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dia.daum.net/life/outdoor/photo/newsview?newsId=20151021163007454

 

체코 여행에 대한 기사가 떴네요. 사진들이 멋있어서 몇 장 가져와봤습니다.

 

체코 동부 모라비아의 전경

 

 

 

 

 와인 축제가 한창인 도심 한 가운데 모임을 갖는 친구들

( 실은 이 사진 보고 순간 넘 좋아서^^ 저 정말 이런 분위기 좋아하거든요. 듀게 오프 때나 친구들 모임때 이렇게 오래된 건물들 개조한 분위기 좋은 카페를 만났을 땐 정말 어찌나 기쁜지^0^)

 

 

 클렌트니체의 옛 성터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

 

 

 모라비아 지방의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들

 

 

 축제의 가장 행렬에 참석한 어린이들

 

 

 중세 복장으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기사에 간단하게 모라비아 지방의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네요. (제가 요즘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에게 빠져 있어서 이 지역을 지배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에 대해 간간히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당시 오스트리아는 체코와 여기 모라비아 지역의 슬라브인들과 마자르 인들인 헝가리 인들을 지배하고 있었죠. (지금의 작은 영세 중립국 오스트리아를 생각해 본다면 정말 상상도 안되는 거대한 제국...-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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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슬라브인들은 여기 체코와 모라비아 말고도 구 유고연방까지 광대한 영역에 살고 있었고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세르비아의 일부 지역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안으로 편입되어 있던 참이었습니다. 19세기의 오스트리아는 소수의 게르만 족이 주변의 유럽 민족들을( 라틴 족, 슬라브 민족, 마자르 민족 등등...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 민족들 말고도 정말 많습니다...;; ) 죄다 지배하고 있던 형국이라, 19세기와 20세기 내내 몰아친 민족주의 열풍에 맞서서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민족국가 수립하겠다고 제 민족들이 나서기 시작하면 제국의 붕괴는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반란에는 제국군을 동원한 무력 진압과 그리고 잔혹한 진압 뒤에는 광범위한 자치를 미끼로 민족 지도자들을 회유하는 등 거기다 피지배민족들 간의 갈등을 이용해서 분리통치를 하기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죠. 마자르 족인 헝가리에 대한 적대감이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여기 체코와 모라비아의 슬라브 민족들에게도 상당했기 때문에, 이들의 갈등을 조장해서 서로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게 하는 방법이 주로 제국이 사용했던 정책이었죠.

일례로 지난 1848년의 혁명기에, 제국의 수도 빈이 시민군에게 점령되고 황궁까지 점거당해 황실이 피신하는 일이 벌어지자, 이 때를 틈타 헝가리 민족 지도자들은 독립을 위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제국은 평소 헝가리와 사이가 나빴던 슬라브 민족들을 동원했는데, 그때 전선에서 대 활약했던 군대가 바로 크로아티아에서 동원된 진압군이었죠. 나중엔 러시아까지 20만 대군을 끌고 오스트리아 제국을 도와주러 들어옵니다. 그래서 헝가리 독립 전쟁은 실패로 돌아가고 무수한 민족지사들의 피만 뿌린 채 상황은 종결되고 말죠.....ㅠ.....

 ( 이 모든 건 제위에 오른지 얼마 안된 프란츠 요제프의 결정이었죠. 1848년의 혁명 때 재상 메테르니히는 변장한 채 영국까지 도망쳐 버리고 - 빈 체제 붕괴 - 덕분에 황제 페르디난트 1세는 퇴위하고 어린 조카에게 제위를 물려줌....이 분 아직 채 스무살도 안됐는데, 참 업적이 많으심....18살의 나이로 황제에 오르자 마자 시민혁명 진압하고 헝가리 반란 진압하고....헝가리 반군과 싸울 땐 직접 전투에 나가서 야전 지휘까지 하려다가 신하들이 말리는 바람에 그건 포기...이런 사람을 왜 뮤지컬에서는 그딴 한심한 마마보이로 그렸을까? -_-;; )

 

이런 상황에서 - 비록 그 일이 있은지 20년이 지났지만 - 원수같은 헝가리가 완전 독립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 제국과 연합해서 공동제국을 수립한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1866년) 이 지역 - 그러니까 체코와 모라비아의 민족 지도자들은 거의 멘붕 상태에 달하게 됩니다. 이들은 너무나 답답했던 나머지 제국의 수도 빈까지 찾아가서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대면하고 자기들의 요구 사항을 제시할 생각이었지만, 제국의 입장이 워낙 확고해 있던 터라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고 힘없이 돌아오는 신세가 되고 말죠.

 

 당시 제국은 제국대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비스마르크가 주도하는 독일 통일 작업을 뒤에서 방해하다가 화가 난 독일과 한판 거하게 붙었었는데( 독일 - 오스트리아 전쟁 1866년 ) 그만 완패당하고 제국군이 괴멸하는 바람에 수도 빈까지 독일군에게 함락 위기를 맞았던 터라, 황제를 비롯한 황실 가족들이 헝가리로 도망을 갔다가 겨우 돌아온 참이었거든요;;

 헝가리 민족 지도자들은 패전의 충격으로 엉망진창인 꼴로 헝가리로 기어들어온 오스트리아 황실 사람들을 정말 따뜻하게 맞아주었고....-_-;; 죽고 싶다고 엉엉 울고 있는 황후 엘리자벳과 멘붕 상태인 황제 프란츠 요제프에게 앞서 얘기한 연합제국에 대한 설계안을 들이민 참이었죠.

 ( 예, 주동자는 바로 안드러시 백작...이 양반 20년 전 독립전쟁 때 자기 동료들인 헝가리 민족 지사들을 114명이나 처형한 황제랑 손 잡음....물론 그 때 안드러시 본인도 프란츠 요제프에게 사형선고를 받았던 상황이었죠...도망쳐서 살긴 했지만. 대신 제국 정부는 안드러시 인형을 수도 빈의 한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웠었는데....그런데 이제는 황제와 최측근 총리대신으로 만남...그리고 그 이후로도 너무나 잘 지냄...너무 잘 지내서 안드러시가 황후 엘리자벳 보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를 더 위하다가 안드러시하고 엘리자벳 사이에 다툼도 일어났답니다....세상에....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지....-_-;;) 

 

여튼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와서, 뭐 별 수 있나요...조약을 승인 해야지...제국 수도까지 독일군이 곧 점령하고 쉰브른 궁에서 독일 황제 즉위식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던 참이라 프란츠 요제프로서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거든요.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 그런데 그 일이 나중에 프랑스에서 터졌죠;;)

 

 

( 기사에서 생략된 19세기 상황만 제가 덧붙여봤습니다. 황후 엘리자벳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 길어졌네요^^;; 이후의 역사적 사건들은, 1차 대전과 연결되는 터라 기사에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군요.)

 

여튼 약소국들, 혹은 피지배 민족들의 상황들은 어디나 비슷하더군요.

 

그래도 이제는 다 지나 간 일이니까^^;;

 

 

 

 올로모우츠

 

 

 크로메지르시

 

 

 

 마차 투어를 할 수 있는 성곽도시 레드니체

 

 

 포도주로 유명한 발티체의 전경

 

 

유럽 여행자들에게 체코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들로 명성이 높죠. 항상 체코 하면 프라하 얘기만 들었었는데, 모라비아 지방에도 근사한 곳이 많군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습니다.

( 지금은 형편이 안되니, 이렇게 근사한 사진만 보고 맘을 달래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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