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4 13:13
좀 전에 어떤 글에 댓글을 달다가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영화를 보면서 훌륭한 감독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나의 기준은 무엇인가?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첫 장면을 어떻게 시작하는가와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끝내는가예요.
첫 장면에서는 어떻게 문제를 제기할 것인가, 어떻게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킬 것인가와 관련된 기술적인 신선함 혹은 세련됨,
감독의 창의성 혹은 노련함 같은 걸 동시에 엿볼 수 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가, 이 영화의 주제를 어떻게 압축적으로 드러낼 것인가와 관련된
감독의 생각, 더 나아가 가치관까지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저에겐 작가로서의 감독에 대한 인상이 여기서 많이 결정돼요.
그러다가 듀게분들은 영화를 보실 때 어떤 것들로 감독에 대해 평가하시는지 궁금해졌어요.
나는 이 감독이 이래서 참 마음에 든다거나 저 감독은 저래서 마음에 안 든다거나
이 감독이 이 부분을 이렇게 처리하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거나 저 부분을 저렇게 처리하는 게 참 아쉬웠다거나
영화에서 이런 부분을 보면 감독의 내공이 드러나는 것 같다거나 등등
듀게분들이 혼자 가슴 속에 묻어두고 계신 영화 감독에 대한 평가 기준이 궁금해요. ^^
사람은 각각 다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평가하고 또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을 평가할 것 같은데 저는 맨날 같은 관점으로 영화를 보고
또 감독을 평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좀 들거든요.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알고 싶어요.
아카데미 시상식이 내일로 다가왔는데 이런 얘기 한 번 나누어 보고 싶네요.
2019.02.24 13:29
2019.02.24 13:31
2019.02.24 13:36
좋아하시는 감독들, 호감을 갖고 있지만 좀 아쉬운 감독들, 호명하시면서 왜 그런지 얘기해 주셔도 좋아요. ^^
듀게분들이 어떤 영화를 만든 어떤 감독을 좋아하시는지도 저는 몹시 궁금하기 때문에...
(저는 첫 댓글 달아주시는 분이 항상 제일 고마워요. ^^)
2019.02.24 18:19
2019.02.24 19:19
저도 관객이 긴장감을 잃지 않고 내내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가 좋아요. ^^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 이 인물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혹은 관객이 그런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감독이 적어도 기술적인 면에서는 좀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더군요.
(아니면 감독이 관객과 소통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관객이야 집중하든 말든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펼쳐내는 사람이거나... ^^)
영화도 결국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틀이라면 그 이야기가 관객의 심리에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2019.02.24 20:47
2019.02.24 23:13
부기우기 님의 댓글을 읽으며 감독이 어느 정도로 명확하게 보여줘야 하고 어느 정도로 미묘하게 보여줘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결국 이런 캐릭터가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식으로 자기 감정을 드러낼 것인가 혹은 숨길
것인가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면, 그렇게 꼼꼼하게 구축된 캐릭터에 충실하게, 그 캐릭터에 진실되게 표현하려고
하면 할수록 섬세하고 미묘한 표현들은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그런 상황과 그런 인물에 대해 얼마나 섬세하게 관찰하고 깊이있게 이해했느냐가 표현의 방식 혹은 정도를
결정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2019.02.25 03:40
싸가지를 봅니다. 사람의 죽음이나 폭력 앞에서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감독들이 좋아요. 션 베이커 영화가 그래서 참 좋았어요. 좀 모순적인데 각오를 하고 그 예의를 파괴해버리는 감독들도 좋아합니다. 제일 싫어하는 건 이도 저도 아닌 어중띈 놈들입니다. 사람 때리고 시체 자세하게 비추는 게 무슨 아트라고 착각하는 놈들이 제일 짜증납니다. 특히 한국영화에서 폭력을 저지른 놈들이 질질 짜면서 자기연민을 시작하면 스크린을 감독 면상에 꽂아버리고 싶어요.
2019.02.25 10:10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괴로움, 분노, 공포 같은 강도 높은 감정이 보는 사람을 더 끌어당기고 몰입시키는 것 같아요.
괴로움, 분노, 공포를 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간에게 부당하게 가해지는 폭력을 보여주는 것이고요.
그래서 어떤 영화들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다른 사람이 겪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해요.
비극만이 줄 수 있는 감동과 숭고함이 있고 그런 비극은 선량한 인간이 부당하게 겪는 고통으로 가장 잘 구현되지만
인간이 겪는 고통이 단지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때 관객은 보는 내내 그저 고통스럽죠.
잔인하되 그 잔인함이 실제가 아님을 관객에게 드러내어 고통스럽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다만 폭력이라는 사회적
금기를 깨뜨림으로써 관객에게 쾌감을 주는 영화는 저도 종종 재미있게 봐요.
2019.02.25 16:04
기술적으론 말씀대로 서사물이라면 오프닝과 엔딩에서 모든 걸 압축해서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하고요.
감독들 개개인의 매력은 예전엔 주로 소노 시온과 같은 광적인 퍼스널리티 같은걸 가진 감독을 좋아했었지만..
이젠 감독이 범죄자가 아닐 것이란 조건이 먼저 떠오르네요. ㅋㅋ
2019.02.26 01:02
감독의 퍼스낼리티는 어떤 식으로든 영화 속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영화 속 모든 요소들, 각본부터 연기, 세트와 조명, 촬영, 음악 등등에서 최종 선택과 결정을 하는 사람은
결국 감독일 테니 영화 곳곳에 감독의 생각과 취향이 스며들어 있을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관객은 자신과 생각이나 취향이 비슷한 영화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자신과 비슷한 생각,
비슷한 취향을 가진 감독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결국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로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과 취향을 다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고
평론가나 관객은 그들이 높이 평가하는 영화들,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들로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과 취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우리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영화를 싫어하는지, 어떤 감독을 좋아하고
어떤 감독을 싫어하는지 말할 때 우리는 그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
(이렇게 주관적인 평가기준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건가 싶어 슬퍼지네요. ^^)
댓글이 너무 늦어서 어제 본 영화에 나왔던 노래 한 곡 붙여 보아요.
Jeri Southern - I Thought of You Last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