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논란을 정확히 이해하기

2020.05.15 22:53

Sonny 조회 수:1744

어떤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는 방법은 신문기자의 위치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정보가 있을 때, 그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술해야할지 훨씬 더 책임감이 생기거든요. 이것은 무슨 윤리라기보다는 프로페셔널리즘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돈받고 기사쓰는 건데 틀린 소리를 쓰거나 모호한 소리를 하긴 싫잖아요? 정의연 논란을 직접 신문기자의 입장이 되어 본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떤 팩트를 먼저 받아들이고 이걸 어떻게 보도해야할지 꼭 신문기자가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각은 나옵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알리고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헤드라인에 강조해야합니다.


최초 보도가 됐던 "3300만원 술집에서" 기사들의 팩트를 먼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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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연이 후원의 날 행사 주최, 술과 음료를 유료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모금을 함

- 이 날 총 매출은 972만원, 즉 사람들이 정의연에 972만원어치 기부함

- 옥토버라는 맥주가게는 이날 "매출"에서 인건비랑 재료비 같은 건 빼고 수익금은 다 정의연에 후원

- 3300만원은 2018년 모금사업비 총액

- 홈택스에는 맥주집 이름으로 모금사업비 총액 3300만원을 기재


이용수 활동가가 "정의연에서 할머니들한테 돈 한푼도 안썼다!" 고 말 한게 정의연 논란의 원점입니다. 이 직후, 이와 관련된 신문기사를 써야합니다. 그리고 위의 팩트를 건졌습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아무 건수도 안됩니다. 후원의 날 행사는 어느 인권단체나 하는 것이고 이 날 정의연은 후원의 날 행사를 해서 약 970만원 가량을 사업비로 지출했으며 540만원 가량을 돌려받았습니다. 단순히 말해서, 대학 축제 주점에서 하듯이 맥주랑 안주 팔아서 남긴 이윤을 후원금으로 얻은 것입니다. 이건 그냥 영수증으로 확인된 팩트입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홈택스 기부금 사용처에는 맥주집 이름 아래 2018년 모금사업비 총액을 다 기입했습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1/2020051103436.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https://news.joins.com/article/23774133


두 매체의 헤드라인들은 이렇게 작성되었습니다.


- "술집서 하루 3300만원" 위안부 단체, 이상한 장부


- 맥줏집에선 3300만원, 할머니들에겐 2300만원 쓴 정의연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저 팩트들을 가지고 이렇게 헤드라인을 쓰겠습니까? 제가 기자라면 일단 '술집'이란 단어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날 있었던 사건은 정의연 회원들이 그냥 술집에 가서 술을 먹은 게 아니라 후원의 날 행사를 한 거니까요. 이걸 그냥 술집에 갔다고 하면 행사 본연의 목적은 빼놓고 기술을 하는 거니 오해를 일으키는 거죠. 그리고 저는 3300만원이란 금액도 헤드라인에 쓰진 않을 겁니다. 후원의 날 행사에 쓴 금액이 3300만원이 아니고, 약 970만원인 게 팩트잖아요? 그런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의도적으로 오해를 일으키기 쉽게끔 저 두 단어를 제일 앞쪽에 배치합니다. 저 기사들을 읽으면 비판적 독해를 안해서가 아니라, 가장 먼저 들어오는 정보들로 서사를 엮어내게 되기 때문에 독자는 '정의연이 술집에서 3300만원어치 술을 마셨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사내용들도 전혀 상관없는 팩트들을 엮어냅니다. 두 기사의 공통점은 정의연이 할머니들한테 쓴 보조금과 다른 사업 기금인 3300만원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헤드라인에 따라가면 이런 식의 서사가 완성이 됩니다. "정의연 이 빌어먹을 것들이 할머니들한테는 끽해야 2000만원밖에 안썼으면서 하룻밤에 3000만원어치 술처먹고 지들끼리 놀았구나!" 정의연은 할머니들의 생활비를 보조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즉 구호단체가 아니에요. 이건 마치 서울시가 노숙자 지원에는 한달에 5000만원 썼는데 벤처지원금은 한달에 4억을 썼다고 해서 "서울시는 사람 목숨을 팽개치고 돈에 눈먼 놈들이구만!!" 이라고 하는 거랑 다르지 않습니다. 두 매체는 전혀 비교할 사안도 아니고 엄연히 구분되어있는 활동들을 비교합니다. 이러면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활동들 사이에 순위가 생기고 정의연이 "할머니들한테 돈을 줬어야 하는데 그 돈도 안주면서 다른 걸 하는" 것처럼 프레임이 만들어지죠.


그리고 기사에는 회계전문가들의 입장이 인용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수상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만들죠. 객관이란 중립적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매체는 벌써 결론을 내놨습니다. 정의연이 뭔가를 한 게 분명하니, 이 단체의 회계를 수상하게 봐야겠다고 말입니다. 중앙일보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조선일보는 "이런 회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문장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의연이 부정하게 회계를 작성하고 할머니들에게 가야 할 돈을 등쳐먹으면서 호위호식한다는 서사가 완성이 됩니다. 기사들의 방향이 객관과는 거리가 먼, 이미 편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의 기사가 행하는 왜곡이 대단합니다. 업주 쪽에서 "3300만원이 무슨 소리냐, 그건 사업비 총액이고 여기 술집에서는 실제로 900만원을 쓴 거다"라고 한 주장을 뒤집어서 "900만원 가량 지출한 걸 3300만원으로 장부에 기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헤드라인으로는 정의연을 3300만어치 술먹은 사람들로 만들어놓고, 내용에서는 3300만원으로 슈킹한 걸로 몰아가는거죠. 헤드라인과 기사에 팩트를 쪼개서 고루 욕먹게 하는 것입니다. 


이건 저널리즘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는 내용입니다. 연결고리가 너무나 부족한 두 사실을 엮는데, 헤드라인은 팩트와 거리가 먼 액수만 적어서 자극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논조도 근거가 부족한 주장을 이미 결론으로 정해놓은, 지극히 주관적인 모양새입니다.


이용수 활동가와의 인터뷰 역시 이번 정의연 논란이 얼마나 저널리즘과 멀게 기사로 작성되었는지를 반증합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정의연이 할머니들에게 줘야 할 돈은 안줬다"입니다. 그 고발을 한 당사자이자 피해자를 만난다면, 저는 기자로서 이런 걸 물어볼 것 같습니다.


- 정의연이 할머니들에게 줘야 할 돈을 안줬다고 했는데, 원래 받아야 할 돈은 어떤 것인가

- 정의연에게 기금의 사용처나 할머니들에게 가야 할 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는가, 정의연에게 설명은 들었나

- 정의연이 평상시에 자신의 성금 사용처를 할머니들에게 공유했는가

- 현재 정의연이 3300만원이나 22억의 회계구멍으로 비판받는데 이에 대해 아는가

- 정의연이 투명해져야 한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내부고발자 당사자니까요. 정의연의 돈 문제를 캐물어야 할 중요인물입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638534


그런 질문 거의 없습니다.

언론이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용수 활동가의 주장들입니다.


- 윤미향이 돈을 빼먹었지 않나

- 전국에 계신 (피해자) 할머니를 도우라고 했는데 시설에 있는 할머니만 돕는다. 이것 하나만 해도 문제가 충분하다.


언론이 구체적인 사실 아무 것도 취재를 안합니다. 되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리고 기사에 있는 것은 온통 이용수 활동가의 불만 뿐입니다.


정의연의 돈 문제에 대해서 언론이 사실을 캐내야 하는데 이용수 활동가의 주장말고는 그 어떤 다른 팩트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돈 문제에 대한 전후사정이라도 당사자로서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회계상황이나 아주 디테일한 상황까지는 몰라도, 이용수 활동가 당사자가 주장했던 "할머니들한테 돈을 안쓴다"는 팩트를 어떻게든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 합니다. 그게 현재 논란의 핵심이고 그걸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니까요. 그런데 언론이 그걸 안합니다.


제가 만약 데스크에 있었다면 기사 다시 쓰라고 했을 겁니다. 만족스러운 팩트취재가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데 기사는 거꾸로 나갑니다. 이용수 활동가의 개인적인 감정을 헤드라인에 내세워서 정의연과 대립각을 세우고 정의연이 나쁘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겁니다.


이것이 언론이 현재 정의연 논란을 만들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역으로 이해하기 되게 쉬운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중동 기성 매체들은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확실한 사실을 파악해서, 그 사실을 터트리고 당사자가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논리적 개연성을 만들지 않습니다. 정의연 활동가들이 수상쩍다는 그림을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더 간단히 말해볼까요. 조중동은 타진요랑 똑같은 방식으로 사건을 취재해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실을 캐내서 정의연의 부정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정의연의 결백을 뒤흔드는 방식으로 기사를 씁니다. 내가 볼 때는 이게 의심스러우니까 이걸 나한테 증명해보라는 식으로 계속 의심을 추구합니다. 이 논란의 최초 발화점이었던 "술집 3300만원" 기사가 그걸 반증합니다. 이것은 그냥 간단히 말해서 사실이 아닙니다. 어린 애가 봐도 정의연 활동가들이 술집에서 3300만원어치 술을 먹은 게 아니라, 후원의 밤 행사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선정적으로 터트립니다. 그리고 기사의 논조대로 정의연이 할머니들한테 돈을 적게 쓰는 것도 아닙니다. "술집 3300만원"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할머니들은 이것밖에 지원못받는다는 논조의 내용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정의연은 구호단체가 아니고 이 단체의 성격을 언론이 이미 다 알고 있거든요. 돈을 착복한 증거가 있다면 그걸 캐서 먼저 터트리면 됩니다. 


가장 첫 기사를 저렇게 마타도어로 내보내는 것은 그만큼 기사화할 거리가 없었다는 겁니다. 내부고발자의 최초 보도 이후 가장 먼저 기사로 나온 게 술집에서 돈을 흥청망청 쓴다는 선동 기사입니다. 팩트가 있으면 팩트를 터트리면 되는데, 굳이 기사를 선동으로 터트립니다. 이것은 이용수 활동가와의 인터뷰 역시 증명합니다. 활동가들이 돈을 빼돌린다는 주장을 하는 피해당사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인터뷰에서는 횡령이나 착복에 대한 어떤 팩트도 추가로 안나옵니다. 이후 이어지는 기사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김복동 장학금은 왜 활동가들한테 간 거냐, 22억은 뭐냐, 윤미향은 어떻게 자녀 유학을 보낸 거냐, 다 어떤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로 잇기에는 헐거운 연결고리들이죠. 타진요도 그랬습니다. 타블로가 정말 스탠포드를 졸업하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전산오류들이 있었고 졸업문서는 위조가 쉬운 것 같았으며 대니얼 선웅 리라는 동명이인이 있었죠. 가장 팩트 체크가 쉬운 부분은 이용수 활동가의 인터뷰입니다. 당사자가 정의연을 먼저 폭로했습니다. 그럼 그 폭로사실에 대해 더 자세하고 피해자 본인의 입장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잖아요? 그런데 그게 없습니다. 


기사들이 저널리즘과 완전히 거꾸로 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거 수상한데? 이거 좀 이상한데? 계속 이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만 걸려라 하고 일단 기사를 내보는 식으로 흘려요. 이제부터 조금만 수상쩍다 싶으면 기사를 일단 송고하면 됩니다. 이용수 활동가의 폭로 때 이미 정의연은 이미지가 시궁창에 빠졌고, 술집 3300만원 기사로 다시 한번 이미지가 폭락했거든요. 이제 언론은 기사를 팩트확인이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으로 내면 됩니다. 이미 90%정도는 성공했어요. 까놓고 말해서 정의연이 회계감사나 검찰 조사를 다 받은 다음에 문제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칩시다. 그럼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바꿀까요? 안바꿉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기사들이 "인권단체는 위선자들이다"라는 시민들의 활동가 혐오에 기반해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도 않는 선동이 편하게 먹히는 겁니다. 사람들은 미워하고 싶은 대상에 대한 마타도어는 비판적으로 읽지를 않습니다. 


https://news.v.daum.net/v/20200514094752370


영수증 있으면 뭐 알아봅니까? 정말 무의미한 요구입니다.


이 논란은 술집에서 3300만원 기사가 나올 때부터 이미 선동으로 출발했습니다. 팩트에 기반한 기사가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을 먼저 한 다음에 뭐가 됐든 찜찜한 구석은 계속 그냥 흘리는 겁니다. "돈을 횡령했을지도 모른다"와, "돈을 횡령했다"는 전혀 다른 문장입니다. 저널리즘은 가능한한 두번째 문장에 가까운 사실관계를 파고들어야 하는 거구요. 미심쩍은 걸 확실히 파악하는 게 언론이 할 일이지, 미심쩍다고 부추기는 게 언론이 할 일은 아닙니다. 이용수 활동가의 인터뷰를 다시 확인해보세요. 피해당사자가 피해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확한 정보가 있는지. 그 어떤 횡령고발도 이렇게 두루뭉실하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이 중요한 인터뷰를 어물쩡 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혐오를 부추기는 선동을 저널리즘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 저는 이 사태를 보면서 조국이 항복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조국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조중동의 언론압력은 정말 엄청난 폭력이 될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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