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기적으로 망작 영화를 일부러 봐서 망작게이지를 유지해야 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버즈 오브 프레이 (BOP) 는 좀 별로였단 생각입니다. DC는 최근 아쿠아맨, 샤잠, 조커로 이어지는 기사회생 3부작을 성공시켜 놓고도 

또 이렇게... 이쯤되면 DC 상층부에 망작 매니아가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ㅋㅋ 


1. DC는 DCEU를 표방하며 마블의 프랜차이즈 전략을 따라가고 있음에도, 개별 영화들이 제각각 따로 놉니다. 

흥행은 성공했지만 평가가 폭망이었기 때문에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the 수어사이드 스쿼드>란 제목으로 (..,)벌써 리붓하기로 했으면서도, 

<BOP>의 설정은 기존 수스쿼에서 정확히 이어집니다. 


도대체 이 무슨 갈팡질팡인가요. 설마 수스쿼 리부트가 나온다고 BOP까지 리부트하진 않을 텐데요.

게다가 DC의 바로 전작인 <조커>는 할리퀸의 애인이죠. 물론 이 조커는 수스쿼의 조커가 아니라

어두운 영화를 전문으로 만드는 DC블랙 레이블인지 뭔지를 표방한 또다른 평행세계관의 조커지만요. 

어쨌든 <조커>는 마틴 스코세시 열화카피같은 어두운 분위기였고,

이번 BOP는 수스쿼보다 더 정신없는(척 하는) '우리가 이렇게 못말리는 악동이지롱' 장르입니다. 


그럼 발매순서라도 좀 다르게 하던가요.. 또 왠지 모르겠지만 BOP의 할리퀸은 수스쿼에서와도 다릅니다. 

영화 내내 할리의 나레이션이 계속 깔리는데,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 봅니다. 할리의 말투가 좀 이상해서요. 

마치 서태지의 컴백홈 랩처럼 단어 단어를 씹어뱉듯이 말하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조커와의 이별 후 심경변화를 나타내는 장치로 보기엔

그냥 쟤 전작에선 안 그랬는데 이번엔 말투가 왜저러지? 란 생각만 들더군요. 이런 부분도 이 작품을 전작과 연결짓고픈 건지, 결별하고 싶은건지 헛갈리게 했어요.




2. 알 수 없는 스토리, 정신없는 연출.  

초반부는 사실 되게 좋았어요! 몇 분 간의 애니메이션으로 전작의 내용을 짚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이번 영화의 주적인 로먼 사이오니스 (유안 맥그레거) 소유 클럽에서 할리가 난동을 피우는 일상을 스케치 식으로 짚고 넘어가는데 편집 방식이나 템포나

무엇보다 음악이 상당히 좋아요. 음악감독이 누군지 아직 체크해보지 않았는데, 이 영화는 수스쿼 이상으로 러닝타임 내내 음악이 거의 끊임없이 나오는

음악과잉임에도 이 영화를 위해 만든 OST들도 선곡한 곡들도 전부 탁월했어요. 


하지만 그 정신없는 템포와 냅다 들이붓는 음악에 자꾸만 기능적으로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내레이션과 함께 반복되는 플래시백에 익숙해질 때 쯤이면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뭔데? 하고 시큰둥해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어요. 


이 영화의 주요 테마는 포악한 전남친의 데이트폭력에 시달렸음과 동시에 그때까진 그의 권력까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이 

이별 후 각성해서 한 여성으로서 독립한다. 겠죠. 진부하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게 잘 표현됐느냐 하면 좀 갸우뚱하게 되네요.

주요 소재라면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동네 깡패 로먼과 할리퀸, 동양계 소매치기 여아와 다른 인물들의 하룻밤 추적전이고요. 


소박한 설정이고, 로먼은 말 그대로 그냥 동네 건달두목입니다. 유안은 워낙 매력적인 배우고 이런 대단할 것 없는 악역 캐릭터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감독과 배우들의 말처럼, 로먼과 할리퀸 일행이 여혐집단과 여성들의 대립으로 각이 날카롭게 서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영화 중후반부가 영 시큰둥했나 봅니다. 

로먼은 하는 일이 없고, 외려 로먼의 심복인 재즈가 액션을 도맡아요. 게다가 둘은 여혐하는 게이 설정 같고요. 물론 게이 집단에 흐르는 여혐정서.. 같은 것도 있겠지만

굳이 이런 악당에 여혐 게이 설정까지 붙일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영화에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 보입니다. 


게다가 누가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삼켜서 그걸 화장실에서 다시 빼내기까지의 과정이 서브 플롯이라니, 좀 한숨이 나옵니다. 이 무슨 8,90년대 할리웃 팝콘무비같은 설정인가요.  

유명한 마릴린 먼로의 장면을 패러디한 짧은 스케치로 다이아몬드의 의미를 짚고 가는 과정은 좋았지만, 이런 철지난 설정은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3. 액션은 상당히 좋았어요. 전체적으로 체술이 주가 된 소박한 액션이고, 인물들 간 액션 스타일의 차이가 크진 않지만 괜찮았습니다.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공간은 마치 팀버튼의 배트맨 1처럼 만화적 공간에서 난장을 벌이는데, 나쁘지 않았어요. 

다만 카나리의 음파공격은 또 한숨이 나오게 했습니다. 이건 히어로 영화이고, 어떤 초능력을 보여도 되는 장르예요. 

하지만 <X멘: 퍼스트 클래스>에선 비슷한 음파 능력자가 자신의 능력을 미리 관객에게 설명할 때, 10대 엑스멘들이 만취한 채 자신의 능력을 하나씩 장기자랑 식으로 자연스레 보여줬습니다.


이 영화에선 클럽 가수로 일하는 카나리가 고음을 올리자, 잔에 살짝 금이 가는 묘사 밖엔 없었고요.

차라리 초반부에 만취한 할리를 어떤 남자가 차에 태우려는 씬에서 그를 구출하는 카나리 시퀀스에서, 차에 이미 탄 그들을 카나리가 

음파 능력으로 차 유리를 모두 부수는 식으로 연출하면 미리 빌드업이 잘 됐을 거 같아요. 




4. 캐릭터들은 아주 잘 살진 못했다고 봅니다. 형사, 클럽가수 출신 음파능력자, 가족을 잃은 암살자, 소매치기 동양 꼬마 등이 나오는데 

각자 훨씬 더 잘 살려줄 방법이 많아 보여요. 특히 왜 항상 이런 할리웃 영화에선 백인, 히스패닉, 흑인 여성들은 훤칠하니 인물 번듯한데 

동양 캐릭터는 일반적인 미형과는 거리가 멀게 설정하는지. 계속되는 의문입니다. 그래야 더 PC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 영화의 각본도 감독도 동양계 여성입니다만...

헌트리스는 아주 매력이 철철 넘치는 캐릭터였어요. 가족을 잃고 가차없는 석궁킬러로 단련한, 스모키 화장의 분노조절장애 암살자인데요. 

거울 앞에서 치명적인 대사와 포즈를 연습하지만 사실 사회성이 부족해서 수줍은 킬러. 무슨 모에 종합선물세트네요. 

원래 원작만화의 자경집단 버즈 오브 프레이는 카나리, 헌트리스, 형사 몬토야가 주축인 팀이라고 하고 이 영화도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는데, 저는 그게 더 나았을 거라고 봐요.

할리퀸과 그들의 유대는 좋은 편이었지만, 원작의 팬들은 섭섭할 수 있겠더군요. 


전체적으로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비빔밥처럼 뒤섞인 영화라, 호불호는 갈릴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밸런스가 좀 괴상해서 불호입니다. 

그런데 음악은 아주 좋아서 OST는 찾아들을 것 같고, 헌트리스라든가... 헌트리스가 너무 좋긴 했어요. 


ps. 헌트리스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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