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어디로갈까'씨

2019.03.20 05:24

어디로갈까 조회 수:1311

어제 올렸던 번역 유감 후기입니다.
(후배에게 번역은 내가 다시하기로 했다, 다른 이에게 하청줬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드는 너의 결과물에 대해 설명할 게 있으면 해라, 들어보긴 하겠다는 메모를 보냈습니다. 곧이어 죄송하고 괴롭고 너무 부끄러워서 죽고 싶다는 답문자가 왔어요. '죽고 싶다'에서 제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의 괴로움을 긍정한다는 의미에서 아래의 내용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밤바다 같이 캄캄한 감정 위로 쏘아올린 조명탄인 셈입니다.
밝히자면, 아랫글은 십여 년 전 블로그질할 때 '죽고 싶다'는 말버릇을 가진 친구 땜에 인터넷을 뒤져 정리해 올렸던 내용을 복.붙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접속하려니 비번이 생각 안 나서 한참 헤맸....)
                                                               *
-----------------------------------------------------------------------------------------------------------------------------------
'죽고 싶'은 너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죽음에 이르는 방법
1. 의사縊死 (목매기)
전해지는 속설로는 가장 황홀하게 죽는 방법이다. 부탄가스류의 향정신성 기체 질식사도 그렇다는데, 뇌의 산소 공급량이 저하되어 두뇌 활동이 둔해지므로써 Achoholic state와 유사한 기분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2. 분신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분신을 기도한 후에도 보통 며칠 간은 목숨을 유지한다니, 아무리 피부가 전소되어도 사람은 즉시 죽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망에 이르는 이유는,  피부 고유기능 -체온조절과 노폐물 방출의 기능 -이 마비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합병증 때문이라고 한다. 체온 상승, 두뇌에서의 이종단백질형성, 신체 저항약화가 합병증을 일으키는 거란다.
아무튼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며칠 간의 고통은,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것이라는 임상보고가 있더라. 

3. 할복
분신과 비슷한 강도의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이나 영화에 묘사된 영향으로 멋있고 장렬한 죽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는데, 실은 칼로 배를 긋고 내장을 다쳐봐야 사람은 즉시 죽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우리 몸의 혈관들은 장기나 수족이 떨어져 나가면 저절로 수축되는 성질이 있어서 맥박도 감소하고 출혈량도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창자를 꺼내봐야 배만 아플 뿐, 의식은 명료한 채 기분만 매우 불쾌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오래 살지는 못한다. 창자가 없는데 어떻게 살 수 있겠나! 
그래서 일본 사무라이들은 할복을 하면 적이든, 동료든, 그 자리에서 목을 쳐주었던 것이다. 잔인해 보이지만,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일종의 안락사였던 셈이다.

4. 추락사
그다지 훌륭한 방법으론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이카루스라고 착각하거나, 생의 마지막 순간을 번지점프의 쾌감으로 장식하고 싶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덕적인 사람이 선택할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마침 그 길을 지나고 있던 사람에게나, 혹은 아랫층 창가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추락하는 뭔가를 봐야 하는 이에겐 일종의 테러와도 같은 충격을 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작 본인에게도 별반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 듯싶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살 수 있는 위험부담이 큰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5층 높이에서 뛰어내리고도, 죽지 못하고 식물인간으로 여생을 보낸 사례가 드물지 않다.
또 하나의 단점이 있으니, 추락사를 택했다가 지면에 닿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죽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굳이 이런 실패를 경험할 이유가 있을까?

5. 권총사
관자놀이에다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 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 몇 초 간의 극렬한 두려움만 견디면, 거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각도를 정확히 잡지 못했을 경우, 죽음에 실패할 뿐만 아니라 평생을 무뇌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단점이 있다. 한국에선 총 구하기의 어려움이 가장 큰 단점이겠다.
   
6. 익사
이것도 참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에 의하면, 익사를 시도한 사람의 대부분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수면 위로 떠오르려고 발버둥친 흔적이 있다고 한다. 익사의 원인은 대부분 폐에 물이 차서 발생하는 호흡곤란 때문이다. (바닷물이 코에 조금만 들어와도 불쾌하기 이를데없던 찝질한 소금기를 떠올려보라.) 
추락사와 마찬가지로 타인에게 큰 폐를 끼치는 방법이기도 하다. 상상해 보라. 모처럼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있는 이의 시야에, 혹은 수영을 즐기고 있는 사람 곁에서 시체가 두웅 떠오르는 장면을! 

7. 단두사
엄밀히 말하면 자살의 범주에 넣을 수 없지만, 정보 공유 차원에서 적는다.
신체에서 목이 떨어져 나가도, 십 초 정도는 뇌에 의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놀랍다.) 폐와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턱을 움직일 수 있는 하악근의 연결이 끊어졌으므로 말은 할 수 없지만, 눈동자를 움직이며 십여 초 정도는 마지막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좀 괴로울 것이다.)

8. 음독사
가장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지만, 자기 살해가 아닌 자기 연민의 냄새가 짙다. 죽음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삶에서 도피하는 자세로 여겨진다. 특별히 그 과정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성숙한 인간이 선택할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9.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Dorothy Parker의 시 한 편을 첨부한다.

- Resume 

Razors pain you; 
Rivers are damp; 
Acids stain you; 
And drugs cause cramp. 
Guns aren't lawful; 
Nooses give; 
Gas smells awful; 
You might as well live.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377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10474
111814 [넷플릭스] 판소리 복서 올라왔습니다. [9] eltee 2020.01.31 543
111813 [서브웨이] 듀게팁도 못 믿을.. [11] toast 2020.01.31 792
111812 전세기 바낭 + 동네 고양이 생태 보고서 - 특보 [6] ssoboo 2020.01.31 635
111811 윈도우10으로 다들 바꾸셨는지 [12] 노리 2020.01.31 894
111810 김동조, 윤석열, 대선후보 여론조사, 컨테이젼 (2011) [25] 겨자 2020.01.31 984
111809 게시판에 그림 올리는 게 정말 오랜만이네요 [5] 낭랑 2020.01.31 303
111808 요즘 미디어 [8] 양자고양이 2020.01.30 567
111807 직장에서 떨려남. 내가 필요한 곳에서 일다운 일을 할 수 있을 날이 내게 올지 [9] 산호초2010 2020.01.30 928
111806 악과 생명 [8] Sonny 2020.01.30 445
111805 요즘은 3인칭을 그, 그들로 통일하나요? [4] 예정수 2020.01.30 497
111804 [듀나인] 콘솔 게임기 및 게임 추천 부탁드립니다. [11] MELM 2020.01.30 410
111803 [스포일러] 샤말란의 '글래스' 결말에 대한 투덜투덜 잡담입니다 [6] 로이배티 2020.01.30 451
111802 이런저런 일기...(서울, 지역색) [1] 안유미 2020.01.30 305
111801 [회사바낭] 대상의 변화 [10] 가라 2020.01.30 510
111800 음악이냥이 알려준 노래들 [2] 칼리토 2020.01.30 250
111799 안철수씨를 바라보는 기시감 [21] 칼리토 2020.01.30 1026
111798 [넷플릭스바낭] 샤말란 수퍼 히어로 트릴로지 완결편 '글래스'를 봤어요 [13] 로이배티 2020.01.30 647
111797 아이리시맨 대본 리딩 [2] mindystclaire 2020.01.29 574
111796 이런저런 잡담 [4] 메피스토 2020.01.29 374
111795 포시/버든 어떻게 볼 수있을까요? [11] 산호초2010 2020.01.29 32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