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들의 형태

2020.05.13 16:36

Sonny 조회 수:931

"게이들 때문에 코로나 퍼져서 짜증난다!"


친구한테 카톡이 왔습니다. 제 기준에서 좀 스트레스를 받는 말들을 하는 그냥 평범한 친구인데 이번에도 저를 좀 긁더군요. 참 웃고 넘기기 뭐한게, 제가 평소에 그런 혐오발언을 싫어한다는 걸 이 친구는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눈치가 없는 것 같아서 일단 그래요. 거기다 이 친구는 제가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만나기 뭐하다고 하면 항상 자신만만해하던 친구였습니다. 코로나 그까이꺼~~ 마스크 쓰고 손만 열심히 씻으면 되지~~ 그러면서 저를 몇번이나 밖으로 불러내길래 그럴 "시국"이 아니라고 해도 저를 너무 몸사린다고 하던 친구가 하필 또 성소수자만 잡아서 욕하는 게 제 입장에서는 좀 짜증이 나더라구요. 룸쌀롱 확진자 남자들 가지고 한 사발 풀어볼까 하다가 그냥 관뒀습니다. 과거에 빅뱅의 대성이 건물주로 있던 곳에 성매매업자들 세든 건 어떻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떨떠름한 얼굴로 모를 수도 있지~ 라면서 회피하는 거 보고 그냥 이런 이야기는 하지를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여자들 결혼하고 애낳는 걸 무슨 여자들이 이기적이라는 듯이 말해서 한시간 동안 제가 퍼부은 적도 있고...


사회적 약자는 도덕적 실패에 대한 책임을 그 누구보다도 심하고 무겁게 진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남자가 룸쌀롱 갔다가 확진자들이 우수수 나오는 건 별 말도 안나오지만 클럽갔다가 확진자로 판명된 사람의 성정체성이 퀴어면 그 때는 아주 몽둥이질을 하는 게 당연한 시국에 살고 있네요.


코로나를 타고 혐오가 번지는 형태를 여러 종류로 목격합니다. 앞서 말한 제 지인도 그렇고, 인터넷의 여러 게시판도 이런저런 혐오들이 돌아다녀요. 가장 눈에 띄는 것들은 원색적인 비하발언들입니다. ~충이라는 단어로 밑도 끝도 없는 모욕만 하고자 하는 경우인데,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따로 대응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람들은 설득의 의도가 전혀 없고 유아적인 감정발산만 하고 싶은 거니까요. 다 큰 어른들이 최소한의 논리와 글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자 하는 게 여기 듀나게시판일텐데 그런 곳에서 그냥 하고 싶은 말만 한다는 건 전혀 진지하지 않은 사람인거죠. 자신을 어떻게 볼 지 신경을 안쓰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좀 우습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은 그게 틀린 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니까요. 어떻게 보면 자신을 향한 비판으로만 존재를 확인하는 "어그로"형식의 주장만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혐오는 자신의 혐오를 "불건전"으로 착각하는 형태입니다. 딱히 올바른 말은 아니지만 솔직히 다들 그렇게 생각하잖아? 하면서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혐오를 낱낱이 고백하는 형식입니다. 자기는 욕도 안하고 누굴 도덕적으로 비판하거나 비하한 적도 없으며 이건 그냥 개인적인 감상이라고 자기기만을 하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원초적인 "일베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일베 회원들이 혐오를 그렇게 뿌려대는 게 무슨 정치적인 목적이나 가치관의 전복을 꾀하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이 유머나 풍자나 개인적 감상의 틀 안에서 용인받기를 바라는 거니까요. 일베 회원들의 제일 큰 가치는 솔직함입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사회적 검열에 따르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나 억압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들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표출하며 제재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개인의 솔직함만이 유일한 가치이고 너는 너대로 솔직해라, 나는 나대로 솔직할테니 라며 모든 가치관들이 태클걸리지 않고 전시될 수 있어야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글을 커뮤니티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동의와 이해를 전제에 깔고 있다는 걸 스스로 망각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공간이 사회적 금기를 몸에 익힌 사람들이 모인 리얼리티의 공간이라는 걸 애써 무시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가치판단과 감정이 편견이나 차별에 의거한다는 것을 인지하려 하지 않습니다. 닉네임이 부여하는 익명성의 상대적인 자유로움을 무한한 발언권으로 해석합니다. "솔직히 게이들은 좀..." "솔직히 여자들은 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에 둔 실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자신만은 그 규칙과 합의를 초월한 "개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 어떤 개인적 발언도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도요. 오히려 커뮤니티에서 어떤 발언을 한다는 자체가 그 커뮤니티 내/외의 가치관에 기반한 사회적 교류를 하는 것인데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발언이라며 항변합니다. 그 발언을 왜 커뮤니티에서 할까요. 어떤 식으로든 상호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회적 행위인데도 당사자들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 말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듣는 사람은 생각을 안합니다. 세상 모든 소통을 일기장의 작자와 독자로 구분하는 방식만 있죠. 


마지막으로 객관의 형식을 띈 혐오가 있습니다. 사회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데 그것이 정작 차별이나 편견을 담은 현상일 때 어떤 균형장치도 마련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걸로는 "박근혜 때문에 향후 몇십년간 여자대통령은 나오기 어렵겠네요." 같은 문장입니다. 사실 이 문장 자체의 객관은 틀리진 않습니다. 그것이 편견이든 어쩌든 많은 사람들은 그 생각을 투표의 근거로 활용할 것이고 대부분의 역사는 옳음보다는 많음을 기반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니까요. 조중동이 가장 애용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필요할 때만 헤드라인에서 가치판단의 안전장치를 제거해버리는 겁니다.


어쩌면 가장 위험한 혐오는 이 세번째 혐오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객관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문장 자체가 가진 "탈정치성의 정치성"을 빼놓고 대화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사소한 명칭이나 발화의 편향성은 그대로 둔 채 현상에 대해서만 논하게 됩니다. 위의 사례를 이야기해보자면 자연스레 흐름은 "박근혜 때문에..." 라는 식의 여성혐오로 갈 것이고 그 자체가 어떤 보편적 법칙처럼 다뤄지게 됩니다. 즉 여성혐오라는 편향을 필연이나 질서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원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지만 그래서는 안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할 때, 혐오는 계속해서 고정됩니다. 이럴 때야말로 초점과 표현에 대해 고정성을 깨트리고 당위의 비중을 더 높여야 합니다. 극복이 어렵지만, 극복해야 한다는 의식적 변화를 더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악의 없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이자 지적이 유효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 경우 정치적인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혐오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구요. 중요한 것은 이런 혐오가 내재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 사실을 지적받을 때 그것을 인신공격으로 오해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게 아닐까요.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라면 더더욱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과 선천적인 무해함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말과 글로만 평가받는다는 온라인 특유의 엄격함을 조금 더 유의해야 하진 않을지. 


@ 사실 저한테는 듀게가 온/오프가 결합된 공간이라 조금 더 특수하게 사회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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