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 표지에 방탄소년단이 나오고 기사도 실렸습니다. 기사 읽으면서 풉! 했습니다. 아미(방탄 팬)가 쓴 티가 많이 나서요. 서구 백인 중년 남성이 쓴 영문지의 칼럼들에서 성적으로 나약하고 게이 같은 아시아 남자애들이라는 경멸적인 관점이 드러날 때가 종종 있었죠. 그런 기사들과는 다르게 이번 타임지 기사는 기자가 아미거나, 적어도 아미에게서 철저한 조언을 얻고 쓴 것 같습니다. ‘언젠가 슈퍼볼에서 공연할 지도 모르죠라는 슈가의 말로 기사를 마무리한 것도 참 꼼꼼하다고 느껴졌고요. 슈가가 체조경기장 콘서트, 주경기장 콘서트, 대상, 돔투어 등 그 시점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해보이는 꿈을 말하고서 나서 1년 정도 후에는 그 꿈이 실현되는 일이 반복되어서 민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밈이 된 슈가의 예언을 기사에서 활용한 것이죠. 기사 제목부터 'How BTS is Taking Over the World'인데 이건 방탄 노래 중 Pied Piper 가사에서 따온 겁니다.

 

pied piper는 피리부는 사나이란 뜻인데 노래가 참 골 때립니다(....) 본격 팬들 뼈 때리는 노래입니다. 팬송이 팬 러브송이 아니라 팬 저격송이라니(....) 이렇게 정면으로 자기 골수팬들을 디스하는 아이돌은, 팬미팅에서 신화는 여러분들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던 신화의 김동완 말고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pied piper는 오직 방탄만 만들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이 노래가 아주 맘에 듭니다. 역으로 팬들로부터의 가차없는 비판도 듣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든요. (알엠이 직접 그런 말을 하기도 했고요.)


1. 생일축하 영상광고 조공 문화

방탄 멤버 지민은 올해 생일 직전에 아프기도 했고, 9년만에 가족들과 생일을 같이 보내기도 해서 아마 올해 생일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전세계에서 송출된 거대한 규모의 생일 축하 광고도 빼놓을 수 없겠죠. 한중일은 물론이고 동남아, 미국, 영국의 대형 스크린에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주 동안 지민의 영상이 나오고 지민 모습을 래핑한 버스가 다니고 기타 등등. 아마 다 합치면 총 광고비가 수백억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한국 팬덤의 조공 문화가 전세계에 수출되면서 생긴 일이고 특히 중국 팬덤에서 엄청난 돈을 쓰고 있습니다.

저도 코엑스의 100m짜리 영상광고에 나오는 지민의 모습을 보면서 배시시 웃긴 했습니다만, 이런 조공 문화가 좋게 보이진 않아요. 그야말로 돈 많은 팬의 자기과시잖아요. 이런 영상광고를 본다고 누가 새로이 팬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광고회사만 돈을 버는 거죠. 스타의 소속사들도 팬들이 공짜로 홍보를 해줘서 홍보비를 아끼니 좋아하겠고요. 그리고 스타는.. . 제가 스타의 맘은 모르겠지만 꽤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짜릿하고 달콤한 악마적인 유혹이기도 하겠고요.(‘피 땀 눈물이 떠오르는군요.) 팬들이 생일축하선물로 의미 있는 일에 기부를 하기도 하던데, 아직까지는 광고 조공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지만 결국 사회적인 메시지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문화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하네요.

 

2. 원본과 복제본

리액션 영상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뭔가 영상을 보며 따라하는(예를 들면 춤 커버) 모습을 찍은 영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영상을 보면서 우와~ 저것 좀 봐! .. 오마이 갓!’하는 본인의 리액션을 찍어서 올리는 것이더라고요.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리액션 영상을 누군가 봐주니까 올리는 거잖아요?!

게다가 그런 리액션에 대한 리액션 영상이 또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남의 리액션을 보고 리액션을 하는 거죠. ‘얘가 이 안무를 보고 놀라는 모습 좀 봐! 눈 가리고 춤추는지 모르는데도 저렇게 감탄하는군. 잠시 뒤 얼굴 클로우즈업되었을 때 안대를 보면 넌 아마 기절할 거다! 옳지, 그렇지! 놀라자빠지는군!’ 하는 식입니다.

영상이라는 것도 이미 실제의 복제본인데, 복제본의 복제본, 복제본의 복제본의 복제본.. 계속 이어집니다. (. 그렇습니다. 여기서 시뮬라시옹이란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네요.) 놀랍게도 리액션 영상의 조회수도 상당히 많습니다. 원본은 하나지만 리액션은 아주 많기 때문에 조회수를 합치면 복제 + 복제의 복제 + 복제의 복제의 복제.. 가 원본을 능가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용과 참조, 패러디와 오마주가 무한히 이어지는 거죠.


하나의 예를 들어볼게요. 저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피 땀 눈물뮤직비디오를 처음 볼 때의 리액션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fhHcgbFN_rg ) 본인들이 나오는 뮤비 장면을 보면서 서로 놀리기도 하고 쑥스러워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저는 여기서 멈추지만 누군가는 방탄 멤버들의 리액션에 다시 본인의 리액션을 넣은 영상을 올립니다. 그리고 그 리액션들을 모아 방탄 셀프 리액션 영상의 반응이 열광적이다3차 리액션이 나옵니다... 그리고 돌고 돌아 방탄 멤버들이 그 리액션의 리액션을 보고 피드백을 하기도 합니다. 이제 원본은 딱히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인터넷도 없던 1981년대에 시뮬라크르를 생각해냈다니 보드리야르가 난 놈은 난 놈이여(?)

원본보다 원본에 단 댓글과 리액션 제스쳐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물론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겠지요. 인간은 다른 존재들의 반응을 구경하는 것을 즐기고, 디지털 기록과 인터넷은 이 종특을 폭발적으로 극대화시켜줍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클릭 하나면 가능해집니다. 남들의 반응을 움짤로 만들어서 초 단위로 반복해서 보고, 전세계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반응, 반응에 대한 반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런 식으로 반응그 자체를 증폭시킨 적이 인류 역사상 없었죠... 자신의 얼굴의 연쇄에 둘러싸인 멤버의 얼굴이 나오는 아이돌 뮤비를 보면 방탄소년단도 이런 점을 자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Love myself'를 말하는 방탄의 인기가, 인기가 인기 자체를 낳는 리액션의 연쇄에 힘입었다는 점이 역설적입니다. 데뷔 전부터 방탄이 업로드한 방대한 규모의 동영상과 떡밥들이 넷을 선점하고 있고 현재 미발표 상태인 음악과 콘텐츠도 많기 때문에 (발표할 앨범은 이미 3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상태) 당분간 방탄의 선발 주자 효과는 이어질 것 같습니다.

 

3. 호모 사피엔스의 종특

개발국, 저개발국, 수렵채집사회 등 다양한 사회의 대화를 수집해 분석해보니 모든 대화의 90%는 뒷다마였다고 하는 연구 결과를 봤습니다. 오죽하면 프란체스코 교황이 뒷다마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는 말을 할 정도. 뒷다마 말고 생산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듀게 과학책 모임을 열심히 나갔던 저도, 가장 재미있었던 책 모임이 언젠가 곱씹어봤더니 랩 걸의 작가가 빌을 염전 노예처럼 부렸다고 다같이 까댔던 날이더라고요(...)

듀게는 뒷다마와 친목질을 경계하는 특성이 있는 편인데, 그렇지 않은 게시판에서는 VS와 줄세우기 글이 줄기차게 올라옵니다. ‘**가 잘 나가나요?’ ‘** 정도면 외모 상위 몇 %인가요?’ ‘**## 중 누가 인기가 많나요?’ ‘**는 한 물 갔나요?’ 등등... 정말 끝도 없이 올라옵니다. 여기서 남들의 평가를 남들에게 묻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세간의 평판이 궁금하다면 내가 직접 검색해서 알아볼 수도 있고, 그냥 내가 체감하는 평판을 믿고 갈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예쁘면 그렇게 보면 될 것을, 남들에게 다시 물어 봅니다. 남들에게 예쁘냐고 직설적으로 묻는 것도 아니고 남들에게 예쁘다고 평가를 받느냐고 굳이 2차적으로 물어본단 말입니다. ‘남들의 평가자체보다, ‘남들의 평가를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남들이 믿고 있다고 남들이 믿는 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연예인들의 평판을 담은 X파일도 남들이 이렇게 믿는대라는 믿음을 담았을 뿐이지만 상당히 파괴적이었죠.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변화해갈지 궁금하면서도 우려스럽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빅 데이터를 쥐고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쥐고 흔들지도 무섭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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