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렸을 때는 브로커라는 놈들을 싫어했어요. 자기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연결만 시켜주면서 큰돈을 요구하는 양아치들이라고 생각했죠. 한번은 공인중개사가 '복비는 일단 3천만원부터 시작하죠.'라고 말하는 걸 보고 벙찐 적도 있고요. 땅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서 문서에 도장 찍는 거나 구경하는 인간이 3천만원을 달라니...이사람은 얼마나 미친 건가라고 생각했죠. 당시에 3천만원이면 지금보다 체감상 훨씬 많은 금액인데, 웬만한 사람 1년연봉은 되는 금액을 거래 한번으로 벌어보겠다니...열라 어이가 없었어요. 게다가 '일단'이라는 전제가 붙은 걸 보면 그는 3천만원 복비가 최소한이라고 생각했던 거고요. 그런 과도한 복비 때문에 트러스트부동산 같은 것도 생겨난 거겠죠.


 

 2.하지만 글쎄요.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거리는 의외로 멀다는 것...그리고 거리만이 아니라 층위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된 후론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왜냐면 공인중개사들은 '땅을 살 사람'만을 소개해주는 게 아니라 '땅을 비싸게 살 사람'을 소개해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땅을 비싸게 사라고 설득도 하고 바람도 잡고요. 그렇게 해서 더 큰 돈으로 땅을 팔게 해주면? 그렇게 불어난 가액이 아주 크다면 3천만원+@는 떼줄 수도 있는거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복비를 잘 줘놓으면, 다음 번에 이쪽이 구매자가 되었을 때 중개인이 이쪽 편을 들어주기도 해요. 부동산을 팔려는 사람이 원하는 가격보다 낮게 팔아야 한다고 잘 설득해 주는 거죠. 중개인은 거래 자체를 발생시키고, 거래의 규모를 조정할 수도 있는 사람인 거죠. 그리고 누구의 편이 될지도 내가 하기 나름인 거고요.



 3.어쨌든 그런 브로커와 바람잡이는 거의 모든 분야에 필요해요. 아이돌은 아무리 잘난 아이더라도 그 아이돌에 맞는 곡과 안무, 그 아이돌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적절한 예능방송에 투입하는 식으로 상품의 가치를 알리고 부풀리기 전엔 상품가치가 없죠. 보석의 경우엔 아프리카 광산에서 굴러다니던 번쩍거리던 돌멩이가 발굴업자와 가공업자를 거쳐 번쩍거리는 매대에 올려져야만 수십 수백억의 가치가 매겨지는 거고요. 화려한 매대에 올려진 보석을 멋진 양복을 빼입고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사람이 홍보해야 부자들이 지갑을 열 마음이 들테니까요.


 영화도 그렇죠. 제작비가 천억원이 안 되는 영화가 정작 홍보비가 천억원인 경우는 꽤 있으니까요.



 4.휴.



 5.이건 캬바쿠라에서도 그래요. 보통 콧대높은 사장들은 한두번 호객문자가 거절당하면 자존심이 상한 건지 다시는 호객문자를 보내지 않곤 해요. 그런데 몇 개월...1년 정도 지나서 그녀를 잊을 즈음에 먼저 문자가 오는 경우가 있죠. '이번 금요일에 한번 들러봐. 은성씨가 꼭 좀 봐야할 아이가 있어.'뭐 이런 식으로요.


 그런 문자가 오면 한번씩 가보곤 해요. 한데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런 문자를 받고 갈 때는 이미 기대감이 하늘 끝을 찌른 상태거든요. 그냥 봤으면 '와 예쁘잖아!'라고 감탄할 만한 여자라도 그런 소개를 받고 보는 순간 실망감이 들곤 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소개를 받고 갔는데도 절로 물개박수가 나올 만한 특급 외모의 여자를 소개받는 경우도 분명 있어요.(물론 물개박수를 실제로 치지는 않지만.) 그런 경우가 있기 때문에 중개인들이 소개를 해오면 한번정도는 보러 가는거죠. 뭐...술집은 가면 돈을 내야 하니 한번 보는 아이쇼핑의 경우와는 다르긴 하지만, 그냥 걔네들 용돈 준다는 생각으로 줘도 괜찮죠. 어쨌든 브로커 없이는 일이 개화하지도 만화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이거죠.


 

 6.그리고 이건...요즘 논란이 많은 정의연 같은 단체도 그래요. 그야 10억원 규모의 성금이 있다면 그건 중간 업자에게 수수료 없이 그냥 할머니들에게 가는 게 좋겠죠. 하지만 그보다 큰 규모의 성금이나 관심이 집중되도록 누군가는 파이를 키워야 해요. 중간에 좀 해먹는 놈이 있더라도요.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도 브로커는 필요한 거잖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도록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연민을 느끼도록 만드는 일이 필요한거죠. 많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홍보가 이루어지면 권위가 생기고 언터처블이 되는 거고요. 연예인이든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만나면 한수 접고 들어가야 하는 권위를 구축하게 된 정도로요. 어느 분야의 그 누구라도 감히 할머니들을 나쁘게 말하면 사람들이 달려가서 본때를 보여 주고 있어요. 이런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의 편이 됐다는 거 말이죠. 누군가가 할머니들에게 돌을 하나 던지면, 할머니들이 맞서 돌을 던질 필요가 없다는 거요. 대신 돌을 되던져줄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물론 나는 꼭 정의연 편을 들려는 건 아니예요. 나는 정의연이 얼마나 사적으로 기금을 썼는지 모르니까요. 내가 늘 말하듯이 세상 일은 흑백으로 가려지는 게 아니라 밀도와 농도가 얼마만큼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많이 해먹는 놈들은 나쁜 놈들이고 적당히 해먹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7.하지만 이 일에서 문제는 이거 같아요. 위에 부동산 거래에 대해 썼는데, 부동산 거래는 한명이 너무 강짜를 부리면 거래가 엎어져요. 파는 쪽이든 사는 쪽이든 중개하는 쪽이든, 자신이 생각하는 최대 가격을 고수하면 안 되거든요. 그건 완전 '나 혼자서만 테이블에서 웃으면서 일어나겠다.'인 거니까요. 거래라는 건 모두가 웃으면서, 또는 모두가 웃는 척이라도 하면서 테이블에서 일어날 수 있어야 성사되는 거예요. 한 명만 웃으면서 일어나려는 거래는, 거의 반드시 파토가 나죠.

 

 한데 정의연 건에서는 글쎄요. 이 건에서는 군중들이 브로커를 이미 너무 나쁘게 보고 있어요. 자꾸만 브로커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거예요. 어떤 사람이 30년동안 수수료를 안 받고 어떤 일을 해준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거든요. 인간은 인간이예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서 수익과 명성을 추구하게 되어 있어요. 그야 수익과 명성'만을' 추구하는 건 감옥에 처넣어야 할 놈이지만...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 거죠. 30년씩이나 어떤 일에 종사한다면, 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브로커의 속성을 띌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8.위에 부동산을 예로 들었는데, 올바른 비유는 아니겠죠. 왜냐면 부동산 거래의 테이블에서 '부동산'은 생물이 아니예요. 아무런 생각도 없는, 그냥 거래되는 상품일 뿐이죠. 한데 이 시민단체 사업이라는 테이블은 좀 달라요. 부동산 거래처럼 판매자와 중개인, 구매자로 딱 떨어지는 모양새가 아니거든요. 


 시민들,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사람(정의연), 그리고 프로모션의 대상으로 소모되는 사람(할머니들) 이 세개의 편이 존재하는데 누가 정확히 누구의 역할을 하는지 누가 누구의 편인지 확실하지가 없어요. 시민들은 구매자에 비유할 수 있겠고 정의연은 중개인이예요. 할머니들은 판매자라기보다 부동산 그 자체라고 봐야겠죠. 정의연은 할머니들이 얼마나 관심받아야 하는 분들인가를 알려야 하고 시민들은 그걸 보고 관심을 표할지 결정하는 구조죠.


 한데 보는 시각에 따라서 정의연이 브로커면서 판매자 같아 보이기도 하고, 할머니들은 그저 팔려다니기만 하고 혜택은 못 보는 부동산 같아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할머니들의 관점에서 정의연이 '너무 판매자 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땐 할머니들이 매우 섭섭해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사실과는 무관하게요. 



 9.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써봤어요. 나는 부동산 거래처럼 분명한 건 이해할 수 있어요. 부동산 거래는 각 주체마다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서로가 최선을 다해요. 때로는 공동의 목적...'이 거래는 약간씩 손해보더라도 성사되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다.'라는 합의를 하고 조금씩 물러날 수도 있고요. 어쨌든 부동산 거래는 거래를 마치면 끝나요. 분명한 목적(goal)이 있고 그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모두가 테이블을 떠나니까요.


 하지만 정의연 운영은 30년동안 계속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일이 시민들에게 인정받는 데 목적보다 더 중요한 건 명분이죠. 처음에는 '할머니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하다가 시간이 지나니 '반드시 할머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바로알리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라고 말이 바뀌는 것처럼요. 사실 그런 말은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하는 말이잖아요. 시간이 30년이나 지나버렸으니, 그들에겐 정의연 그 자체가 중요해져 버린 것도 있겠죠. 


 비꼬는 건 아니예요. 어떤 단체가 30년이나 존재했다면, 그때쯤엔 그 단체가 존속되는 것 자체도 중요해져 버리니까요. 거기에도 식구가 생겨버리고 이권이 생겨버리니까요. 



 10.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원래 하려던 말이 있었는데...너무 길어졌으니 다음에 써보죠. 어쨌든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하는 일이라도 사업을 벌이다보면 각자의 롤에 맞게 '판매자' '구매자' '브로커'같은 속성들이 부여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속성들과 롤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그 사업은 아직 아마추어적인 단계란거죠. 사람들의 눈에는 그게 좋아 보이지 않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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