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질시하는 이유

2019.04.01 05:13

어디로갈까 조회 수:1197

청빈이 가난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 것인지 잘 모릅니다. 아마 가난이 청빈함이 되기 위해서는 자발적일 것, 비굴하지 않을 것, 허둥대지 않을 것, 탐욕이 없을 것 등의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겠죠. 많아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의미로 꿰이는 덕목들입니다.

선배 J는 청빈한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어요. 어떤 계기로 그런 청빈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고, 그리하여 그는 사회운동가로서 뜻하지 않았던 명예를 얻게 됐습니다.
가끔 그의 SNS에 들어가는데, 대중은 그의 청빈함을 여전히 흐뭇하게 여기지만, 댓글들을 보니 그의 명예에 대해서는 선망하거나(극소수) 질시하거나로(대다수) 갈리는군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가 청빈하고 고통받기를 원했는데 그는 청빈하고 명예로운 셈인 걸까요.

물질적 소유가 개인의 존재가치가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빈은 신화이거나 어리석음이겠죠. 그가 청빈하게 보였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끈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거고요. 이제 그는 신화처럼 보이되 또한 어리석어 보이나 봐요.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맑다淸니!  비굴하지 않고, 주눅들지 않고, 결핍에 아우성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살아가며 맑은 얼굴로 미소 지을 수 있다니!'
그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었는지 살펴볼 마음도 없이, 그가 얻은 것 - 명예 - 마저  탐내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곤 합니다. 그런 기갈과 심술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번쩍이는 것을 포기하고 맑은 것을 선택한 사람을 시기하다니.

그는 부처도 무엇도 아니고 그저 한결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회운동가일 뿐입니다. 그가 이 미친 장터 같은 사회에서 아무런 갈등이나 모욕도 느끼지 않은 채 담담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고, 그저 맑고 평정하기만 하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도 우리처럼 '해내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자기 모순을 줄이고 가벼워져, 마침내는 온전히 자유롭기 위해서.

덧: 한 인간의 고유성을 이해하는 건 다른 언어를 나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작업처럼 지난한 일이긴 하죠.
아무리 성실한 번역이라 한들 '번역을 거치면 작품의 흠은 늘어나고 아름다움은 훼손되기 마련이다.'(볼테르)
아무리 섬세한 번역이라 한들, '번역이란 양탄자를 거꾸로 뒤집어 놓는 일에 불과해서, 모든 무늬는 다 드러나지만 본래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기 마련이다.'(세르반테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0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6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17
123684 넷플 추천 Wham! [8] theforce 2023.07.08 463
123683 이런저런 일상...(오픈월드) 여은성 2023.07.08 225
123682 [영화바낭] 저도 가끔은 유료 vod를 봅니다. 타이 웨스트의 '펄' 잡담 [9] 로이배티 2023.07.07 395
123681 프레임드 #483 [6] Lunagazer 2023.07.07 108
123680 [VOD바낭] 이블데드 라이즈 - 간만에 호러팬들 만족시킬 피칠갑 장르호러! [10] 폴라포 2023.07.07 381
123679 자카 - 몇 가지를 바로잡겠다 daviddain 2023.07.07 142
123678 황비홍 소림권 [4] 돌도끼 2023.07.07 255
123677 더운 여름은 장마 덕에 한달 밖에 안되는군요 [1] 가끔영화 2023.07.07 256
123676 7월 말에 열린다는 포천 우드스탁 페스티벌 과연 어찌 될까요... [2] 모르나가 2023.07.07 336
123675 공회전만 하는 출산율 논의 [19] Sonny 2023.07.07 734
123674 강풀원작 디즈니플러스 무빙 커밍순 예고편 상수 2023.07.07 208
123673 [넷플릭스] 셀러브리티, Flixpatrol 전세계 2위 등극!! [2] S.S.S. 2023.07.06 387
123672 듀나인 - 경주 여행 맛집, 볼거리 추천 부탁드립니다 [2] 상수 2023.07.06 223
123671 리버풀 ㅡ 음바페 daviddain 2023.07.06 124
123670 [영화바낭] 굿바이 인디아나 존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잡담입니다 [15] 로이배티 2023.07.06 531
123669 인스타그램은 트위터의 꿈을 꾸는가? [1] 상수 2023.07.06 282
123668 프레임드 #482 [2] Lunagazer 2023.07.06 75
123667 썬캡이 바람 불면 날아가 가끔영화 2023.07.06 105
123666 웰메이드 헬조선 영화 '드림팰리스' [4] LadyBird 2023.07.06 329
123665 직장 다니면서 씨네필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14] Sonny 2023.07.06 73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