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앤솔로지 영화들이다 보니 스토리 얘기는 아래에 각각 따로 하도록 하구요. 정확한 제목은 '어둠의 이야기 - 미리야'가 1편 격이고 '어둠의 이야기 - 기환야'가 2편 격입니다. 예전 한국 영화 '쓰리' 시리즈나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각자 다른 감독들이 만든 30분 내외의 호러 단편 셋을 하나로 묶은 거죠.

 1편은 나름 경륜 있는 유명 배우들과 유명 감독들이 참여한 편이고 2편은 무게감이 좀 떨어지는데... 그게 또 퀄리티와 그대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1편은 나름 볼만한데 2편은 아무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암튼 그럼 이제 각각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 1편 격인 '미리야' 먼저요.


 1. 장물


 주인공 임달화씨는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아주 가난하지만 간신히 좁아 터지고 낡은 셋방 하나 얻어 살면서 점심은 직장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퇴근 길에 샌드위치 하나로 때우며 목숨은 이어가고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본인 나름대로는' 억울한 사정으로 연달아 일터에서 쫓겨나고 빡쳐 있는 와중에 눈에 들어온 신문 기사에서 힌트를 얻어 납골당의 유골을 털고 그걸로 유족들에게 돈을 뜯어내겠다는 막장스런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그걸 또 번개처럼 실행에 옮겨서 유골 항아리 몇 개를 훔쳐오긴 했는데 처음으로 접촉한 유족은 '매년 찾아가기도 귀찮았는데 잘 됐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 라고 반응해버리고. 다행(?)히도 두 번째 연락은 잘 풀려서 어떤 남자를 만나 돈을 받는데 성공하는데 그 남자의 행색이나 태도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 임달화가 주연 겸 연출을 맡은 작품입니다. 이게 감독 데뷔작이라는데... 엄... 칭찬은 못 해주겠네요. 원작이 있다지만 이야기 자체가 좀 흔한 구전 무서운 이야기의 수준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 데다가 전개도 정돈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느낌. 호러 효과는 갑작스럽게 울려퍼지는 째지는 사운드와 함께 귀신이 얼굴을 척. 들이대는 패턴의 무성의한 반복으로 일관하고... 모호한 게 아니라 그냥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이야기가 대충 막 흘러갑니다. 나름 주제 의식 확실한 건 알겠는데 이야기 퀄리티가 이래서야... 딱히 뭐 하나 콕 찝어서 지적하기 애매할 정도로 전체적으로 별로인 이야기였어요.



 2. 손바닥에 적힌 말


 주인공은 장년의 점쟁이 아저씨 양가휘씨입니다. 진짜로 무슨 주술력이 있는 건 아니니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직업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양반에게 한 가지 진짜인 부분이 있다면 귀신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어려서 많이 아팠던 적이 있는데 그 후로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대요. 근데 딱히 돈이 되는 일도 아닌 데다가 일상 생활에 애로가 많아서 와이프는 아들을 데리고 떠나 버렸구요. 아내의 거부감을 없애고 가족을 되찾기 위해 자기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시작해 보려던 바로 그 날 아침에 익사한 여고생 귀신이 이 양반을 찾아 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의 최우선을 가족에 두기로 방금 결심한 이 양반 입장에선 참말로 거추장스런 일인 거죠. 저녁에 아주 오랜만에 와이프와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해서 이런 일에 신경을 쓸 틈이 없고 이젠 이런 거 하기도 싫어 죽겠는데 귀신과 옆집 수정구슬 사기꾼 아줌마가 자꾸만 달라 붙어서 귀찮게 하네요.


 - 주인공은 양가휘, 옆집 아줌마는 진혜림이니 가장 화려한 캐스팅의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감독은 이지의라는 분인데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제가 대략 20년 전에 봤던 '유망의생'이라는 영화의 감독이었더군요. (그 영화 주인공도 양가휘였습니다. ㅋㅋ) 나름 추억(?)이 얽힌 영화라 대단치 않은 완성도의 영화임에도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감독 스타일이 그대로여서 좀 재밌었습니다.


 그러니까 착하고 순수한 성격의 루저들이 나오는 따뜻한(!?) 코미디에요. 귀신을 소재로 했을 뿐 '호러'와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긴장감 같은 건 약에 쓸래도 찾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하구요. 헐겁고 싱거운 이야기지만 주인공과 옆가게 아줌마의 캐릭터가 나름 귀엽고 정이 가서 재밌게 봤습니다.

 다만 아무리 봐도 이건 시리즈의 파일럿 같은 이야기라서 이런 앤솔로지에 단편으로 수록되기엔 성격이 좀 안 맞는 것 같았고, 또 이게 결국에 시리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니 여러모로 애매한 물건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네요.



 3. 경칩


 제목 그대로 경칩 즈음이 시간적 배경입니다. 주인공은 '악인 때리기'라는 무속 풍속 같은 걸로 길거리에서 돈을 벌어 먹고 사는 가난한 할머니구요. 이 '악인 때리기'라는 건 무슨 부두 저주 처럼 생겨먹었지만 실상은 그냥 오래된 전통 놀이 정도. 고객님이 찾아오셔서 자기가 저주하고 싶은 사람 이름이랑 처지를 설명하면 이 할머니가 전래 동요스러운 대사를 읊으면서 신발짝으로 사람 그림을 두들겨 패 주는 게 전부입니다.

 마치 중국(정확히는 홍콩이겠지만)의 특이한 풍속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흘러가는 도입부가 지나가고 나면 이제 한 어여쁜 여성이 찾아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도 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장사 접을 시간이 지났으니 귀찮아서 거절하려던 할매는 그 여자가 유령이라는 걸 깨닫고 '너 까지만 해줄게.' 라며 선심을 쓰는데...



 - 세 편 중에 가장 영화적 완성도가 높으면서 또 사실은 유일하게 완성도가 괜찮은 단편입니다. 초반의 풍속 소개 파트도 제법 생동감이 있고 유령이 등장한 후로 전개되는 귀신 이야기 파트의 분위기도 꽤 그럴싸하면서 마무리도 나름 머리를 써서 재미있게(?) 연출된 편이구요. 미리야, 기환야의 여섯개 에피소드를 통틀어서 딱 하나만 추천한다면 이 이야기를 추천하겠습니다. 상당히 재밌게 봤어요.



 - 그럼 이제 2편 '기환야'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1. 베개


 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젊은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동거하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 그 분의 전 여자 친구 문제로 대판 다투고 난리를 쳤지요. 이후로 남자는 사라져서 보이질 않고 여자는 직장에서 일도 안 하고 계속 남자에게 문자만 보내지만 답이 없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걸려 버린 주인공은 무슨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 괴로워하다가 병원 의사의 조언대로 베개를 바꿔보기로 하는데 그 가게가 좀 심상치가 않구요. 주인의 적극 추천으로 구입한 베개 덕에 첫날부터 숙면에 성공하지만... 잠이 드는 순간 남친이 나타나서 잠이 깨는 순간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예전과 다르게 거친 성관계에 집착하는 남자이지만 그래도 돌아온 게 어디냐 싶어 행복한 주인공. 잠들 때만 남자를 만날 수 있으니 자고 자고 또 자는 생활을 거듭하는데 점점 심신이 쇄약해져서 출근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릅니다...



 - 나름 소소하게 반전도 몇 개 넣어보고 애쓴 티는 나지만 그냥 이야기 자체가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무서운 부분은 아예 없다시피 하구요. 특별히 나쁠 건 없는데 딱히 좋을 것도 없고 보고 나서 기억에 남을만한 구석도 없으니 일부러 챙겨볼 필요는 없는 정도.



 2. 숨바꼭질


 한 무리의 20대와 한 명의 어린 소녀가 20대들이 예전에 다녔고 지금은 폐교되어 건물만 방치된 초등학교로 찾아갑니다. 졸업 10주년이라나 뭐 그런 이유가 붙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먹을 것도 잔뜩 챙겨가서 학교 건물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 거죠. 그런데 10년 전이 바로 그 공포의 '사스'가 휩쓸었던 시기인가 봐요. 그 학교 학생들 수십명과 교사 한 명이 사스로 죽었다는 이야기로 밑밥을 깔고 음침한 경비에게서 '어두워지면 꼭 집에 가'라는 반드시 어겨야할 조언을 들은 후 주인공들은 한밤중에 그 학교에서 술래잡기를 시작하는데...



 - 폐교, 유령, 술래잡기 놀이까지 아이디어와 배경, 분위기는 썩 그럴싸한데 별다른 드라마 없이 그냥 '깜짝 놀랐지!!!' 호러 효과에만 매달리니 결국엔 지루해집니다. 무슨 물량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깜놀 씬이 튀어나오니 금방 질리구요. "나는 그런 단순한 놀래키기에 체질적으로 약하다"는 분들에겐 최고의 호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 영 별로였네요.



 3. 검은 우산


 검은 우산을 든 할배가 홍콩의 밤거리를 헤매며 곤경에 처한 이런저런 사람들을 도와주지만 아무도 고마워하질 않고 심지어 화를 내고 위협하기까지 하네요. 런닝타임 내내 저 첫문장의 내용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만난 성매매 여성에게서 이제 조금 다른 일이 벌어진 후 엔딩입니다.



 - 중국풍 호러 특유의 분위기는 나름 그럴싸하지만 그걸 빼면 남는 알맹이가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설정'만 있고 '이야기'가 없는 에피소드라는 느낌.

 별로였어요.




 - 그럼 이제 마무리를 해 보겠습니다.

 둘(여섯?) 다 특별히 '무섭'지는 않습니다. 완성도면에선 전체적으로 볼 때 '미리야' 쪽이 나아서 이건 그냥저냥 볼만하지만 '기환야'는 통째로 비추천.

 그나마 '미리야'도 첫 번째 에피소드는 별로였으니 결국 에피소드 둘만 남는데 그마저도 두 번째 에피소드는 호러 느낌도 아닌 데다가 취향 많이 탈 거구요. 결국 '미리야' 중에서 '경칩' 하나만 챙겨보고 잊으셔도 상관 없을 시리즈라 하겠습니다.


 그러고보면 제가 넷플릭스에서 챙겨 본 아시아 호러 시리즈들 중에 볼만한 게 거의 없었네요. 그나마 태국 드라마 '그녀의 이름은 난노' 정도가 기억에 남는데 이것도 에피소드들 중 절반 정도는 별로였구요. 흠... 동양 귀신들의 위상이 이렇다니 슬프네요. 그냥 '난노'의 두 번째 시즌이 나오길 기대해야 하는 걸까요. ㅋㅋ

 누구 넷플릭스에 있는 동양 호러 영화나 시리즈 추천해주실 분 없나요. 무서운 검은 머리 귀신들이 그리워지는 화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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