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트랙션을 보고 잡담...(스포)

2020.05.02 17:22

안유미 조회 수:1433


 1.예전에는 만화를 그릴 때 등장인물들을 마구 죽이는 걸 좋아했지만 요즘은 아니예요. 사실 이야기를 만들 때 등장인물들을 죽이는 건 몰입감을 위한 치트키나 마찬가지죠. 물론 효율적으로 죽이면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비효율적으로 죽이더라도 등장인물의 죽음은 작중에서 큰 사건이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어떤 이야기를 만들 때 이 이야기가 정말로 배드엔딩으로 끝나야 할 당위성이 있는지 생각해 보곤 하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그냥 폼을 잡기 위해'서거나 '그게 장르의 규칙이니까'같은 이유로 배드엔딩을 만들지는 않아요. 등장인물을 꼭 죽여야 할 이유가 없다면 그냥 살려주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죠. 그게 독자 입장에선 다소 심심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마지막까지 스토리를 비틀어 보려고, 마지막까지 잘 살아남은 등장인물들을 굳이 죽이는 건 싫어서요.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내가 닫아버린 우주에서도 그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2.인스트랙션을 보면서도 궁금했어요. 납치된 소년을 구하러 온 주인공이나 조직원 아저씨가 반드시 죽어야 할 이유는 없거든요. 물론 장르의 규칙상 그들이 퇴장할 만한 타이밍에 퇴장한 거지만, 주인공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조직원 아저씨도 나쁜 사람이 아니예요. 그냥 주인공도 살고 조직원 아저씨도 살아서 다같이 소년과 돌아간 다음에, 힘을 합쳐서 소년을 착한 마약왕으로 만들고 다같이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잖아요? 이런 액션 영화에서 끝까지 잘 살아남는 실력자들이 갑자기 러닝타임이 끝날 때쯤 되면 픽픽 쓰러져간다?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예요. 말도 안되는 아수라장을 다 뚫고 나왔는데 마지막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총에 맞아 쓰러진다니 말이죠. 이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장함을 억지로 도핑하는 거예요.


 그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죠. 만화라면 모르겠지만 역시 영화라면, 내가 감독이었어도 어쩔 수 없이 아저씨랑 주인공을 보내버려야 했을 거예요. 남의 자본을 들여 제작하는 거고 얽힌 스탭들도 너무 많으니까요. 안전하게 장르의 규칙을 살려야만 하니까요.



 3.사실 영화 자체에 대해선 그리 할말이 없어요. 이야기 따윈 집어치우고 액션을 잘 뽑아낸 괜찮은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흘러갔는데...의외로 중간에 가스파르와의 갈등은 인상깊었어요. 가스파르는 은퇴한 용병이고 아내가 있는데 도시 안에 저런 별채를 따로 지어놓을 정도면 쪼들리게 사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돈쓸 곳은 많고 늙는 건 싫다고 외쳐대는 피터팬 기질이 좀 있죠. 


 어쨌든 가스파르도 자신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계속 피터팬으로 살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상태예요. 그리고 천만달러를 위해 소년의 머리를 쏴버리는 걸 일종의 '자비심'이라고 합리화하죠. 차라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악당이면 모르겠는데 마음 속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고 소년을 죽이려고 하는 게 제법 인간적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종류의 악당은 사탕발림이 통하지 않는 순간 주인공을 때려잡으려는 괴물로 변신하곤 하는데 가스파르는 정말 순진한 구석이 있는 건지, 주인공을 끝장낼 기회를 얻고서도 그냥 흘려보내요. 어쨌든 가스파르가 소년을 죽이고 얻을 천만달러를 나눠갖자고 말한 것만은 진심이었던 거겠죠. 

 

 익스트랙션은 뻔한 이야기긴 하지만 중간에 나오는 가스파르가 '타락한 옛친구'캐릭터를 정성들여 변주한 캐릭터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4.휴.



 5.후속편이 논의중이라는데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주인공의 생존은 후속편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에 따라 슈뢰딩거의 상태겠죠.


 일단 이 영화 내에서만 보면 마지막에 여사친이 마약두목을 죽이는 걸로 봐서, 주인공은 죽었거나 죽었다고 알려진 상태로 마무리된 것 같네요. 마약두목을 죽이는 이유가 그 꼬마의 안전을 위해 애프터서비스를 해 주는 거라고 보기엔 너무 리스크가 크니까요. 저런 거물을 죽이는 이유는 결국 친구의 복수 이외에는 그럴 만한 동기가 없다는 걸 보면...일단은 죽은 걸로 봐야겠죠.


 하지만 마지막에 주인공이 강에 떨어졌고 중간에 소년이 언급한 강에 대한 비유를 보면 주인공이 돌아와도 이상할 건  없긴 해요. 주인공이 강에서 나오기를 원하면 계속 살 수 있을거라는 예언이니까요. 주인공과 소년의 케미가 좋아서...2편이 나오면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로 가기보단 다시 그 소년이랑 엮였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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