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성능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서 수리를 맡기러 갔습니다. 수리점 아저씨가 말씀하시길, 마침 좋은 부품이 나온 게 있는데 그걸로 갈아 넣으면 신묘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잡히지 않던 방송까지 들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상표가 뭐냐고 물으니 프랑스제 라캉이라고 했어요. 기존의 방송 중에서도 주파수가 안 맞아서 듣지 못한 방송은 없다고 믿고 있었기에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제가 어떤 방송들을 듣는지 아저씨가 알 리 없는데, 새 채널이 잡힐 거라 말씀하시니 의아한데요?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소. 똑같은 방송이라도 새부품을 넣고 들으면 다른 방송인 듯 새롭게 들리는 법이라오. 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창에 뜨는 불빛도 다크 퍼플색과 진한 오렌지색을 써서 밤에 보면 장식효과가 뛰어나다오."

- 아, 그렇군요.
" 십수 년 전부터 인기 최고의 물건이라오."
- 저... 가격은 얼마나 하나요?
"부품가격은 비싸지 않은데 설치하기가 힘드오. 딴 부품보다 공임이 두 배 정도 든다오."
- 다른 부품은 없나요?
"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부품을 찾기 때문에 다른 건 갖다 놓아도 소용이 없어서 아예 안 갖다 놓소."

하는 수 없이 저는 그 부품을 설치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주인은 제 오디오를 뜯더니 전혀 고장이 안 난 부품들을 유심히 들여다 봤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새 부품과 기존의 시스템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존의 오디오 시스템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 에... 있을 건 다 있소. 옛날 진공관식 오디오를 쓸 때는 주로 칸트나 니체라는 회사에서 나온 부품들을 사용했는데, 물론 당신의 오디오는 그렇게 오래 된 건 아니오. 대신 프로이트제와 소쉬르제 부품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거기에 새 부품인 라캉을 연결해야 하오."

흠. 라캉을 설치하면 무슨 방송이 어떻게 다르게 들린다는 걸까? 좀 회의적이긴 했지만, 어느새 예기치 않게 흥미를 느끼게 된 저는 아저씨가 오디오에 라캉을 설치하는 모습을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주인은 제 프로이트제 부품에 전하측정기를 갖다 댔습니다. 그러자 오- 하는 소리와 아 - 하는 소리가 났어요. 그 다음에 그는 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집어 넣었습니다. 뭐하시냐고 묻자, 글자를 확인해야 하는데 Un과 sub와 Con이라는 세 개의 문자가 있는지 검지손가락으로 문질러 확인한다는 것이었어요.  그제서야 과연 이 설치공사의 공임이 많이 들만하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습니다. 

다음 순서로 그는 소쉬르제 부품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Signifiant과 Signifie라고 쓰여진 빨갛고 파란 두 개의 전기연결선을 뜯더군요. 그러나 사실은 위치만 바꾸어서 다시 연결했을 뿐이에요.  그러고는 Signifie를 Un과 연결시켰습니다. 
갑자기 그가 "허어~ "하는 감탄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는데, 어리둥절해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도 저를 돌아보며 "이거 보이시오?" 물었습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거기엔 GOD라는 상표가 찍힌 작은 부품 하나가 보였어요.
 
"이게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를거요. 이 부품은 다른 부품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않는데도 이걸 넣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들을 한다오. 그런데 새 부품은 바로 이 GOD와 연결시키는 접속단자를 갖고 있소. 보시오~ "

그는 The Real이라고 쓰인 접속단자에 그것을 연결시켰습니다. . 순간 윙윙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나더니, 오디오 내부에서 불꽃이 번쩍하고 한 번 튀었다가 잠잠해지더군요.  나머지 설치과정은 제가 흥미를 잃은 이유로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직은) 모릅니다.

아무튼 두 배의 공임을 지불하고 수리한 오디오를 집에 가져왔습니다. . 플러그를 꽂고 전원을 넣으려는 순간, 비로소 아파트 관리실에서  오늘은 정전이라는 사실을 공시한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아직 라캉제 부품의 특성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아요.
지금 저는 오디오에서 관심을 거두고, 언제 아파트에 전기가 다시 들어올까를 알아내려고 관리실 전화번호를 찾기 위해 수첩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19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6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07
123709 찐따 테스트 [4] 상수 2023.07.11 336
123708 [회사바낭] ㅋㅋㅋㅋ 얼척없네... [13] 가라 2023.07.11 648
123707 했어야 했어서 [6] 노엘라 2023.07.11 333
123706 [티빙바낭] '풋루즈'말고 '자유의 댄스' 잡담입니다 [20] 로이배티 2023.07.10 520
123705 에피소드 #45 [4] Lunagazer 2023.07.10 91
123704 프레임드 #486 [2] Lunagazer 2023.07.10 94
123703 듀나원기옥 - 뉴진스 새 음반 보고 옛 파워퍼프걸 노래 찾기 [5] 상수 2023.07.10 307
123702 시대별 가수 [7] catgotmy 2023.07.10 348
123701 마틴 스코세이지 신작 -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메인 예고편 [6] 상수 2023.07.10 537
123700 뉴진스의 New Jeans와 슈퍼 샤이를 듣고 [6] Sonny 2023.07.09 1046
123699 애플TV는 자막조절이 안되네요 [4] 산호초2010 2023.07.09 356
123698 여름철, 하드 [3] 왜냐하면 2023.07.09 230
123697 [영화바낭] 듣보 B급 장르물 두 편, '테이크 나이트', '영혼의 사투'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3.07.09 266
123696 프레임드 #485 [6] Lunagazer 2023.07.09 88
123695 음바페 인터뷰로 시끄럽군요 daviddain 2023.07.09 438
123694 갓 오브 블랙필드 라인하르트012 2023.07.09 211
123693 [영화바낭] 기대 이상의 튼튼한 귀환(?), '이블 데드 라이즈' 잡담입니다 [10] 로이배티 2023.07.09 444
123692 챗봇한테 유인촌을 물어보니 [2] 가끔영화 2023.07.08 442
123691 NewJeans 뉴진스 Super Shy MV 상수 2023.07.08 187
123690 프레임드 #484 [2] Lunagazer 2023.07.08 10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