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렸을 때부터 뉴스나 신문에서 지겹게 봐온 말이죠. '성역없는 수사'라는 말 말이예요. 한데 이런 말은 존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예요. 성역없는 수사를 하겠다라는 말을 뒤집어보면, 성역이 아닌 곳은 냅두고 성역인 곳만 털어보겠다는 말도 되거든요. 


 정확히는 성역도 아니예요. 저런 워딩에서 말하는 '성역'이라는 건 세간의 사람들에게 '대충 성역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뜻하는 거니까요. 진짜로 성역이 아니라. 



 2.그야 나는 이런 종류의 다툼을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른 사안에서도 그렇듯이 작년부터 이어지는 윤석열의 항명 사태는 착한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이 아니라 힘과 힘의 대결이라고 여기는 편이죠. 


 한데 그래도 윤석열이 별로인 건 결국 세간의 대중들의 인식을 교묘히 이용하는 교활함 때문이예요. 그에게는 '진정한 검사'라거나 '정의의 칼날'이라는 말도 안되는 종교적인 오라가 덧씌워져 있는 상태죠.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정의의 검사같은 게 있을 수가 없어요. 선거를 통해 고위직 검사가 선출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무원이니까요. 



 3.매번 말하듯이 나는 정론을 싫어해요. 정론이라는 건 힘과 명분이 없는 놈들이 방패막이로 주워다 쓰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야 군중들은 강자에 맞서서 정론을 주워섬기는 얍삽한 놈들에게 늘 환호하죠. '삼권분립'이라는 허상에도 열광하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잖아요? 갑자기 이 시기에,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삼권분립'을 금과옥조처럼 내밀어대는 건 선택적 삼권분립에 불과한거죠.


 삼권분립이란 건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순간에만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이 보장되는 나라다.'라는 말을 주워섬기기 위해 있는 개념이지, 실제로 현실에서 뿌리내려본 적이 없잖아요.



 4.휴.



 5.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의 검사, 검찰총장이란 건 권력자의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정권을 잡는 사람은 삼권분립이라는 허상에 휘둘리지 말고 그 점을 잘 이용해야만 하는 나라인 거예요. 


 권력이란 건 그렇거든요. 권력이란 걸 내려놓는다고 해서 좋은 권력자가 되는 게 아니예요. 이전의 권력자들이 나쁜 방식으로 이용해오던 권력을 좋은 방식으로 이용해먹는 게 최선인거죠. 이전의 권력자들이 나쁜 방식으로 이용해오던 권력을 '그건 정의롭지 못하니까 그만둬야 해.'라고 외치면서 내려놔 봤자, 그들의 상대 진영만이 기뻐할 뿐이죠. 


 어차피 정권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평가받고, 필요하다면 심판을 받아요. 정권을 쥐고 있는 동안은 5년짜리 권력을 사용해 자신이 평생에 걸쳐 다듬어온 철학과 이상을 현실에 투사하려고 노력하는 게 이 나라의 권력자가 해야 할 일이죠. 괜히 좋은 사람, 탈권위를 지향하는 사람이 되어 보겠답시고 자신의 정치가 발목잡히게 만드는 상황을 굳이 만드는 건 멍청한 거예요. 



 6.꼭 대한민국의 대통령만이 그런 게 아니예요. 어딘가의 조직의 장이 된다면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본인을 성역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예요. 권력을 잡은 자가 나쁜 놈이라면 알아서 그렇게 할 거니까 애초에 이런 말이 필요가 없을 거고, 권력을 잡은 자가 좋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점을 명심해야만 하는 거예요. 왜냐면 나쁜 놈들은 전부 그렇게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놈도 권력을 잡으면 그런 식으로 해야만 하는 거예요. 본인을 '진정한 성역'으로 만드는 거 말이죠.



 7.위에 썼듯이 대한민국의 기관들은 대통령과 2인3각으로 뛰어야 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이예요. 윤석열이 하고 있는, 소위 '성역없는 수사'라는 건 말도 안 돼요. 애초에 성역으로 보지 않으니까 들이받는 거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검사라는 건 지나가는 500명의 사람들 중 마음만 먹으면 500명 전원을 기소할 수 있어요. 검사가 그럴 마음만 먹으면 지나가는 아무나 불러세워서 아주 작은 걸로도 기소할 수 있거든요. 이 세상에 먼지는 어디에나 있고, 그곳이 어디든간에 검사가 마음을 먹은 순간 들이받을 수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먼지는 어디에나 있는 건데 그 먼지를 굳이 성역이라고 여겨는 곳...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는 곳에 가서 찾아다니는 건 이상한 일인 거죠.


 사람들은 이상한 정론을 끌여들이면서 '진정한 검사라면 비리가 있는 어디든 들이받는 게 옳다.'라는 허상에 취해 있지만 글쎄요. 한국에서는 권력자가 공무원을 임명한다는 건 같은 배에 타서 같은 방향으로 가자고 제의하는 거예요. 이 배가 마음에 안 들면 배에 불을 지르라고 같은 배에 태우는 게 아니잖아요?



 8.그야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검사가 순수하게 정권을 문제삼고 비리를 파고들은 사례가 있었다면 지금 윤석열이 하는 행동도 이해가 갈 거예요. 그러나 위에 말했듯이 우리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란 말이예요. 애초에 선진국 중에 그런 사례는 거의 있지도 않고요. 윤석열이 지금 하고 있는 건 '성역없는 수사'라는 있지도 않는 개념을 방패막이삼아 해대는 쇼에 불과해요.


 이 상황에 신나있는 사람들은 낄낄거리면서 '문재인이 성역없는 수사 하라고 했잖아 ㅋㅋㅋ'이러지만 윤석열은 선출된 사람이 아니잖아요. 임명된 사람이죠. 


 그리고 윤석열이 휘두르고 있다는 소위 '정의의 칼날'은 그와 친한 주위 사람에게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고요. 그에게 2년간 대여된 그 정의의 칼날은 오직 그가 가장 정의로워 보일 수 있는 곳, 그런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곳에서 휘둘러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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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고 보니 너무 윤석열을 비판하고 정권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냥 개별적으로만 본다면 윤석열은 자기 일을 하는 거고 조국은 실제로 먼지가 꽤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은 해요. 그리고 윤석열의 인생 전체가 진정성이 없다고 보지도 않고요.


 그러나 이 세상은 그런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예요. 트럼프를 보세요. 사람들은 그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서 '역시 미국 대통령이야! 사이다야!'라고 말하지만 아니거든요. 트럼프가 했던 짓거리들은 다른 미국 대통령들도 마음만 먹었으면 할 수 있는 짓거리였어요. 다른 대통령들은 시스템과 관례를 신경쓰고, 권한을 마구잡이로 남용했을 때 벌어지는 부작용을 아니까 안 한 거죠. 


 그야 군중들에게 관례라는 말은 그저 웃음거리일 뿐이겠죠. 작금의 사태는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군중을 열광시키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구경거리를 보여주던 것처럼, 무제한적인 권한을 마구 휘둘러대는 쇼에 불과해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상하잖아요. '무한 리필 뷔페'라고 써있다고 해서 정말 음식을 무제한으로 퍼가면 안되잖아요? 뷔페의 음식을 밖으로 가져가서도 안 되고요. 무한이라는 개념은 결국 사람들의 인식과, 지금까지의 관례 안에서 정해지는 거니까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도 마찬가지예요. '어디에서' '얼마나' '어떻게'라는 명시가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 칼날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자의적으로, 무제한적으로 휘둘러대는 건 정의와는 한참 먼 일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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