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에 댓글로 달까 하다가 좀 길어질 수도 있고, 글의 본문이랑은 조금은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따로 글로 남깁니다

종교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어딘가는 사람을 끊임없이 가르쳐서 인류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을 가진 종교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단 우리가 흔하게 아는 주류 종교들은 그렇지는 않지요. 뭐 잘 모르는 분야 넘겨짚고 싶지는 않으니 개신교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모하메드도 부처도 예수도 가르침을 주던 사람들이고, 당대에 자신을 선생님으로 모시던 제자 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던 건 맞아요. 그런데 이게 종교화 되는 과정에서는 좀 달라집니다. 중요한 건 배우는 게 아니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거든요. 기독교는 특히 그래요. 일종의 선각자, 선지자인 모하메드와 부처와 달리 예수는 곧 신이죠.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주 소수 종파도 역사적으로 꾸준히 있어왔긴 하지만 주로 이단시 되기 십상이고, 그래서 제거되어 왔으니 그런 예외는 잠시 내려놓고 생각합시다) 그렇다면 예수를 중심으로 모인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건 가르치는 게 아니고 가르침을 받드는 일이 되는 겁니다.

아 물론 종교 초심자에게 어느 정도의 기본은 가르쳐야겠지요. 우리 종교가 어떤 전통을 가졌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상태로 그 종교인이라고 칭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이건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평범하게 취미 생활만 하더라도 초기에는 학습의 단계가 선행되고(이를테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거나 게임의 룰을 익히는 등), 어느 정도 습득된 다음에 본격적으로 취미를 취미로서 즐길 수 있게 되는 거랑 비슷한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그 자체가 본질은 결코 아닌 거지요. 

근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혼동합니다. 종교 외부에서 잘 모르는 거야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심지어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그래요. 이건 왜냐하면 초기에 학습 단계에서 머물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이를테면 개신교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예식에 마음을 들여 참여한다는 거거든요. 예배를 드리는 주체는 집례자가 아닌 각 개인이 됩니다. 근데 많은 한국의 개신교도들은 설교 안 졸고 잘 들었으면 예배 잘 들은 거라고 생각해요. 오늘 목사님 설교 참 감동적이었다. 좋은 예배였다. 이렇게 가요. 아주 잘못된 거죠. 각 개인의 주체성을 상실한 종교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시대 한국 개신교의 각종 만행을 통해 듀게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하여간.

그렇다면 바이블(경전)을 원어로 읽고자 하는 노력은 이 종교의 수행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밑에 글에는 친절하게 가톨릭의 사례를 댓글로 설명해주신 분이 계시긴 한데, 일반적인 개신교의 상황은 그거랑은 또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게, 교황청 중심의 일괄적 해석에 반기를 들고 종교인 각 개인이 각자의 신앙을 각자의 언어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프로테스탄티즘의 시작이었으니까요. 각 개인이 원하면 원전 찾아보면 됩니다. 어느 정도는 개인적 해석을 할 수도 있고요.

물론 개신교라고 해서 천태만상이 다 허용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종교개혁 이후로 또 수백년이 지났고, 여러 종파가 형성된 데에는 그 종파 안에서 공유되는 나름의 신학적 논리들이 있는 법이거든요. 남들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데도 그 안에서는 이단이니 아니니 머리채 잡고 싸우는 것도 결국 그런 맥락인 거고요. 이를테면 한국 개신교의 가장 대표적 교단인 장로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건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기장 교단이나 보수꼴통으로 악명 높은 예장합동이나 동일해요. 그걸 벗어나면 더 이상 장로회적 전통이라고 할 수가 없는 거니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성경을 좋아하고 종교적 신심이 돈독한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학습을 하지 않는 걸까요? 사실 하는 사람들은 해요. 꼭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배우는 차원이 아니더라도, 일반 교인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학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끝까지 성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시도를 하는 사람은 의외로 조금만 둘러보면 금방 찾아볼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나머지가 그렇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죠. 대다수는 거기에 관심이 없으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요. 

유럽 고전 문학의 예를 드셨는데, 맞아요. 관심이 있어서 읽고 연구하다보면 원전도 찾아서 보고 또 다른 사람들이 해석해놓은 것들도 비교해서 읽어보고 할 수도 있죠. 근데 돈키호테를 17세기 스페인어로 읽을 수 있어야 돈키호테 팬이라고 할 수 있나요?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 팬은 세르반테스의 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맛보지 못한 걸까요? 혹 그렇다 하더라도 뮤지컬 팬으로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면 그건 또 뭐가 문제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89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29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674
123568 지리산 정상부에도 골프장이 생긴다네요 [4] 말러 2023.06.25 435
123567 밴드 오브 브라더스 (2001) [4] catgotmy 2023.06.25 256
123566 토드 볼리가 포르투갈 구단 인수하려나 봐요 [1] daviddain 2023.06.25 130
123565 Frederic Forrest 1936-2023 R.I.P. 조성용 2023.06.25 120
123564 참외 껍질 첨으로 먹었습니다 [4] 가끔영화 2023.06.25 265
123563 프레임드 #471 [4] Lunagazer 2023.06.25 90
123562 A24 신작 프라블러미스타, 슈퍼마리오 RPG 리메이크 예고편 [1] 상수 2023.06.25 221
123561 러시아 쿠데타 사태 [5] 상수 2023.06.25 623
123560 [바낭] 영국인들이 (10년 전에) 뽑은 최고의 기타 리프 베스트 5 [14] 로이배티 2023.06.24 614
123559 [티빙바낭] 본격 20세기 동성애 학습 로맨스 '체이싱 아미' 잡담입니다 [10] 로이배티 2023.06.24 407
123558 챗봇 너무 똑똑하다 하였더니 [1] 가끔영화 2023.06.24 303
123557 레트로튠-나일 로저스 & 쉭, 굿 타임스!! [4] theforce 2023.06.24 135
123556 넷플릭스 프라이버시 [4] theforce 2023.06.24 330
123555 아마존 프라임 7일 무료후 재가입 [2] catgotmy 2023.06.24 235
123554 에피소드 #42 [4] Lunagazer 2023.06.24 80
123553 프레임드 #470 [4] Lunagazer 2023.06.24 85
123552 [영화바낭] 아무튼 그림이 예쁜 SF, '베스퍼'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3.06.23 398
123551 프레임드 #469 [2] Lunagazer 2023.06.23 101
123550 영화와 드라마의 장점과 차이 [2] catgotmy 2023.06.23 341
123549 메시가 음바페한테 바르사 가라고 함/로마노 잡담 조금 더 [3] daviddain 2023.06.23 18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