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2018) (스포 주의)

2021.03.20 18:18

산호초2010 조회 수:570

싸이코패쓰에 대해서 읽고 싶지 않은 분들은 제 글 읽지 마세요.













이창동 감독 영화 안좋아해요. ”박하사탕이든 오아시스든 그 당시에는 좋은 영화라니까 의무감에 봤었던게 아닐까 싶어요. , ”밀양은 흥미롭게 봤었네요. 그래도 이창동 감독 영화는 남들은 훌륭하다는데 난 마음에 안든다였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묘하게 끌려요. 묘한 매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에요. 그리고 한 번 봐서는 잘 모르겠어요. 파헤칠만한 구석이 너무 많잖아요. 의문을 던지게 하는 장치들이 영화 내내 깔려있어요. 두 세 번 볼 때마다 감정도 달라지고 영화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거에요. 범죄 스릴러 장르는 항상 좋아하지만 막상 보면 뻔한 경우들도 많은데, 이 영화는 엄청나게 밀도있는 것도 아닌데 끌린다구요.

 

단편소설로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창동 감독 영화가 소설 느낌이 강하지만 이 영화는 시나리오 형식이 아니라 단편소설로 장면마다 묘사한 글로 읽고 싶어요. 영상을 보고 있는데 소설 속의 문장으로 마음에 떠오르기도 하네요.

 

윌리엄 포크너의 ”Barn Burning“에서 착안을 했다는게 분명한데-종수가 포크너를 좋아한다는 언급, 그런데 월리엄 포크너 소설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잖아요. 방화라는 모티브만 따온 것 뿐이죠. 굳이 공통점이라면 아버지가 인생의 실패자라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스티븐 연 캐릭터, 싸이코 패쓰 캐릭터 중에서도 지금까지 잘 못보던 유형이라고 해야 하나, 묘사를 그렇게 해서인지, 이 사람 내면세계를 파헤쳐보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한단 말이에요.

 

어찌보면 해미는 그에게 흥미로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솜씨좋게 길들이고 그리고는 먹잇감이 되는 대상일 수도 있지만

그의 내면은 해미같은 사람이 채워줘야할 결핍이나 심각하게 뒤틀린 트라우마, 혹은 해미와 동질적인 인물로까지 느껴진단 말이죠.

어디까지나 이건 제 느낌이에요. 보통 연쇄 살인범과 피해자 관계치고는 특별하잖아요.

 

수많은 범죄 스릴러물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생략되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여기서는 두 사람은 정서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어스름이 내린 황량한 시골집에서 자신의 방화에 대해서 고백할 때, 표현을 못하겠는데 뭔가 이 사람 내면이랑 닿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 사람이 말하는게 방화가 아니라 살인을 암시한다는게 느껴지는데 종수한테

왜 이런 내밀한 고백을 했을까. 종수와 해미가 어릴 때부터 각별한 친구 사이라는걸

알면서 그녀를 살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왜 고백하는 것처럼 말할까.

 

연쇄 방화범들은 연쇄강간범이거나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죠.

 

 

비닐 하우스를 태운다, 그 비닐 하우스는 쓸모없는 것들이다, 그걸 태우는건 자연의 흐름같은 거라고 했나,

대마초 피우고 하는 헛소리거나 개똥철학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무슨 의도로 지껄이는 말인지는 애매모호하지만 그게 매력이라고 할까요.

 

2달의 페이스, 가슴 속에 울리는 박동,,,,, 아무리 들어도 연쇄살인범들이 느끼는 살인의 쾌감이잖아요.

 

종수와 두 사람의 대화 속의 긴장, 갈등, 적대감 혹은 공포 그런게 섬세하게 감정선이 느껴졌어요.

요즘에는 영화에서 느껴보기 힘든 종류의 그런 심리적인 긴장감. 그다지 표현을 크게 안해도 말이에요.

 

벤은 무시무시한 고문실을 갖춰놓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란 말이죠.

충동적으로 길가는 여자를 납치해서 둔기로 죽인다든가 하는 그런 유형이 아니에요.

호텔에서  가족 모임을 가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직업이 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부유한 집안의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단 말이에요. 친구들이랑 음식 가져와서

집에서 편안한 모임을 즐기는 것도 오히려 이 사람이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인생을 여유있게 즐기면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죠.

 그가 늘 새로운 사냥감인 여자를 그 모임에 데려와서 어울리게 하는 것도 자연스럽잖아요. 범죄자같은 티가 안나죠.

 종수처럼 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의 고백을 듣기 전에는요.

 

 

해미 캐릭터는, 정말 아프리카에서 치유의 춤이랄까 그런거 추면서 지내야 할 사람-아프리카에서도 먹고 살아남아야 하는데 항상 춤만 추고 살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경쟁사회 안에서는 살아남을 사람으로는 볼 수 없잖아요, 누가 보기에도 감수성이 예민함을 넘어서서 극도로 불안정하게 흔들린다는걸 알 수 있는 여자에요.

뭔가 이런 객체화가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요. 벤의 친구들이 그녀를 구경거리삼아서 춤을 춰보라고 했던 장면에서처럼

남들에게 본인이 구경거리로 소비된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죠.

 

해질녘에 가슴을 노출한 채로 너울너울 춤추던 장면은 과잉이라고 느껴졌어요.

 

이 여자 캐릭터는 그때까지 보여준 모습, 혼자서 독백을 하다가 울음을 터뜨릴 듯 말을 이어가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했다구요.

곧 울음을 터뜨릴거 같은데 신기하게 울지는 않은채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감정에 깊이 빠져들어서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종수는, 아버지는 분노 조절 장애가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어린 시절 떠나버렸고 어머니 옷을 태우라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엄마 옷을 태웠던 과거,

아버지는 현재 감옥에 있고 뒤치다꺼리는 종수가 하고 있다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도 자세한 어린 시절에 대한 설명이 없이도

역시나 사회 부적응자같은 그의 캐릭터, 그리고 종수와 해미의 특별한 친밀감, 신뢰가 이해가 되요.

 

가장 의문인 것 중 하나는 왜 종수는 벤의 집을 뒤지면서 여성들의 소지품을 수집하고 있다는걸 알면서,

위험한 인간이라는걸 감지하고서도 해미에게 그를 조심해야 한다고

아니, 그와 가까이한다는게 위험하다는걸 적극적으로 경고했어야 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는 거에요.


벤의 물건들을 둘러보면서 그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벤이 위험한 사람이라는거, 해미가 피해자가 될 수있다는 사실 모두 예감하면서도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는거에요.

 

해미와 우물. 우물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동네 사람들은 기억을 못하죠.

 뜬금없이 연락해서 돈달라는 집나갔던 엄마에 의해서야 해미가 우물에 빠졌던 사건이 실제로 있었음을 기억해요.

해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그 자신이었다는걸 종수가 깨닫는다는 것인데

깊은 빈 우물에 빠진 소녀의 이미지가 떠올라요.잘 보이지 않는 함정같은 위험이라는 의미일테죠.

 

찾아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이 있군요.

하지만 전 이 영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소설을 읽고 싶어요.




* 다시 읽어보니 전형적이지 않다고 했지만 벤의 캐릭터가 뻔한 연쇄살인범 유형인데 특별할게 무엇이 있냐고

 할 수도 있겠네요.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 사회적인 지위가 낮으며 연고자가 거의 없는 여자를 노려서

가지고 놀다가 살해한다는 설정도 많다면 많으니까요.


 

  --- 이 모든 사건이 종수의 시각에서 바라본 허구적인 상황, 벤은 그저 평범한 인물이며 그들의 계급적인 차이 등

      종수의 분노가 빚어낸 살인사건이며, 해미는 벤에게 살해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으나 그런 관점에서 보는

      무죄한(?) 벤으로 보면 또 새롭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긴 하는군요. 그러나 전 내 관점에서 보는게 더 설득력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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