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구요.



 - 스웨덴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스웨덴에서 가족을 버리고 홀로 일본으로 이주해서 통역 일을 해서 먹고 사는 외로운 여자로 등장합니다. 원작 소설이 있는데 작가가 영국인이고 주인공도 영국인이었다죠. 배우를 감안한 변경 사항인 것 같습니다. 뭐 어쨌든 1989년 일본에서 사방에 벽을 치고 외롭게 살아가는 서양인 여성이기만 하면 되는 이야기라서 크게 중요한 건 아니구요.

 암튼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 분의 친구... 혹은 지인 한 명이 실종 상태입니다. 비슷한 또래 여성이고 미국에서 왔대요. 그러다 바닷가에서 그 분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고 그 분을 생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우리 알리시아님께서 경찰서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습니다. 어떻게 알게된 사이냐 등등 질문을 받다가 회상 시작.

 알리시아에겐 길 가다가 자기 얼굴을 찍어대는 바람에 가볍게 시비를 벌이다 연인 사이가 된 일본인 남자 친구가 있습니다. 사방에 벽을 치고 살던 주인공이지만 이 남자에겐 뭔가 특별함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다가가 연인이 되었죠. 그런데 그냥 알고 지내던 친구 하나가 미국인 여성을 소개해줘요. 미국 살다가 일본엔 방금 왔는데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 해서 집도 못 구하고 있으니 니가 도와주라고. 귀찮지만 맘이 약해서 같이 집을 구하러 다니다가 살짝 친구 비스무리한 관계가 되는데 문제는 이 막 사귄 친구놈이 나의 소중한 남자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고 심지어 들이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주인공은 자기랑 엮이는 사람들이 자꾸만 세상을 떠나버리는 고약한 징크스 같은 게 있고, 그것 때문에 성격이 자폐 비슷해져서 일부러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라로 와서 살고 있는 딱한 인간이었고. 그 와중에 모처럼 마음을 준 남자 친구에게 들이대는 이 미국 여자애가 점점 꼴 보기 싫어집니다...



 - 장르가 모호한 영화입니다. 실종된 친구의 행방과 생사 여부를 놓고 미스테리를 던지긴 하는데 시작부터 60분을 훌쩍 넘기는 시간 동안 그냥 낯선 타지에서 타인들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불안정한 멘탈을 지닌 여성의 고독과 번뇌를 보여주는 데에만 집중해요. 그러다 스릴러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하면 런닝 타임은 30분 정도 밖에 안 남아 있구요. 몹시도 장르적인 클라이막스를 지나고 나면 다시 원래 하던 얘길 마무리하고 끝이 나죠. 그런데 이런 이질적인 두 분위기가 그렇게 잘 섞여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냥 이 얘기하다가 저 얘기하고, 다시 이 얘기하다 끝나는 느낌.



 - 사람들이 몹시도 싫어했던 번역제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여러모로 닮은 느낌을 줍니다. 일본땅에 홀로 뚝 떨어진 서양인을 통해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니까요. 여기 주인공은 일본어를 아주 잘 하고 또 홀로 사는 게 본인의 선택이고 하니 이야기의 결은 많이 다르지만 뭐 기본 설정이 그렇습니다.

 1989년으로 설정된 일본 사람들, 일본 동네의 풍경들은 꽤 그럴싸하고 거기에서 21세기 미인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돌아다니는 모습들은 꽤 낯설고 고독해보이면서 보기 좋은 그림과 분위기를 뽑아내지만... 주인공의 처지가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위에서 말한대로 그게 본인 선택이기도 하고, 또 이야기가 좀 엉성엉성해요.

 또 일본 도심에서 바닷가, 온천, 관광지로 옮겨 다니고 마츠리 풍경을 보여주는 등 쓸 데 없이 다양하게 일본의 풍경을 보여주다보니 이거 무슨 관광 홍보 영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 암튼 뭐... 정리하자면, 주인공의 고독과 내면을 보여주는 파트는 보기는 좋은데 그렇게 와닿지가 않으면서 너무 느리고 깁니다. 또 주인공의 이런저런 과거와 개인사가 주절주절 나오는데 그게 거의 뭐 월드 팔자 센 여자 챔피언십 우승자급이라 공감도 잘 안 가고. 그러다보니 나름 괜찮았던 마무리 장면의 감흥도 크지 않구요.

 스릴러 파트는 나쁘지는 않은데 처음부터 진상이 빤히 보이는 데다가 전체적으로 분량도 짧고 되게 급하게 전개가 되어서 좀 쌩뚱맞은 느낌이구요.

 되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에요. 사실 어제 보다 한 번 졸아버려서 중간부터 다시 봤습니다. ㅋㅋ

 그럼 예술적으로 잘 만들었냐... 는 건 제가 쉽게 판단할 부분이 아니겠지만 별로 그래 보이진 않았습니다.

 꼭 보셔야할 영화까진 아니고, 그냥 우리의(?) 아름다운 비칸데르님께서 80년대 일본에서 헤매고 다니는 독특한 풍경을 원하시는 분들만 보셔도 될 듯 하네요.




 - 근데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중요합니다. 네. 아주 중요해요.

 한 시간 오십분 정도의 런닝 타임 중에 최소 한 시간 삼십 오분 정도는 화면에 잡힐만큼 혼자 다 해먹는 주인공인데 늘 예쁘고 아주 예쁘면서 종종 너무 예쁩니다.

 게다가 연기도 좋아요. 애초에 칙칙하고 속마음 안 드러내는 답답한 캐릭터라 크게 매력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 설득력있게 잘 소화해냅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냥 배우 구경한다는 맘으로 감상하시면 후회는 없으실 듯.



 - 주인공 남자 친구로 나오는 배우가 시종일관 나름 씬스틸러였는데... 너무나도 80~90년대 일본 배우식으로 느끼한 마스크에 연기도 뭔가 허세스러운 느낌이라 보기 부담스러워서 그랬습니다. 주인공이 이 분에게 반하는 과정도 좀 얼렁뚱땅인데 배우도 매력이 없으니 이야기가 무너지는 느낌. =ㅅ=;; 아마 캐릭터가 워낙 얄팍하고 무매력이라 더 그래 보였을 거긴 한데 어쨌든...; 뭐하시던 분인가 하고 검색해보니 일본 인기 아이돌그룹 '엑자일'의 멤버더군요. 화보 사진들을 보니 그래도 멀쩡하게 잘 생기신 것 같던데 영화 속 80년대 스타일이 너무 독하게 잘 어울렸던 게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실종된 친구로 나오는 배우는 별 느낌은 없었는데... 이 분이랑 주인공, 남자 친구가 셋이 어울려다니는 장면들만 보고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의외로 키가 작네? 라고 생각하다가 키가 168이라는 걸 찾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남자 배우는 키가 187이라고 하는데 이 분도 키가 큰 편이었나봐요. 영화 속에서 비칸데르가 거의 무슨 박정현급 체구로 보이거든요. ㅋㅋ



 - 오프닝에서 주인공이 일 하는 모습을 잠깐 보여주는데 비디오 테이프로 외국 영화 자막을 만들고 있습니다. 근데 화면에 비치는 영화가 바로 '블랙 레인'. ㅋㅋㅋ 미국인 형사들이 일본에 와서 야쿠자들 때려잡고 깽판치고 다니는 영화라서 일부러 넣은 것 같은데, 마침 그때쯤 크레딧이 제작자 이름이 뜨는데 그게 바로 리들리 스코트입니다. 시종일관 농담 한 번 안 나오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웃었던 장면이네요. 근데 찾아보면 또 블랙레인이 1989년 영화가 맞으니 어쩌면 원작에서부터 나온 장면일지도 모르겠네요. 실제 작가가 딱 그 때쯤에 일본에 가서 한참을 혼자 살아 봐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썼대요.



 - 원작 소설은 어떤 내용인가... 하고 찾아보니 뭐 내용은 대략 비슷해 보이긴 하는데, 그보다 눈에 띄는 게 '순수 문학과 장르 문학의 결합' 운운하는 찬사들이었습니다. 애초에 원작이 그런 성격이었나봐요. 근데 그 해에 이것저것 수상도 많이 하고 주목 받았다고 하니 소설의 완성도가 영화보다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독서 좋아하시는 분들은 영화 내용에 관심이 가면 책부터 읽어 보셔도.



 + 뻘생각이지만. Earthquake Bird를 '지진새'라고 번역했는데. 이렇게 번역할 생각이라면 '지진조'가 낫지 않으려나요.

 네. 적고 보니 정말 뻘생각이네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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