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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 기간 간만에 집 근처 스타벅스에 와서 독서 삼매경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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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분위기는 아닙니다만......;;

 


1년 만에 갑자기 생각나서 지금 다시 읽고 있는 책입니다.

집에서는 영~책이 안 읽혀서....-_-;;


지금 선라이즈 애플쥬스 마시면서 읽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왜 카페를 작업실처럼 이용하는지 알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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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2007년인데도 제가 한참 추리 소설이나 스파이 소설 열씨미 읽던 80년대 생각이 납니다.

다시 봐도 재밌네요.

스웨덴 추리 소설은 처음 접하는데요. 그동안 추리소설 하면 거의 영미권이었죠. 가끔 프랑스나 독일쪽 접하는 정도?

특이한 건 이 소설이 보통 범죄 사건만 다루는게 아니라 스웨덴 현대사도 함께 아우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웨덴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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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톡홀름 전경)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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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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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년 동안 전쟁을 겪지않은 평화로운 나라

 

 

 ( 나르바에서 승리한 스웨덴 군)

 

 ( 폴타바 전투)

 

 ( 프라우슈타트 전투에서 이기고 목사의 축복을 받는 스웨덴 병사들)

 

 

 

.....여튼 이런 시대의 전쟁이 마지막 겪은 전쟁입니다. 이 나라는....정말 부럽...( 제정 러시아와 치른 스웨덴의 마지막 전쟁 - 북방전쟁 1700~1726)


 



여튼 부러운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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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북유럽의 선진국 스웨덴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이런 막연한 이미지 말고 구체적인 실제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죠. 그리고 이런 실제 모습은 역사책이나 사회학 서적 보다는 어쩌면 이런 '소설'이 더 생생하게 담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쿠르트 발란데르라는 50대 후반의 형사가 새로 사위를 맞이하고 사돈 부부를 만나는 장면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사돈은 퇴역한 해군장교로 스웨덴 해군에서 평생을 복무한 잠수함 함장이었죠. 그런데 어느날, 별안간 이 대령 부부가 차례로 사라지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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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얼마 뒤에는 퇴역 함장의 부인 루이스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노부부의 단순 실종 사건에서, 국가간의 기밀이 얽힌 스파이 사건으로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죽은 함장 부인 루이스의 시신에서 스웨덴 해군의 비밀문서가 담긴 서류들이 발견된거죠. 그러다 얼마 뒤 주인공 형사 쿠르트 발란데르는 실종된 잠수함 함장을 우연히 시내에서 목격했다는 얘기를 듣고 마침내 사라진 사돈의 은신처까지 알아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흑막 뒤에는 중립국 스웨덴을 사이에 둔 러시아-소련과 미국의 줄다리기 그리고 그 사이에 두 강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어렵게 중립국이라는 줄타기를 하고 있는, 북방의 한 추운 나라의 모순된 상황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는데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냉전은 끝난거 아니었나요? 지난 90년대에? 독일도 통일 되고 소련도 해체되고 러시아가 되었으며 동유럽 공산권도 사라졌고…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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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냉전은 사라졌지만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대결 양상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요…소련이나 공산주의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대결 양상은 어디까지나 그대로일 뿐 그 힘의 방향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러니 냉전 시대가 낳은 망령은 아직도 살아있다…

( 진짜 망령들이 있더군요. 동독에서 망명한 전직 슈타지 요원 하나는 여전히 스웨덴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신분을 숨긴채 살아가고 있고…그를 통해서 지난 세기 체육 강국이었던 동독의 실체를 얘기하는데, 가히 충격적…다들 지난 88 올림픽 기억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서울에서 있었던 행사였으니까요. 저도 똑똑히 기억이 납니다. 동독 선수들, 그 때 대회마다 메달 정말 싹쓸이 하던 것도요.)


- 크리스틴 오토, 수영의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죠. 무려 6관왕이었습니다. (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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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계신 최근 모습. 다행히 이 분은 약물 스캔들과는 관련이 없네요^^;; )



그런데, 그게 다 약물 탓이었다니…새삼 알고 있었던 일인데도 - 독일 통일이 된 뒤에 전모가 드러났죠…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선수들의 비참한 상황과 함께…;;…그 얘길 다시 소설 속에서, 그것도 왕년의 슈타지 요원에게 듣고 있으려니 참 격세지감 느껴지네요.)

이 소설 읽는 내내 제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냉전이라는 현대사의 살아있는 유령이었습니다. 우리야 머리 위에 바로 '북한'이라는 냉전체제를 짊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 있으니까요…그러나…스웨덴이라니…그 평화로운 복지국가에서…

하지만 그 평화롭다는 복지국가도 물론 그늘이 있죠.


 지금은 사민주의 좌파 천국으로 보이지만 한 때, 그러니까 2차 대전 전에는 여기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다름없는 나치 천국이었고… 전후에는 오늘날 성공한 복지국가를 만든 정치가 올로프 팔메 총리는 재임 기간 내내 우파들에게 '빨갱이' '정신병자' '소련 스파이'
소리를 들으며 국정을 운영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들 말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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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란데르에게 스웨덴 군부의 옛 비밀 클럽에서 일한 적이 있는 전직 웨이트리스이자 공산주의자인 할머니 한 분은 이런 얘기를 들려줍니다.

 스웨덴 해군 장성들이( 이외에도 영관급 장교들도 많이 있는) 그 모임에서 놀다가 술에 취하면, 쿠데타를 일으켜서 좌파 정부 전복하자! 빨갱이 총리 없애자! 이런 소리들이 난무했다고요-_-;;…(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인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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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은 팔메 총리는 사민주의 정치가이긴 합니다만, 스웨덴의 유서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기도 합니다. 세습 작위가 없으니 공직에 나올 수 있었지만 그는 사민당에 입당해서 전형적인 좌파 정치가의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출신성분 때문에 동료 정치가들에게 은근 왕따를 당했다네요. ( 그런데 정계 왕따도 총리를 할 수 있군요!…@.@....스웨덴 정말 대단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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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혁명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올로프 팔메



( 결국 팔메 총리는 암살로 생을 마감합니다…범인이나 배후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성공한 복지국가를 만든 위대한 정치가로, 오늘날 전세계의 부러움과 선망을 사는 선진국형 강소국가 모델을 만든 장본인이지만, 암살로 생을 마감…정말 기가 막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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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이 얼마나 대단하냐면…지난 80년대 후반 소련의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그리고 글라스노스트 - 개혁 개방 정책의 목표가 바로 스웨덴이었습니다. 그가 목표한 새 소련의 모델이 바로 스웨덴 사민주의였던 겁니다. 구 소련은 원래는 스웨덴처럼 될려고 했던 것인데…말이죠^^;; 
어디 러시아 뿐인가요…작년에 독립 투표하던 스코틀랜드도 영국에서 분리해 나간 뒤 세울 국가의 모델이 바로 스웨덴 모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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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엔 그냥 이뤄지는게 없죠. 모두가 부러워하는 스웨덴의 번영 뒤에는 이처럼 현실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스웨덴 사람들도 자기네 동네에 장애인 시설 못 들어오게 데모합니다.( 이유요? 집값 때문이죠. 뭐ㅋ) 끔찍하지만 존속 살인도 있고…외국인 혐오도 여전합니다. ( 물론 그걸 속마음에만 잘 감추고 있습니다만…) 다만 인상적인 건 여성의 지위였는데, 그것만큼은 정말 모범적이더군요. 주인공 발란데르가 그런 부분에서는 워낙 반듯한 케릭터라서 그런 측면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한 편으로 이 소설은 노년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바로 제목 '불안한 남자'그대로 이 책은 남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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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BC 드라마 < 형사 월렌더> 시리즈의 한 장면입니다. 케네스 브레너가 발란데르...역을 맡았네요^^)

 

쿠르트 발란데르는 노련한 민완형사로 지난 30년이 넘게 경찰의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니 그가 겪은 죽음과 인간이 지닌 심각한 어두움은 숱한 것일테고, 그 무게가 그를 알게 모르게 짓누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인정하지 않을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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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아내도 있었고 진정으로 사랑했던 연인도,  사랑하는 딸과 더없이 소중한 손녀딸도 있습니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동료들과의 관계나 수사과정에서 겪게되는 인간관계들도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이게 문화 차이라는 것이겠지만, 그동안 영미 소설에서만 접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북유럽 특유의 개인주의에 더한 인간관계가 참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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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가운 얼굴이 나옵니다! 톰 히들스턴이 발란데르의 후배이자 동료 형사인 마그누스로 나오네요^^ 그런데...이 책에서는 이미 할아버지...;; 그것도 빨강머리 손자가 있는! >.< )


확실히 이 사람들은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살긴 하더군요. 부부관계는 물론이고 부모 자식 관계에도 분명한 선이 있습니다. 동료 관계나 친구들 사이는 뭐 말할 것도 없구요…그런데 분명한 건 그들에게도 우리와도 같은 정은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단지 표현 방식이…;; 

여튼 딸 린다의 십 대 시절 자살 시도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쿠르트는 그 때 만일 딸을 잃었다면, 자긴 분명히 그때 생이 끝났을 거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부모 마음은 어디나 똑같네…하구요..
오랜 직장 동료를 오피스 와이프처럼 여기는 심정도ㅋ
( 그런데…배신감에 절망한 나머지 절친 따라 저승 길동무를 떠나버린 사람의 에피는…진심 충격이네요…이건 대체 무슨 심리인지…ㅠ…)

 

이 소설의 특색은 주인공 발란데르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설정되있다는 겁니다. 발란데르는 30년 넘게 현장에서 범죄 사건을 다뤄온 민완형사이지만 스웨덴의 정치나 냉전시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전무...를 떠나 아예 관심도 없고 사실 그런 건 생각하려고도 않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럼 대체 어떻게 이 소설에서 그런 복잡한 정치 구조나 현대사 이야기를 할 수 있냐면, 바로 등장 인물들이 발란데르를 붙잡고 일일이, 그것도 정말 구구절절히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발란데르는 직업이 형사이고 사돈 부부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자들을 모두 만나 탐문을 벌여야 하고 탐색을 해야하니까요.

 

 이런 케릭터와 서술 구조는 제게는 마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주인공 '아드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 작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드소는 15세 소년 수사에 불과합니다. 정말 그 나이의 아이답게 아무것도 모르고요. 하지만 그 소년의 주위로 12세기 중세 교회의 도그마인 신앙과 권력투쟁이 한바탕 무시무시한 소용돌이를 치며 지나갑니다. 그 소년은 정말 끝까지 아무것도 모른채 노인이 되어 회상록을 저술합니다만, 우리는 그 회상록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죠. 

 이른바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들려주는 세상의 어떤 진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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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장미의 이름 중에서 (1986) -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독일 합작 영화인데 헐리웃 배우들이 주연을 했죠. 숀 코네리와 10대 시절의 크리스찬 슬레이터)

 

 

 에코 선생은 그런 케릭터의 설정을 통해 중세 유럽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었는데, 제게는 이 소설의 발란데르도 그런 케릭터로 느껴졌습니다. 곧 노인이 될 중년의 후반에 이른 형사가 육체적 피로 만큼이나 무겁게 내리누르는 정신적 피로와 싸우면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정말 머나먼 길을 걸어갑니다. ( 어느 팬의 표현을 빌리면, 개 한 마리 데리고 어둠 속을 의지하며 걷는...)

그 여정의 와중에 언제나 무정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모습도 있군요. 철저한 사민주의자이자 화가인 발란데르의 아버지는 어렸을적부터 발란데르에게 ' 민주시민으로서의 교양'을 주입시키려고 노력합니다만, 언제나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결과는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 발란데르에게 정치란 '세금은 될 수 있는대로  적게 내고 최저임금은 젤 높게 받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든요ㅋ (그런데, 제가 보기엔 이 한 마디로 충분한데 말입니다. 정치란게 뭐 별다른게 있나요...^^;;)

거기다 성인이 된  발란데르가 한 첫 투표는, 그저 아버지가 찍으라고 한 사민당 후보에게 아무 생각없이 한 표 던지는 것이었죠-_-;; ( 이건 어쩜 그렇게 저랑 똑같은지ㅋㅋㅋ 저도 첫 투표를 그렇게 했거든요>.<) 사람 사는데란 그저…

그러니까, 이 소설은 실종 사건을 다루는 추리 소설인 동시에 냉전 시절의 스웨덴 현대사가 담겨있고 다른 한 축으로는 발란데르의 심리를 따라가며 오늘날 스웨덴의 현실 모습을 비춰주는 사회 소설이기도 합니다. 뭐랄까…세 이야기가 한 데 엮어 동시에 흘러가니…그래서 두께가 이렇게…^^;;



여튼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고 서늘한 분위기가 짙은, 특색있는 추리 소설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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