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2019.02.20 14:26

흙파먹어요 조회 수:921

서른 살 겨울의 일이다

고만고만한 동네라 누구네 집 감나무에 까치만 앉아도, 글쎄 까치가 감나무를 뽑았다며 소문이 돌곤 했는데,
드디어 나 역시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만 것이다.
"OO이가 글쎄 바람이 났대!"

이 품행이 방정치 못한 인간이 외박을 밥 먹듯이 하더라는 거다(내 얘기다)
그때 만났던 아가씨께선 공사다망하시어 자발적인 새벽별 보기 운동에 여념이 없으시던 때.
소문에 격노하신 그분께선 없는 시간 쪼개어 나를 추포.
형틀에 매어 놓고 일단 매우 치신 뒤 사자후같이 일갈 하시었다.
"그러니까 옷 좀 갈아입고 다녀 이 인간아!!"

명품과 짝퉁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걸친 사람의 자신감 아닐까?
재밌는 것은 자신감 충만한 이는 자신감의 대상이 되는 것의 진위 여부를 따지거나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마치, 나를 친국 하시던 그분께서 소문의 진위 여부를 묻지 않으셨던 것처럼.
물론, 이 경우에는 확신의 근거가 좀 달랐지만... -.-

샤넬의 날라리 할배가 엄청난 분이시긴 하다.
옷은 자라 세일할 때나 사 입는 것인줄 아는 주변의 시커먼 놈들도 이 할배는 안다. 그리고 그 죽음에, 아!... 탄식하니 말이다.
이 할배의 패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보아야 한다.
분명 같은 돈을 들이고도 이 할배의 날티 나는 세련 됨을 따라가기는커녕,
어딘지 모르겠는 촌스러움을 풍기는 시니어들의 문제는 자신감의 결여다.

흔히 이태리의 할배들은 기왕에 날티를 풍기기로 작정한 이상, 아예 날티를 뒤집어 쓴다.
칼 같은 구두부터 색색의 양말, 정재형을 빠리지앵으로 만든 몸에 착 감기는 슈트와, 말끔하게 정돈 된 외모.
그에 걸맞은 매너, 그리고 자신감!

그렇다면 무작정 들이대기만 하면 자신감이 충분 되는가?
얼마 전 휴일에 지하철에서 한 때 좀 놀아봤음직한 중년을 봤다.
그는 요즘 애들식으로 차려 입고, 삐딱한 자세로 앉아 폰을 보며 요란하게 웃어대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마땅히 날티와 날라리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적 위신에 매여, 그렇게 해도 될까? 라며 스스로 위축되어 아무 데서나 골프웨어를 걸치는 우를 범해서도 아니 되지만,
설령 입고 싶어서 십대의 의복을 갖추었더라도 풍기는 매너 만은 중년의 품위를 놓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일찍이 현아 선생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무대에는 무대의 에티튜드가 따로 있는 것이라고.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날티의 교본으로는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시던 코너리 옹과,
<킹스 스피치>에서 눈 앞에 나타난 지존에게 꿀리지 않고 찻물을 올리던 러시 옹의 그것이 있다 하겠다.
비록 그곳이 가난한 동네를 관통하는 그럴싸 하지 않은 도로일지라도,
어디 비는 새지 않을까? 의심되는 낡은 교습소일지라도, 마지막까지 후까시를 놓지 않는 그 자세.
제대로 단정히 갖춰 입은 정장과, 그 옷이 부끄럽지 않은 여유와 매너.

만약 샤넬 할배께서 그 날티나는 옷을 입고 믹 재거처럼 손을 흔드는 대신,
흔한 동양의 정치인처럼 근엄을 떨고 앉았더라면 그 순간 패션은 테러가 되었을 거다.

매너는 남자를 만들지만, 자신감은 남아의 매너를 완성하는 것.

이제 씹다 뱉은 껌처럼 생겼던 록스타들에 왜 소녀떼가 자지러졌는지 하나의 오래 묵은 질문이 풀리려 하고 있다.

자신감.

그것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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