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

2015.10.16 03:31

여은성 조회 수:1020



 1.오늘은 기분이 약간 좋네요. 물론 내일이면 다시 나빠지겠지만요. 대부분의 생물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절 열받게 만들고 상호작용 없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절 기쁘게 만드는 생물은 몇 안되는거죠. 흠. 그게 재미있는 이야기든 재미없는 이야기든 인간들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니까 이런저런 일화를 써 보죠.


 

 2.저는 돌려 말하는 걸 못해요. 하긴 돌려 말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총알이 날아올 상황은 없었으니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요전에 학교다닐때의 교수와 만난 적이 있었어요. 여름이었죠. 

 

 교수는 약속 장소를 둘러보며 '왜 이런 곳에 오는 걸까?'라고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어요. 사실, 별로 질문 같지는 않았지만 '과시를 위해서죠'라고 대답했어요. 질문일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에게 선생님(교수님은 좀 오글거려서)은 인격체가 아니라 취사선택된 파편들의 집합이라고 했어요. '대나무 숲'이라는 표현을 쓰려고 했는데 그가 '담벼락 같은 건가?'라고 먼저 말했어요. 듣고 보니 그게 더 맞는 표현 같았어요. 


 하여간 뭐 이런 저런 얘기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빌어먹을 노동을 싫어한다는 말도 했어요. 확실하진 않은데 그러자 교수가 '나도 노동자 아닌가?'라고 했던 거 같아요.


 물론 저는 교수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 앞에서 그 말을 한 거였죠. 아무리 제가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사람이어도 척수반사 정도는 거치거든요. 


 저는 교수는 노동이 아니라 브랜드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가진 멋진 교수 자리는 모두가 빌어먹게 부러워하는 자리라고요. 그건 번쩍거리는 브랜드라고요. 그리고 그의 표정을 살펴봤는데 정말 그걸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을 아주 잘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 일화가 갑자기 떠올라서 써보고 싶었어요.


 

 3.어느날의 일화를 하나 더 써 보죠. 군대 얘기예요.


 어느날 훈련소에 들어가야 했어요. 한달짜리였죠. 몹시 화가 났어요. 한국 군대는 인생의 가장 가능성있는 시기에 사회와 격리되어 최저시급도 못 받는 취급을 받는 곳이잖아요. 


 물론 늘 그렇듯이 화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저 자신에게 난 거였어요. 이 나이가 되도록 우주에서 충분히 파괴적인 힘을 갖추지 못해서 이곳에 끌려온 거요.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제 탓이었으니까요. 


 휴.


 어쨌든 이곳에서의 과제는 하나였어요. 온 힘을 다해 이곳의 색깔이 나를 물들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요. 이곳의 아주 작은 얼룩조차도 몸에 묻히고 싶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나갈 때 아주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로, 한달 전과 완전히 같은 사람으로 나가는 게 과제였죠. 


 군대는 뭐랄까...믹서기예요. 보통이라면 절대로 마주칠 일 없는 사람과 마주치도록 만드는 곳이죠. 


 저는 고3때 선생들의 '정신차려! 너희들 ㄱㅇ대 가고 싶어서 이래? ㄷㅂ대 가고 싶어서 이래?'라는 호통을 여러 번 들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ㄱㅇ대나 ㄷㅂ대를 간 사람은 한명도 없었어요. ㄱㅇ대나 ㄷㅂ대는 그냥 워딩에서만 등장하는, 현실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 대학이었어요. 그리고 20여년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ㄷㅂ대학교에 다닌 사람을 본 건 훈련소였죠.


 

 4.휴.


 

 5.편의상 훈련소에서 본 어떤사람을 B라고 하죠. B 역시도 저의 세상에서 볼 수 없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어요. 그는 나이가 많았어요. 그리고 훈련소 오기 전 새벽에 강원랜드에서 200만원을 날렸다고 했어요. 20살짜리 여자친구를 사귀는데 그게 몸 보신에 좋다고 떠들고 다녔어요. 그와는 전혀 친해지고 싶지가 않았죠. 심지어 훈련소에 온 것조차 부모가 모른다고 킬킬거렸어요. 어차피 아무도 자길 신경쓰지 않는다고요. 맙소사, 훈련소에 가는데 가족에게 말을 안하고 오다니...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훈련소 사람들도 그의 뒤에서 '진짜 막장이다'라고 수군거리곤 했어요.

 

 어쨌든 그는 훈련소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아침마다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며 의무대에 가거나 작업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작업량을 최소화했죠.


 네, 이건 저에 관한 얘기가 맞아요. 잊지 않았어요. 어느날부터 등뒤에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의 시선이었죠. 작업을 할 때나 훈련을 할 때, 언젠가부터 그가 유심히 날 보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네, 그는 눈치챈 거였어요. 사실 여은성이란 사람은 작업을 시켜도 훈련을 시켜도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거요.


 휴,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 훈련소 마지막 날의 전날인가 전전날, 뭘 치우는 작업이 있었어요. 물론 저는 대가 없는 노동을 혐오하기 때문에 하는 척만 하고 있었어요. 조교의 눈에는 마치 정말로 일을 하는 것 처럼 보였겠지만 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죠. 


 그런데 갑자기 그가 더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낄낄거리기 시작했어요. 그 쪽을 봤어요. 그가 나를 가리키고 있었어요. 조교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외쳤어요.


 "신이야 신! 하하하! 아 저사람 진짜 뼁끼의 신이야!"



 6.이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면 좋겠지만...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을 쓰고 싶네요. 


 훈련소에 들어갈 때 배터리가 방전되지 말라고 휴대폰을 수거하면서 모두가 배터리를 빼 놓죠. 마지막 날에 휴대폰과 분리된 배터리를 나눠주고요. 저는 다른사람들을 관찰하느라 훈련소 방에서 마지막으로 나갔어요. 그래서 B를 관찰할 수 있었죠. B도 슬금슬금 휴대폰에 배터리를 넣었어요. 그런데 B가 휴대폰에 배터리를 넣자마자 전화가 오는 거예요. 그의 어머니였어요. 그는 다른 사람들이 통화를 잘 듣지 못하도록 중얼중얼 통화했어요. 훈련소에 가는데 말 안해서 미안하다고 한 말은 확실히 들었던 거 같아요. 통화를 끝내자 아무도 자길 신경쓰지 않는다던 그가 조금 울먹이는 거 같았어요.


 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훈련소에 전화해서 언제가 퇴소하는 날인지 알아내 계속 전화를 건 걸 거라고 상상했어요.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휴대폰에 배터리를 언제 넣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휴대폰에 배터리를 넣자마자 전화가 왔다는 건 전화가 연결될 때까지 전화를 걸고 걸고 걸고를 계속 반복한 거란 뜻이겠죠. 



 7.혼자 훈련소에서 돌아오며 저는 아침부터 전화통을 붙들고 앉아 계속해서 연결될 때까지 전화를 반복해서 거는 그의 가족을 상상해 봤어요. 잘 이해가 안 갔어요. 훈련소 사람들이 질질 짜면서 '형! 우리 이제 평생 보는 거야!'라고 한 것도 이상하고 소름끼쳤어요.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사실이 아니라서 이상한 게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그들이 진심으로 그 말을 한다는 게 이상하고 소름끼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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