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하고 싶은 말들

2015.11.10 05:59

겨자 조회 수:2713

1. 어제 저는 피터 드러커의 오래된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울분이 터질 때, 잠 안올때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이 사람은 인간의 복잡함을 알고 있고 전체주의에 반대합니다. 이 사람 책 "피터 드러커 자서전"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내가 저술활동을 했던 지난 50여년은 집중화와 단일화, 획일화가 세상을 지배했던 시절이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사람이 규칙에 순종하고,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내용을 쓰거나 그려야 했고, 그 모든 사항을 중앙에서 결정했는데 (나치는 "같은 길로 가게 만들다"라는 말을 썼다), 이런 전체주의 국가는 일반적인 흐름에서 단지 정도가 지나쳤던 사례에 불과하다. 지난 50년동안 민주주의 사회 역시 이런 조류에 휩쓸렸던 것이다. 


(중략)


지금 우리가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는 지식사회는 조직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조직들의 사회 (조직이 여러개라는 점에 주목하자)는 다양하게 분산된 다중적인 형태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조직 안에서도 표준화되고 획일적인 구조를 탈피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드러커는, 프리메이슨인 자기 아버지 집에 나치가 들이닥치는 경위, 나치가 들이닥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집을 팔고 국경을 넘어 온 가족이 도망가는 경위를 간략하게 적고 있습니다. 1909년생인 이 사람은 유럽이 전체주의에 물드는 것을 보면서 20대와 30대를 보냈죠. 


11월 3일 박근혜 정권은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고시했습니다. 상당히 준비해온 티가 납니다. 연합통신에서 전한 국사교과서 국정화 일지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2. 요즘 트위터에서 소라넷에 대해 말하더군요. 소라넷이란 웹사이트가 있는데, 여기에 남자들이 술먹은 여자들 성기에 물건을 집어넣고 사진을 찍어 올린다고 해요. 여자 하나를 남자 여럿이 돌아가며 윤간했다고 증언하는 글을 올리기도 하고. 이에 관련해서 은행강도 () 님이 트윗을 날리셨더군요. 저는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트윗내용

사실은, 대다수의 소라넷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국민은 이미 그 사이트를 제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윤리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위법인 곳을 옹호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럼 뭘 더 공론화해야 하는가?

공론화는 대중적인 여론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 사안은 이미 공론화가 충분히 된 사안이다. 이후는 실무일 뿐이다.

여러분의 의견에 시큰둥함을 보이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그 의견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으로 규제하기에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알기 때문에 시큰둥한거지. 그냥 니들이 이제 알아서 공론화니 뭐니 뒷북치는거라고..



이 트윗은 여러모로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데, "대다수의" "극소수"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대다수"는 도대체 몇 퍼센트가 대다수인 것일까요? "극소수"는 몇퍼센트가 극소수일까요? 소라넷 유저들은 소라넷을 인지하는 국민들일텐데, 이 사람들은 소라넷을 제재해야한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하고 있을까요? 트위터에서도, 포털 댓글에서도 내놓고 소라넷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눈에 뜨이던데, 이 사람들은 어째서 찌그러지지 않고 계속 자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요?


저는 소라넷이란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창작 야설이나 읽는 곳인지 알았지, 성매매 알선하고 강간 사진 인증해 올리는 곳인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니들"로 불리우는 여자들은 이런 거 잘 몰라요. 여자들 사이에서 알려지는 건 공론이 아닙니까? 여자는 대중에 속하지 않아서? 저는 소라넷에 대해서 충분히 공론화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주변의 좋은 집안에서 순탄하게 자란, 평범한 여자들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느냐고 경악합니다. 또 상당수의 남자들은 "그러니 여자들이 정말 조심해야돼"라는 식으로 답하더군요. 무슨 공론화가 어떻게 되었다는지 모르겠네요. 


3. 서울대 이철희 교수가 쓴 "부모의 남아선호, 성역할 태도와 가사분담" 논문이 화제가 되었죠. 논문 내용은 경북남자와 결혼하면 인천남자와 결혼한 것보다 하루에 65분을 집안일 더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이 논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제 주변 남자가 했던 말이 가슴에 오래 남더군요.


"아니 무슨 집안일을 65분씩이나 더 할 게 있어? 집안일 할 게 뭐가 있다고? 나도 집안일을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던데."


저같은 경우는 만일 무료 노동력을 65분 쓸 수 있다면 (혹은 제게 한시간 5분이 더 생긴다면), 창틀도 닦고 청소기도 돌리고 부엌의 찌든 기름때도 닦고 (기름쓰는 요리를 하면 기름방울이 날아가 흩어져 기름때가 환풍기나 천장 윗부분에 내려앉아요) 빨래도 각잡아 개고, 겨울옷 빼내어 반닫이에 넣고 여름옷 벽장에 넣어 정돈하고 밑반찬 만들고 하는 식으로 할 일들이 눈에 주르륵 보여요. 하지만 이 남자분에게는 그냥 집안일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 거예요. '아내가 간헐적으로 시키는 일'이 곧 집안일이기 때문에 집안일은 65분씩이나 더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5분이면 끝나는 쓰레기 내놓기는 눈에 보이는데, 65분씩 걸리는 프로젝트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죠. 


4. 캔자스 대학 김창환 교수의 블로그에서 다음과 같은 포스팅을 읽었습니다. 김창환 교수는 새누리당이 양성평등을 중심이슈로 하여 대선을 치르겠다고 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여성 문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문제가 아주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별로 개선되지 않았고 여성들의 불만이 매우 높다. 휘발성이 강한 이슈다. 


(중략)


여성은 정체성의 중요 부분이라 범주 구분이 다른 어떤 이슈보다 더 명확하고, 여성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의 결혼 후에도 지속되는 사회 진출의 욕구는 높아졌으나,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미개국 수준이다. 게다가 시집이라는 문제까지 겹쳐서 인간적 설움도 만만치않게 겪었다. 한국 사회에서 불궈진 여혐에 열받지 않은 여성은 드물거다. 


요즘 센서스 자료를 이용해 한국의 결혼 패턴을 보고 있는데, IMF 이후 여성의 결혼 패턴이 확실히 바뀌었다. 남성은 IMF 이후 비록 전체적인 결혼 확률은 떨어졌지만 학력이 높을수록 결혼 확률이 높은 경향이 더 강화되었는데, 여성은 IMF 이후 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결혼을 더 많이 포기하는 경향이 보인다. IMF 이전에는 이런 경향이 없었다. 이렇게 결혼을 안하고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의 불만이 쌓일데로 쌓였다. 


IMF 이후 결혼보다 사회적 성취를 중시하는 기간을 일정정도 가졌던 고학력 여성이 이제 40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렀다. 이들 여성은 그 이전 세대 여성과 니즈가 다를 가능성이 크다. 예전에는 이렇게 다른 니즈를 가진 여성이 전체 여성에서 소수였지만, 이제 이 신여성이 2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의 여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게다가 40대 중후반이면 오피니언 리더의 위치에 오르거나, 지역 사회에서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연령대가 되었다.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이 계층이 자신들의 이슈에 폭발적으로 반응하여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새누리당의 대권주자인 김무성이 여기자에게 "넌 뭐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어"라고 하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새누리당에서 여성을 타게팅을 할 수 있다는 건 이 집단이 영리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합니다. 새정련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도 상당히 어둡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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