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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세녕이 그린 향비(1734~1788)의 초상화입니다. ( 그런데 컴퓨터 색 보정이 좀 심한듯...;;) 향비는 건륭제의 비빈들 중의 한 사람으로 건륭제는 즉위 초기에 낭세녕에게 황후를 비롯한 비빈들의 초상화 12점을 그리게 했는데, 그 중 한 작품입니다. 황후들이 대례복 차림에 격식을 갖춘 초상화를 그렸다면, 이 향비의 초상화는 편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 청조의 귀부인들 모습이 상상이 되네요.)

 

낭세녕에 대한 자세한 소개

https://ko.wikipedia.org/wiki/%EC%A3%BC%EC%84%B8%ED%8E%98_%EC%B9%B4%EC%8A%A4%ED%8B%B8%EB%A6%AC%EC%98%A4%EB%84%A4

 

 

 

《아옥석지모탕구도》(阿玉錫持矛蕩寇圖)

 

 

 《합살극공마도》(哈薩克貢馬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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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향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을 통해서였죠. 김용의 소설 '청향비'

처음엔 정말 역사소설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제게 무협은 영화로 봐야 한다는 진리를 깨우쳐 준 작품이죠. (무술을 글로 배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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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거의 1권 끝에서야 등장하듯이 이 소설에는 제목이 무려 '청향비'임에도 향비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향비를 모델로 한 향향공주라는 인물이 나오긴 하죠.

이 포스팅에 나오는 향비의 초상화는 모두 이 책에서 본 것입니다. 김용 선생이 특히 향비에 대한 애정이 많아서 향비 초상화의 여러 버전을 책에 실었더라구요. (내 소설이 재미 없으면 그림이라도 보시라...이런 능청도^^;;) 낭세녕이 건륭제의 비빈들 중에서 특히 향비 초상화를 집중적으로 그렸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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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세녕 그림을 흑백으로 보니 진짜 사진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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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그림인데도 어떻게 사진을 찍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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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낭세녕의 작품 '향비 무장상'을 현대에 모작한 모사품입니다.

향비가 위구르 출신이라 그녀의 고향인 신장 위구르 자치 구역에는 그녀의 묘가 안치된 사원과 기념관이 있죠. 위구르를 찾는 관광객들에겐 나름 명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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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향비의 무덤은 두 군데에 있습니다. 여기 그녀의 고향 위구르와 청 황실의 묘역이죠.

그녀에 대한 전설도 청조의 공식 기록과 차이가 있습니다. 전설에는 스물 여섯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녀가 청조실록에는 55세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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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비 무장상의 현대 모작품 중 다른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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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세녕이 그린 서양 드레스를 입은 향비의 초상화입니다. 서양 드레스를 입은 중국 귀부인 초상화로는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왼쪽은 드라마 '황제의 딸'에서 향비 역할을 맡은 배우)

당시 청 황실에서는 서양풍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낭세녕 본인이 이태리 사람이다 보니 이런 분위기를 주도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는 중국인 제자들에게 서양화 기법을 전수했고 그의 그림에 동양화법을 적용하여 독특한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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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원, 당시 베르사이유 궁을 모방해서 만든 별궁이었습니다. ( 낭세녕이 이 건물 지을때 자문을 맡았죠.) 이 건물을 보니 당시 청 황실에 유행했던 서양풍이 얼마나 대단했었나 짐작할 수 있네요. 그런데, 동시에 유럽의 왕실이나 귀족 사회에도 차이나 풍이 대유행이었죠. 중국 도자기 열광 말입니다. ( 특히 영국과 독일이 난리였죠. 중국 도자기 같은 거 만들어 보겠다고 하다가 그 유명한 본 차이나도 나왔고. 영국은 특히 그 무역적자 때문에 이 때부터 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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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 멋지긴 한데...이런 동양과 서양의 만남은 어딘지 모르게 불협화음이...;; 애초에 이걸 뿌신 작자들이 누구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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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세녕이 그린 '향비 무장상'입니다. (위의 두 작품은 바로 이 그림을 현재에 모작한 것이죠. 원본에 비해 모작품들이 서양인처럼 그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이 진짜 독특한 것이, 무려 비빈이 갑옷 차림으로 말을 타고 황제와 함께 사냥을 떠나는 모습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유목민족 출신이어서 그랬겠지만 향비는 승마와 사냥에 능했던 것 같습니다. ( 전설에 의하면 황제의 총애가 컸기 때문에 원래 종교인 이슬람 신앙을 지킬 수 있었고 율법에 따라 황궁에서도 베일을 쓴 차림이었다는데, 정작 현존 초상화에는 갑옷 입은 모습과 서양 드레스 차림이네요. 그런데 향비가 비단 갑옷을 입은 그림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서양 갑옷 말고도 청의 갑옷을 입은 초상화도 있습니다. ( 부부가 함께 갑옷을 입고 사냥을 하러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을 그린 초상화는...정말 흔치 않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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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현대에 모작한 향비 무장상입니다.)

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중국 정부의 상황을 볼 때, 이런 위구르 족 출신 여인의 갑옷 차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마치 잔 다르크와 같은 인상을 주는군요)

유독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만 향비는 이런 갑주 차림의 여전사로 나타납니다.

 

사실, 향비는 위구르 출신이고 청의 이민족 정복 과정에서 포로가 된 여성이 황제의 여인이 된 경우라, 솔직히 이 사람에 얽힌 전설이라는게 마냥 속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드라마 <황제의 딸> 보신 분들은 더 잘 아실테고. 그런데 상황을 더 이상하게 하는 건 청대 실록의 기록이죠. 청의 정사에 의하면 향비는 전설과는 달리 청의 황실에서 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궁정 여인으로서 무난한 생을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건륭제에게 춘향이처럼 저항하다가 죽었다는 이 전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지? 이렇게라도 없는 얘기를 지어내서 민족적 위안을 받고 싶다는 이 집단적 심리 말입니다. ( 덕분에 향비는 무덤이 두 개입니다. 고향 위구르와 본인이 생을 마친 청 황실 묘역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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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소군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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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괴랄한 전설은 비단 위구르 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중국인들도 이런 전설이 있더군요. 한 나라 원제 때 흉노 선우의 왕비가 된 왕소군 이야기 말입니다. 사서에는 정식 절차를 거쳐서 공주의 작호를 받은 뒤 선우와 결혼을 하러 떠났던 왕소군은, 도착했을 때 약혼했던 선우가 죽는 바람에 그의 뒤를 이어 선우가 된 젊은 아들과 결혼하여 새 선우의 왕비가 됩니다. 그리고 이후의 그녀 인생이 어땠었냐면....그냥 별 탈없이 무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한과 선우는 동맹관계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던 터라 전쟁이 또 터지지 않으려면 서로들 이 정략결혼에 정성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이후의 중국 문인들의 개인 저서들에는 이 왕소군에 대한 근거없는 루머들이 마구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춘향이처럼 선우에게 저항하다가 비참한 생을 마쳤다고요...이건 대체 무슨 상황인지? 대관절 이해가 안된단 말입니다. 대체 왜 이런 역사왜곡질을 한다는 말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춘향이 스토리가 참 불편했었는데, 이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_-;; 결국은 이게 다 역사왜곡이거든요)

 

그런데 재밌는 건 소설가 김용도 자신의 첫 작품 <청향비>에서 저런 향비 전설과 건륭제에 대한 전설을 주요 설정으로 이용했다는 겁니다. 건륭제에게도 이 향비 전설만큼이나 대단한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무려 그것도 '출생의 비밀'이랍니다! 건륭제가 실은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의 자손이라는 거지요.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형제들과 경쟁하던 황자 시절의 옹정이 - 그러니까 이 전설의 주역은 옹정제입니다. -  아버지 강희제의 낙점을 받기 위해 갓 태어난 한족 신하의 아들을, 역시 갓 태어난 자기 딸과 바꿔치기 했고, - 황태자가 되려면 건강한 태손이 있어야 된다나 어쩐다나 -  그래서 건륭제는 만주족이 아니라 한인이라는 거죠.....물론 당대는 물론이고 현재의 중국 학자 중 저 얘기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만, 중국 대중들은 한 동안 기정사실처럼  저 이야기를 믿어왔다는군요. 그것도 200년이 넘게...그런데, 더 깨는 건 이 소설을 쓴 김용 선생 본인도 그게 다 지어낸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겁니다! 본인이 소설 서문에 구구절절이 밝히더라구요. 건륭제가 만주족이 아니라 한인의 자손이라는 건 다 근거없는 이야기다. 청대통사에 따르면...하면서 자세한 역사적 근거와 함께 구체적인 사료까지 제시하고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대체 그걸 기반으로 장편 소설을 쓰는 건 뭔데요...확실히 그런 출생의 비밀을 설정으로 하니까 극적 긴장감이 높아지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어쩔건데요. 황제 하나가 한족이라고 지배 시스템이 일순간에 뒤집힐 수 있나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시절 기준으로도 진짜 황당…아니면, 만주족의 지배를 받던 한족의 300년 원한을 이렇게라도 풀겠다구요? 그런데, 진짜 그렇다고 얘기하더군요. 작가 김용 선생이요...;; 진짜 할 말 없음>.<)

 

그런데, 때는 바야흐로 80년대, 한국에 그 언제보다도 민족주의 열풍이 몰아쳤던 시기 아닙니까. 그래서 그랬던지 저와 제 친구들은 진짜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받아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그 때 최소한 청이 중국의 이민족 '정복왕조'라는 인상 하나는 제대로 박혔던 것 같습니다.

김용의 소설 속에 만주인들에 대한 중국인들의 적대감이 진짜 장난 아니었거든요. ( 만청정부, 멸만흥한 이런 단어도 이 때 처음 들어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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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본문과는 상관없지만 현대에 유행하는 중국 미인도라 가져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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