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의 시대는 갔지요

2018.12.27 09:07

흙파먹어요 조회 수:1734

신춘문예와 문예지 공모로,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파이에 비하자면 정말 많은 평론가들이 양산되고 있잖아요? 하지만 순수문학을 소비하는 독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전투적으로 책을 판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론은 정말 극소수를 위한, 말 그대로 학문을 위한 문학의 세계로 편입이 되버렸어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지만 전 매우 단순하게 봐요. 더이상 문학이 힙한 장르의 오락이 아니어서예요. 힙하면 문학의 아름다움은커녕 그게 싫어도 좀 있어보이기 위해 지갑을 열고 덩달아 판이 커지기 마련이에요.


그게 7~80년대. 단일 시집이 백만 권 팔렸다는 그 신기한 시대에는 마치 누구의 혈관에 더 메탈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가를 겨루기 위해 비트를 쪼개어 달렸듯이 좀 더 난해하고, 풀이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텍스트가 소비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읽지도 못 하는 타임지를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는 우스개소리가 조롱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세계에 자신이 어떻게든 들어가 있다는 부심조의 자학개그이기도 했다구요. 초코파이 팔리면 오예스도 팔린다고, 문학이 팔리니 평론도 팔리고, 평론가라는 사람들도 힙스터들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되었더란 겁니다.

그러다 영상과 인터액티브의 시대가 오며 문학이 멸망했죠? 그 외에도 수 많은 요인이 있겠다만 어쨌든 문학은 아시발쿰 망했어요. 한때 2~30대 여성들이 일본문학에 열을 올렸을 때가 파우치에 마지막 남은 TNT 폭탄이었는데, 문학판은 변화를 거부하고 골빈 여자들이 왜놈들 로맨스물이나 본다고 스스로 기폭제를 내던져버렸단 말입니다. 


신인들 등용하는 심사평은 핍진성이니, 집요한 묘사라느니 되도 않는 자화자찬이나 늘어놓으며 대형 출판사들이 자기 살 깎아 먹으며 놓지 않는 후까시에 기대어 극히 일부만 우러러보는 자기들만의 성채를 더 높이 쌓기 시작했어요. "순수"라는 이름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도 이무렵이었을 겁니다. 원래 후방에서 군생활 했던 놈들일수록 군대 얘기를 더 하는 법.

여기서 평론의 멸망이 시작됩니다. 원래 들여다보는 사람 얼마 되지 않았던 평론의 세계는 문학이 더이상 힙한 세계가 아니게 되자 이른바 문단이 쌓아올린 성채 가장 깊숙한 곳에 몸을 의탁하게 돼요. 그들은 철저히 B2C가 아닌, B2B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받아주느니 문예지, 실리느니 문단에 입이 매인 소설가의 소설집 부록 페이지. 마치 우리 동네는 상수, 쟤네 동네는 합정인데 서로서로 할 이유 없는 디스를 하고는 다 같이 모여앉아 어새하게 소주 나누고 어색하게 웃는 래퍼들처럼 싫은 소리 못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거지요. 바야흐로 대주례사비평의 시대. 김현이 죽으며 남긴 까는 정신! 비평 바닥의 원피스가 어딘가에 묻혔다고 소문은 들었으나 아무도 찾으러 가지 않는 민망한 상황

거기에 어느덧 세계는 채널이 다변화 되고, 세 줄 요약이라는 오랑캐의 습속에 지배를 당하게 되며 소비자들이 전면에 나서 비평이 현실세계에 발을 디디는 것을 거부하게 돼요. 이제 불편한 말을 하려거든 일단 사람들을 웃겨야 합니다. 엄청 웃기는 가운데 중간 중간에 툭 던져놓듯이 까는 의견을 트랩으로 깔아놔서 소비자가 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걸리도록 해야 되는 거죠. 이걸 잘 했던 사람들이 90년대 말에 등장한 인터넷의 키보드 워리어들. 전설의 이빨, 웃는 낯의 암살자들. 문래동 시절 딴지일보의 필진들이었어요. '거의 없다'라는 이름을 쓰는 딴지인들 중 한 명이 영화비평으로 유튜브에서 통하는 방법이 이겁니다.

야 이 병신아! 라고 서슴 없이 말 하는 패기, 그 와중에 툭툭 던지는 메시지. 그런데 말입니다....

대중들은 딱 거기까지만 말 하고 듣는데 익숙해져 버렸어요. 헤비메탈의 제국이 키보드를 무대에서 추방하고, 팔박자를 다시 열여섯으로 나누어 달려간다고 그것이 무의미한 장사는 아닐진데, 사람들은 텍스트를 집요하게 파내고, 행간의 의미에 주목하는 평론의 다른 방법을 유령취급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제 평론을 하기 위해서 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하던대로 주례사 비평을 하든가, 채플린의 가면을 쓴 괴벨스가 되든가.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요. 개소리도 할 수 있어요. 한 놈만 팬다고 욕을 먹을 수 있어요. 그런데, 대놓고 까는 정신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모두가 하나의 군복을 입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면, 이 산이 아닌 것 아니냐고 말하기 위해 어쨌든 그 산에 올라줘야 한다면 비평, 칼럼이 왜 필요할까요? 지금 음식 비평가 황교익을 공격하는 대중의 반응을 보면 주례사 비평을 쓸 수밖에 없었던 문단의 분위기가 떠오릅니다. 지금 어느 비평가가 한강을 씹는다는 건 미친 짓이죠. 소설가 조정래는 대가로 칭송 받지만 최는 10년 사이 그가 써낸 소설은 그냥 나무시체 아닙니까? 그게 뭐야? 어이가 없어서... 근데 다들 감동 받았대. 역시 대가래. 왜 아무도 꼬집는 말을 안 하지? 최근에 평론가라는 사람이 대놓고 쓴소리 하는 걸 들어본 게 이동진 씨가 유일해요.

저는 황교익 선생이 욕을 얼만큼 처먹든 계속 백종원 사장을 까면 좋겠습니다. 쓴소리 안 하면 리뷰어지 비평가는 아니잖아요? 근데, 당분간 안 될 거에요... 평론가들의 시대는 이미 가버렸으니까요. 생각은 각개로 감화 되거나 각개로 격파 당하는 것인데, 하나의 깃발이 꽂히면 지구 반대편에 앉아서도 같은 생각이라는 군복을 맞춰 입을 수 있는 인터넷 시대. 무리를 이룬 생각들은 흔히 신앙이 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도 기왕 이렇게 된 거, 황교익은 끝까지 후까시를 놓지 말고!!

아침부터 공복에 폰으로 떠들려니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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