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 6

2019.02.22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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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째 화제가 되고 있는 항공회사 모녀의 영상들을 이제야 봤습니다.
조씨의 남편이 공개한 영상을 보니, 젤리 먹고 혼나는 아이는 삶의 기초를 배우고 인성의 근본이 길러질 나이대더군요.
아이는 부모를 '베끼며' 성장하기 마련인데, 그 정서적 학대 현장을 보노라니 마음이 참담했습니다.
시 한편이 띠링 떠올랐어요. 

- 같은 과 친구들 / 김승일

(전략)
아빠가 창밖으로 나를 던졌지. 2층에서 떨어졌는데 한 군데도 부러지지 않았어. 격양된 삼총사는 어떻게, 얼마나 맞고 컸는지 신나게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니가 2층에서 떨어졌다고? 나는 3층에서 던져졌단다. 다행이 땅바닥이 잔디밭이라 찰과상만 조금 입었지. 어째서 우리를 던진 것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4층에서. 아빠가 4층에서 나를 던졌어.

그게 말이 되는 소리니? 어떻게 4층에서 던져졌는데도 그렇게 멀쩡하게 살아남았어? 게다가 어떻게 그런 부모랑 아직도 한집에서 살 수가 있니? 너한테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은 너를 이해한단다. 내가 더 학대받았으니까. 나는 골프채로 두들겨 맞고 알몸으로 집에서 쫓겨났거든. 우리는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그랬구나. 너도 알몸으로 쫓겨났구나. 여름에 쫓겨났니, 겨울에 쫓겨났니? 나는 겨울에 쫓겨났었어.
(후략)

2.  어제 오후, 회사 근처에서 살인미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빌딩의 주차관리원이 V.I.P 고객과 주차 시비 후, 몇 차례 사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부녀를 칼로 찌르고 자수했다더군요.
현대 사회에선 그다지 기묘할 것도, 충격적일 것도 없는 사건일 수 있지만, 그러나 생각해보게 돼요. 
잘못을 사과하는 마음과 상대를 살해하고 싶은 마음. 한 사람의 시야에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그 두 갈래 길이 동시에 펼쳐져 있었다는 것. 

마음이란 게 그렇잖아요.  이 길 아니면 저 길이란 게 180도 마음을 돌려야만 갈 수 있는 게 아니죠.
하나의 길 바로 옆에 그토록 다른 길이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다는 것.  어쩌면 두 길이 광속으로 360도 회전하며 항상 겹쳐져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사랑과 증오, 웃음과 눈물, 죄와 은혜..... 의 양극에 걸쳐진 긴장과 기묘한 진동. 그것이 삶인 듯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면, 주차관리원의 선택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마음의 추락이었을 뿐이에요. 
어쩐지 저는 그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것만 같습니다. 연민에 앞선 슬픔이 있어요.
찔렸던 부녀 중 V.I.P 고객인 그 아버지는 이제 굴욕이나 어려운 사과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을런지.

3. 사실 마음이 요동치고 있는 사람에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말은 덧없죠. 그건 한 발로 걸어보라는 말과 같은 거에요. 누구도 한 발로 걸을 수는 없어요. 잠시 뛸 수 있을 뿐. 

감정을 배제하라는 건, 자신의 감정을 밖에서 바라볼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죠. 그러니까 단순화를 통해 자신을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건데요, '나'는 지구 안의 77억 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각 개인의 고독과 슬픔의 내면은 얼마든지 복잡할 수 있지만, 그것은 ‘77억의 삶 중 하나로서의 고독과 슬픔이에요.
인생의 기막힘이 그 사소함에 있는 거죠.  바보가 되면 좀 어떤가, 싶어요. 얼굴의 근육이 얼마나 풍부한데 서로 따뜻한 표정 하나 지어주지 못하는 건지...... 

4. 오늘은 씻지 않고 출근할 겁니다. 마음이 부르터 있을 때 안 씻고 나가면  왠지 속이 좀 빨리 가라앉더라고요.
1년에 한두 번 그러는 거니까 눈흘기거나 혀차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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