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의 아니게 열심히 달려 버렸는데, 이번 글엔 대체적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약한 스포일러는 좀 들어갑니다. 열심히 까다 보니 어쩔 수가 없...



- 시작은 꽤 좋았습니다. '10대들이 다니는 마녀 학교'라는 소재를 통해 분위기 면에서 시즌 1, 2와 많이 차별화가 되었고 또 이 어린 캐릭터들이 엮어나갈 이야기들도 기대되는 면이 있었구요. 또 실제로 한동안은 그렇게 전개가 되기도 합니다만. 중반쯤 되면서부터는 엄...;


- 일단 그 '학교' 자체가 문제입니다. 간판을 학교라고 달고 있지만 학생은 네 명 뿐이고. 교사는 딱 한 명이 교사 겸 교장 노릇 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교사라기 보단 기숙사 사감 느낌입니다. 생활 태도 갖고 잔소리 하는 걸 빼면 뭐 딱히 하는 일이 없고 가르치는 것도 없어요. 근데 이 양반이 유일한 교사이다 보니 결국 이 학교가 뭘 배우는 곳인지 이런 곳이 마녀들에게 왜 필요한 건지 13회를 모두 봐도 설득이 안 되구요. 등장인물들 말로는 마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장소라는데 이야기를 보다보면 마녀들 입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그 학교인지라 설득력 제로. 결정적으로 (고작 네 명이지만) 학생들끼리 부딪히면서 엮어 나가는 드라마의 비중이 너무 작고 하찮아서 더더욱 이런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해 놓은 의미가...


- 어쩄든, 일반인들에게 거부당하고 탄압 받는 우월한 존재 '마녀'들이 모여서 사회 적응 교육을 받는 '학교'가 나오고. 각 마녀들은 자신만의 특기가 하나씩 있고. 거기 수장은 전설의 레전드급 파워 마녀이며 그들과 적대적 관계인 다른 마녀 집단과의 대립... 등등의 줄거리를 보다보면 자꾸만 엑스맨 생각이 나는데 실제로 수퍼히어로 기원담스러운 전개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런 부분은 나름 신선한 느낌도 들고 괜찮았습니다. 결국 중반 이후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다운 전개로 다 날려 버려서 아쉬움만 커지긴 했지만요.


- 일일이 디테일을 지적하자면 끝이 없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말하자면, 이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기계장치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춤을 추는 이야기는 정말 몇 번 본 적이 없다... 싶을 정도로 억지가 심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정말로 싱거웠습니다.


 [A라는 문제 상황 발생 -> 마녀들 좌절 -> 갑자기 한 마녀가 간단하게 해결 -> '오오 알고보니 너(or 우리) 짱 셌구나!'로 설명 끝]

 이런 식의 전개가 매 회마다 최소 1회씩은 등장했던 것 같아요. 나름 이런저런 설정이랑 규칙을 깔고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설정은 오로지 깨뜨려서 반전을 만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느낌이고, 그런 단순무식한 반전이 아주 그냥 꽃밭을 만들면서 몇 회 동안 심각하고 중대하게 끌던 떡밥들 까지도 매번 이렇게 허무하게 해결해버리니 나중엔 긴장감이나 흥미 같은 게 그냥 깔끔하게 증발해버리더라구요.


 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도 마찬가지에요.

 분명 인물들마다 분명한 '기본 설정'들이 있는데, 그게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대로 한 회에도 몇 번씩 작가 편의대로 오락가락합니다.

 폭력 반대하는 순수한 소녀 캐릭터가 갑자기 빡쳐서 사람 막 죽여 놓고는 바로 다음 장면에선 다시 순수한 소녀캐로 돌아오는데 아무도 거기에 대해 지적하지 않고 이후 전개에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든가. 앙숙이 몇 회에 걸쳐 '진심어린 관계'를 맺게 되고 막 유머랑 감동 코드 흩뿌리다가 갑자기 태연하게 배신하고 갈라서는데 역시 별 이유도 설명도 없고. 그런 후에 다시 급 화해해도 아무 문제 없고. 그런 다음에 갑자기 둘 중 한 놈이 흑화되어서 다시 나쁜짓하고 다녀도... orz


 특히 마지막 몇 화는 정말 무슨 생각으로 써갈긴 건지 작가의 멱살을 붙들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어쩔.


- 위와 비슷한 이야기인데, 원래 이 시리즈가 유령과 영혼의 존재 방식에 대해 아무런 고민 없이 걍 작가님 편할대로 써갈기는 시리즈이긴 하지만 이번 시즌의 유령들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짜증이 났습니다. 그냥 일단 깜짝쇼를 위해 누구 하나 죽이긴 해야겠는데 이야기 전개하려면 계속 나오는 게 편하니 유령인 셈 치자... 라는 느낌? 거기에 마녀들의 네크로맨서 스킬까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정말 그냥 모든 사고를 중지하고 보여지는 장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의 전개가.


- 1, 2, 3시즌 중 처음으로 남자들이 별 민폐를 끼치지 않는 시즌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민폐남들이 여전히 등장하긴 하는데 마녀들이 하도 강력해서 금방 다 제압되어 버리거든요. 그리고 아예 주인공 무리들을 거의 다 여성으로만 구성해 놓아서 (애초에 소재가 '마녀'니까요) 대놓고 페미니즘 친화적 드라마 분위기를 뿜어내고 마지막 회엔 작정하고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 대사도 튀어 나오고 그래요. 다만 그런 좋은 의도를 이야기의 허술함이 다 깎아 먹죠. 

 게다가 가만히 보면 여기엔 선량하고 팔자 센 남자 둘이 나오는데, 이 둘의 인생을 망치는 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여자들입니다. 주인공 무리들이 크게 한 몫 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구요. 어찌보면 고도의 페미니즘 안티 드라마였을지도(...)




-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다 봤습니다. 왜냐면... 마녀님들이 너무 예뻐서요(...)

 애초에 예쁜 배우들이 많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지는 이 분들의 다양한 마녀st. 의상 퍼레이드를 보고 있노라면 눈이 즐거워져서 끊임 없이 궁시렁거리면서도 보는 걸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늘 그렇듯이) 큰 그림은 엉망진창이어도 소소한 장면 하나하나들은 맘에 드는 게 편마다 몇 번씩 등장해줬구요. 

 다 보고 나서 돌이켜보면 정말 아깝습니다. 배우들은 정말 좋고 이번 시즌의 기본 아이디어는 꽤 근사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깜짝쇼 집착을 줄이고 불필요한 자극과 막장도를 낮추면서 주인공인 척하다가 쭈그러진 젊은 마녀들 이야기에 좀 더 집중했더라면 가장 맘에 드는 시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죠 이미 끝난 일이니.

 올해 방영된다는 시즌8이 시즌1과 이 시즌의 크로스오버 이야기라고 하던데. 그 물건이라도 좀 근사하게 뽑혀 나오길 빌어 봅니다.



-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가장 맘에 드는 건 시즌 2인데. 이제 그만 보려고 생각하면서 찾아보니 시즌 4는 또 평가가 꽤 좋네요.

 이걸 우짤꼬... 라고 고민하지만 아마 일단은 또 보게 되겠죠. 정말 농약 같은 시리즈입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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