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다녀보니

2022.02.21 16:37

Sonny 조회 수:578

한 10년 전인가? 베프의 영업에 이끌려 교회를 1년 반 정도 다닌 적이 있습니다. 뭐 실상은 사교용이었죠... ㅎ 

제 베프가 생전 그런 이야기를 안하는데 항상 고마운 마음도 있고, 무슨 예배를 들으라는 게 아니라 외부인들을 불러와서 밥먹는 행사를 한 몇주 동안 한다는 겁니다. 

자취하신 분들은 다들 아실 거에요. 혼자서 먹는 집밥이나 인스턴트가 얼마나 지겨운지... 친구 면도 세워주고 맛있는 밥도 공짜로 먹겠구나 하는 나름의 합리화를 꾀하고 교회를 갔죠.

막상 참여해보니 대화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사람들이랑 금새 친해졌던 기억이 나요. 저는 그 당시 지금보다 더 짓궂었고 교회 사람들은 대단히 착해서 저의 하찮은 유머로도 인싸 흉내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3주인가 나가니까 어느새 발에 주님의 족쇄가 채워져있는 느낌이... -_-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에 나오면 발담그기? 문넘어가기? 어쩌구 전술이 나오잖아요. 일단 어떤 경계를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레 그 다음 다음 요구도 들어주게 되고 어떤 조직에 합류도 하게 되고...

쏘니야... 너는 나의 피와 살을 먹었으니 먹튀는 아니될지어다!!! 라는 양심의 소리가 주님의 목소리로 번역되어 저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이래서 저승에서 밥을 먹으면 이승으로 돌아갈 수 없다거나, 한끼라도 얻어먹었으면 부탁을 들어줘야한다는 그런 계약 관계가 설화로 내려오나 봅니다.


그리고 교회 예배를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한지 한 주만에 저는 수련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자고 하는 영업에 으헤헤... 하면서 따라갔습니다. 교회 유경험자인 저에게도 진도가 좀 빠르긴 빨랐죠.

저는 처음으로 교회를 가 본게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를 따라서 순복음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던 건데, 방언 기도를 처음으로 접해서 많이많이 매니매니 당황했습니다.

아직도 익숙하진 않습니다... 그게 바로 나일론으로서의 저의 숙명을 극복하지 못했던 경계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렇게 아주 쎈 첫 체험을 하고 나니 다른 건 뭐 그냥 심드렁~ 

찬송가 부르면서 심취하신 분들을 보는 것도 뭐 그 때 방언을 처음으로 듣고 놀랐던 경험에 비하면 껌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미 교회 거부감에 대한 항체같은 게 있었던 셈이죠.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야훼의 집을 만남의 집으로 불순하게 써먹은 것 같지만... 의외로 전 성경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약간의 욕심 같은 게 있었거든요. 내가 믿을지 안믿을지는 하늘의 그분께 맡겨보고, 일단 텍스트로 많이 나오는 성경을 이 참에 "찐"으로 배워두면 좀 좋지 않을까 하는.

그 교회의 청년부는 모태신앙들이 많아서 오히려 예배시간에 엄청 졸고 그랬습니다. 목사님도 익숙하고 설교 내용도 익숙하고~

오히려 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열심히 듣곤 했죠.  

언제 한번 목사님이 우리 청년부 남자들은 성경 공부를 너무 안한다, 청년부 여자들은 성경도 열심히 읽고 교리문답(?) 같은 것도 잘하는데 남자애들은 너무 출석만 한다면서 한번 성경공부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저만 안졸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이지 20세기 꽁트의 한 장면처럼 다들 고개가 꺾이거나 모가지 진자운동을 해대는데 제가 다 민망하더군요.

아마 그런 게 있었을 겁니다. 저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모든 게 좀 신기하고 낯설었거든요. 하지만 모태신앙 친구들에게는 너무 반복적인 설교였겠죠.

예습을 해갔는데, 제가 묻지도 않은 부분을 "아마 이런 부분에선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도 있을텐데~" 하면서 딱 짚어주셔서 목사님께 놀랐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서 교회에 익숙해질 수록 조금 실망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다들 성경에 호기심이 없지...? 이런 느낌

특히 예배가 끝나고 큐티를 하면 뭐가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만 오가거나 성경 내용을 그대로 복붙하면서 좋았다~ 이런 것만 있는 겁니다.

이를테면 지난 주에 이렇게 살았는데 이번 설교 내용 때문에 반성했다, 앞으로 더 신실하게 살아야겠다 하는 일종의 틀 같은 게 있는 듯한...

그에 반해... 저는 주님의 집에 있되 아직 그 양떼에 섞이지는 않은 느낌으로 이런 저런 질문을 셀장에게 퍼부어댔죠.

이건 왜 이렇지? 이건 이런 뜻인가? 이건 어떤 내용이지? 등등... 불쌍한 셀장... 당시 저 때문에 진땀 흘리던 게 생각납니다.

정말 부지런히 목사님께 질의응답을 드리고 갖고 오느라 고생했죠 ㅎ

그런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니, 외부인인 나도 이렇게 성경을 읽고 의문을 갖는되 정통 신자인 당신들(?)은 왜 이렇게 성경을 독해하지 않는 것인가!

목사님이 설교 때 했던 이야기에 혼자 업된 것도 있었습니다. 

신앙심이란 바람빠진 자전거 바퀴 같아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는 게 그 바퀴에 공기를 채워주는 거니 냅다 하나님 말씀이라고 믿지 말고 스스로 반문해보면서 그 뜻에 다가가보라고 하셨죠.

지금 생각해봐도 꼭 신앙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삶의 여러부분에 적용되는 진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맹신은 몰이해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교회를 안나가고 나중에서야 그걸 좀 이해하게 되더군요.

어떤 면에서 저는 기독교의 신과 감정적으로 전혀 연결된 바가 없으니 그걸 계속 지적 호기심으로 다가가려는 느낌?

그러나 모태신앙으로서 생활적인 부분에서, 혹은 영적인 기도로서 신을 찾고 부르면 그런 탐구심이 크게 필요없을 수도 있겠죠.

기독교에서 신의 말씀은 해석이 아니라 체화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간단한 말에 무슨 해석이 필요하고 원어의 독해가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고 다른 컨텍스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해석의 끝은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도덕일 것입니다.

이걸 일주일간 열심히 실천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울 것입니다. 살다보면 이웃한테 빡치는 일이 얼마나 많나요. 이웃은 주위에 가장 가까이 도사리고 있는 적(?)이기도 한 것을... ㅋ

오히려 교회다닐 때 이런 실천적인 부분을 더 열심히 훈련했다면 제가 지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성경은 언어적 부분뿐 아니라 온 생활에 깃들어야 하는 부분에서 굉장히 고난이도의 경전이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친구를 따라 다른 교회를 갔는데, 목사님께서 꽤나 훈훈한 느낌의 젊은 목사님이셔서 신선한 기분으로 예배를 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예배 듣고나면 꼬박꼬박 후기도 적고 그랬죠. 

그 때도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면서 이 부분은 원어로 이렇게 되어있는 부분인데, 이 맥락을 알고 나면 이 부분이 참 새롭게 보인다~ 라면서 은혜 충만한(...?) 설교를 해주셨던 게 기억에 납니다.

나중에는 공짜로 다니기가 미안해지더라구요. 하다못해 인방을 봐도 웃기거나 무슨 게임 플레이를 잘하면 돈을 쏘는데... 헌금을 좀 쏴야하나 하는 고민도 했죠.

하지만 오래 다니지는 못했습니다. 그 목사님이야말로 저한테 관상이 얼마나 예외가 많은 허술한 이론인지를 가르쳐준 분이기도 한데요.

쿨의 이재훈을 닮은 선한 얼굴로, 동성애자들분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혼자 사셔야 합니다~ 라고 하거나 툭하면 이슬람 국가들을 적으로 설정하고 거기에서 우릴 지켜야 한다고 하거나 하시니...

그런 세계관이 예배 사이사이 끼어드니 정말 환장하겠더군요. 그런 게 없이도 얼마든지 좋은 예배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냥 발을 끊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쉽네요.

"제가 요즘 랩을 많이 듣는데, 정말 음악들이 멋지고 저도 안되는 실력으로 따라부르기도 하지만... 돈자랑 하는 가사들 보면, 정말정말 미안하지만 그거 너무 멋없습니다"

이런 설교도 해주신 분이셨는데 ㅋ 언에듀케이티드 키드는 듣고 있을지?


그렇게나마 나일론으로 교회를 다녀본 입장에서 성경이란, 파고들면 역사적이기도 하고 윤리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해서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한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혼자서 예습은 할 수 있겠지만, 신학을 공부하신 분들과의 교류가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할까요.

저는 지금도 자유의지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런 부분은 또 설명을 듣고 싶기도 합니다.

설령 그 신학적 지식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나중에 반기를 들게 되더라도 일단 정을 공부해야 반과 합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ㅎ


뭐 성경을 파고들면 한국어로만 파고들어도 아주아주 얻을 게 많고 그걸 또 실천하는 게 더욱 더 핵심이라 부지런한 신도들은 사실 원어까지 호기심을 뻗칠 여력이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열정이 부족하다거나 성경을 도외시한다는 생각보다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쪽에서의 영적 실천들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한 이해일 것 같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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