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소고

2019.07.17 06:13

어디로갈까 조회 수:1403

(어제 접한 전 정치인의 작고 소식에 깜짝 놀란 저 자신이 놀라워서 횡설수설. )

1.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건 사기꾼으로 분류되는 부류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축해 놓은 진실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진실의 자산이 없기에 죽음 앞에서의 그의 떨림은 진실에 대한 갈망이 가장 컸을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자신이 진실하지 못했음을 몹시 아쉬워하는 이의 얼굴을 본 적이 있어요. 그가 고백했죠. "나와 거짓의 관계는 굶주림과 음식의 관계와 같은 거였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도움도 필요치 않은 진정한 사기꾼이구나 하는 확실한 판단을 했더랬습니다.

2. 공깃돌은 다섯 개로 구성됩니다. 조약돌이 수 백개 널려있는 시냇가에서 하는 공기놀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공깃돌을 던져 손등으로 받을 때, 한 개 또는 다섯 개를 얹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도 얹지 못할 때도 있죠. 그것이 공기놀입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한 것 같아요.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살다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갖는 건 좀 염치없지 않나요?  바닥이 발에 닿지 않는 건, 자신이 점점 바다 깊은 쪽으로 헤엄쳐 갔기 때문인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3. 햇살 아래에서 얇은 먹지에 불을 붙이는' 것.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의 인간에게 허용되는 정열의 형태는 이와 같지 않을까요.
적막한 뜨거움이 순식간에 재로 변하겠죠. 죽음을 서서히 경험하는 동안 두려움과 자아의 거리는 점점 좁아져서, 마지막 죽음의 얼굴에 손을 대는 순간,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빛의 일생을 보고 말 것 같습니다.

4. 자유, 의지, 순명, 태도.... 이 새벽에 떠올리는 어휘들입니다. 이 네 가지를 합친 것이 자기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잘 생각나지 않는데, 에즈라 파운드의 시론서 첫 페이지에 명랑함에 관한 언급이 있었어요. 생명과 진리는 엄숙하지 않고 명랑한 것이라는 것. 제 생각을 덧붙이면 그게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것이 자연스러운 정황에서의 무거움은, '명랑함'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것, 돌연한 것, 경계가 사라지는 일을 무거움이 아닌 명랑함으로 받아들일 것. '다름'이 바로 삶이며, 체험으로서의 성숙이기도 하니까요.

5. 사춘기 시절, 죽음에 관한 단시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죽음은 그 너머, 삶의 순환에 관해서도 무엇인가 말해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우주는 순환이라는 현상 덕분에 수레바퀴에 비유될 수 있다는 걸 좀 일찍 간파했다고나 할까요. - -
근데 지금 기억나는 건 이 둘뿐이네요.

"나는 난다, 나의 먼지는 현재의 내가 되리라." (허페즈)
"그들은 어둠을 통해 외로운 밤 아래로 어둡게 걸었다." (베르길리우스)

6. 세상 이치라는 건 절대로 알 수가 없어요.
다시 한번, 세상 일이라는 건 - 죽음의 이치라는 것도 -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이 좁은 한국사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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