 코로나검사가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게 일종의 해프닝으로 지나갔으니 그것이 제일 다행입니다. 특히 너무 많은 애정을 쏟고 있는 공간과, 이즈음 제 일상 주변의 사람들에게요. 짧지 않게 살아온 인생인데, 남은 인생의 길이가 어떠하든, 타인과 연루된 삶을 살아가는데 좀 더 조심하고 겸손할 필요가 있다고 처절하게 느꼈으니 이만하면 됐습니다.

 

 5. 모두 지치지 마시고, 부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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