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4 20:42
제가 제일 처음 본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The General(1926)이었어요.
이 영화를 참 재밌게 봐서 버스터 키튼 전집(?) DVD 10개를 도서관에서 빌려 일주일 내내 봤죠.
그 DVD들에는 Our Hospitality, Sherlock, Jr., Steamboat Bill, Jr. 같은 장편들도 있었지만
단편들이 상당히 많았어요.
그 중 제가 제일 재미있게 봤던 단편영화는 One Week(1920)였고요.
이 영화엔 워낙 독창적이고 재밌는 장면들이 많아서 저에겐 압도적인 1위예요.
(전체화면 보기가 안 될 경우 하단의 YouTube를 눌러 유튜브로 가신 후 전체화면 보기를 하시면 돼요.)
그 다음은 Cops(1922)인데 이 영화는 후반 6분 정도가 참 재밌었어요.
사다리 장면을 참 좋아해요. 이런 장면을 보면 버스터 키튼은 물리학자 같아요.
The Goat(1921)에서 엘리베이터 장면은 사람들이 논리적 추론에서 어떤 오류를
범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 버스터 키튼은 논리학자 같기도 해요. ^^
The Boat(1921)도 참 재밌어서 기억나고요. 주인공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안에서도
마치 집 안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다 위기에 처하죠. 이 영화를 보면 버스터 키튼은 심리학자 같기도 해요. ^^
Seven Chances(1925)도 재미있었어요. 이건 거의 한 시간이라 단편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요.
버스터 키튼 영화 속 주인공의 최대 목표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죠.
이 작고 소심한 남자는 언제나 어이없게 고난에 처하고, 엉뚱하고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지만
그런 방식이 실패하거나 더 큰 고난을 불러와도 뭐 대단히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그저 또 다른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해결해 보려고 끊임없이 분주해요. 그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솜사탕처럼 흐물흐물
달콤한 모습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의 다정한 키스 한 번이면 이제까지 겪었던 온갖 고생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죠.
제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남자 캐릭터 딱 한 명을 선택해 거기 머물 수 있다면 아무 망설임 없이 버스터 키튼을 택하겠어요.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남자를 본 적이 없거든요.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은 참 아름다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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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웃기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별로 부담 없는 버스터 키튼 단편영화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저작권이 만료가 돼서 대부분 유튜브에 올라와 있어요.
혹시 여러분이 좋아하시는 버스터 키튼 단편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도서관에 DVD 반납 늦게 하면 연체료가 엄청나서 거의 벼락치기하듯 보느라 나중엔 졸면서 보기도 했거든요.
추천해 주시면 다시 한 번 찾아보려고요.
얼마 남지 않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
2015.10.04 20:53
2015.10.04 21:06
버스터 키튼 단편을 방송해 줬다면 MBC 정말 좋은 방송국이군요. ^^
저는 가끔 버스터 키튼의 장편보다 단편이 더 좋을 때도 있어요.
2015.10.04 21:18
좋은 방송국이지요. 나에게 <THX 1138>을 처음으로 보여주었으니까
2015.10.04 21:29
THX 1138이 뭔가 하고 찾아봤는데 안드로이드 이름인가 봐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것 같은데 훌륭한 감독의 초기 작품은 유명해진 후의 영화들보다
더 강렬하고 매력적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한번 찾아볼게요. ^^
2015.10.04 21:40
루카스 최고의 명작입니다. 흥행에 참패하다보니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후대 SF에 미친 영향이 상당한 작품이죠. 특히 오프닝 시퀀스는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에서 거의 그대로 오마쥬되었고요. 루카스의 장편 데뷔작이자 굉장히 공들인 영화였지만 흥행에 실패하며 루카스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루카스가 '다시는 돈안되는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라고 결심해 본격적으로 상업영화에 뛰어드는 계기가 됩니다. 듀게에 간단한 회원리뷰도 올라있어요. => http://www.djuna.kr/xe/index.php?mid=breview&search_keyword=thx&search_target=title_content&document_srl=4539025 (딱히 제가 쓴 리뷰라 링크하는 건 아닙니...퍼억!-ㅁ-!)
2015.10.04 21:51
오옷, 샌드맨 님도 회원 리뷰에 글 올리신 적이 있었군요. ^^
저는 영화 보기 전에는 리뷰를 잘 안 봐서 일단 영화를 찾아서 본 후에 제 느낌과 비슷한지
혹은 어떻게 다른지, 한번 비교해 봐야겠어요. ^^ 보통 첫 작품에 그 감독의 세계관이랄까
뭐 그런 게 가장 정직하게 드러나서 좀 거칠어도 재밌더라고요.
2015.10.04 22:15
저는 언제나 [이웃(Neighbors, 1920)]을 제일로 꼽아요. 나중에 [손님 접대법(Our Hospitality, 1923)]나 [스팀보트 빌 주니어(Steamboat Bill Jr., 1928)]로 이어지는 키튼식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단 하나의 공간과 상황으로 응축한 영화!
말씀하신 [보트(The Boat, 1921)]도 무척 좋아합니다. 영화 자체도 좋고, 제가 최초로 본 키튼 영화였기 때문에 더 애정이 큰 것도 있고요. (그런데 올해 시네마테크 서울에서 상영하기에 보러 갔는데 뜻밖에도 삭제판을 상영하는 바람에 재미가 덜해서 괜히 평소 품고 있던 호감이 훼손됐어요!)
보통은 저도 여기에 [일주일]을 더하는데요, 이미 소개하셨으니까 그럼 [허수아비(The Scarecrow, 1920)]를 꼽겠습니다. 이 영화는 뭐니뭐니해도 초반에 키튼이 동거남과 함께하는 아침의 일상 묘사가 압권이지요. [일주일]과 마찬가지로 일견 뻔해 보이는 가구/장치들을 완전히 예상치 못한 용도로 사용하면서 나름의 논리와 실용성에 이르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2015.10.04 22:35
Best 3으로 하려다가 The Boat가 눈에 아른거려서 막판에 추가했는데 잘했네요. ^^
왜 Neighbors와 Scarecrow가 생각이 안 나죠?? 아무래도 졸면서 봤나 봐요.
지금 당장 다시 봐야겠어요. !!>.<!!
버스터 키튼의 상상력과 그것을 구현하는 엔지니어적인 마인드와 그것을 몸으로 실현하는 기술과 용기,
이 모든 것이 합쳐진 놀랍도록 단순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보면 그냥 사랑한다는 말밖에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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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ies님이 올려주신 동영상은 화질은 끝내주는데 소리가 안 나네요. ㅠㅠ
음악이 안 들리면 금방 졸려서 소리 나는 걸로 찾아봤어요.
Neighbors: https://youtu.be/mW_GEDc9RwE (첫 장면부터 제 취향인데 왜 기억이... ㅠㅠ)
The Scarecrow: https://youtu.be/bR32Ths4WX0
2015.10.04 23:28
oldies 님이 말씀하신 작품들도 정말 재밌죠. 그중에서도 [허수아비]는 무척 좋아해요! 저는 여기에 지난여름 시네마테크 서울 "버스터 키튼 특별전"에서 보았던 [하이 사인(The High Sign, 1921)]과 [사랑의 보금자리(The Love Nest, 1923)]도 함께 얹고 싶습니다.
2015.10.04 23:53
와, 버스터 키튼의 단편 동영상들이 여기 하나씩 모이니까 신나요. ^O^
빌린 DVD 반납하면서 나중에 꼭 이 DVD 전집을 사서 다시 볼 테다!!! 하고 결심했는데
그 결심이 유튜브에서 찾아서 다시 봐야지!로 바뀌었다가 그 다음엔 뭐부터 찾아보지??로
바뀌었는데 이렇게 추천해 주시니 하나씩 다시 볼 순서가 정해지는 것 같아 참 좋네요.
2015.10.05 01:12
오, 이 점점 더 은혜로운 게시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ㅠㅠ
2015.10.05 08:15
버스터 키튼을 좋아하시는 듀게분들의 단편/중편 영화 베스트3는 뭔지 궁금해요. ^^
저는 오래 전에 너무 한꺼번에 봐서 어떤 장면이 이 영화에 있었는지 저 영화에 있었는지
막 헷갈리는데 한번 다시 보면서 기억을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요.
2015.10.19 23:55
2015.10.31 11:35
세상에 잘생긴 배우들은 참 많은데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는 남자 배우는 참 드문 것 같아요.
더구나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는 배우, 표정에 변화가 별로 없다고 deadpan이라는 별명이 붙은
배우에게서 이상하게 슬프고 아름다운 느낌이 나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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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분명히 MBC에서 해준 기억이 나는데 정말 무성 영화를 해주었을까 꿈을 꾼건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