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에, 다들 무탈하십니까?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라고 한참 전에 첫 줄만 써놓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 선거까지 다 끝났네요. 정치색과 지지정당을 드러내는 일은 부질 없어서 가급적 삼가려고 했지만, 제가 투표한 후보중에서 지역구는 당선이 되었고, 비례정당은 암담한 결과를 낳았네요. 당선자의 소감 중, 저를 지지하지 않은 민심에 대해서도 헤아리겠다는 소회는 개인적으로 깊게 와 닿았어요. 단지 승자의 여유라고만 볼 수 없는 선거의 결과뿐만 아니라 인생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거든요. 이런 인간다운 성찰과 모색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기도 해요.

저 역시도 지난 설연휴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시간이었어요. 이따금 듀게에 들어와 밀린 글들을 휘뚜루마뚜루 읽는 것도 벅찰 만큼 바쁜 날들을 보냈어요. 어쩌면 선거일을 오래 기다린 것도 국정에 대한 민심 재판의 대의가 아닌 저에겐  그냥 진짜 오랜만에 쉴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사가 원래 주력상품도 아닌 코로나 연관 제품을 취급하게 되었고 일복이 터져 숨도 못 쉬고 살았거든요. 그러면서 일련의 과정들을 진행하고 지켜보고 있자면… 속에서 뭔가 할 말이 곪아가는 느낌이 들곤 했어요. 전에는 그렇게 친절하고 깍듯하던 협력업체의 담당자가 돈방석에 앉다 못해 돈빌딩을 쌓아 올리며 점층적으로 보여주는 거만한 태도 변화와, 본격적인 코로나 특수를 누리지 못함을 배 아파하면서 어떻게든 그 대열에 껴서 마진 떡고물에 안달 난 중간 유통업자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지켜 보면서… 이해와 영리 앞에 인간이란 뭘까 라는 현타적 주제가 떠나지 않아 주변 인간들 그냥 다 꼴 보기 싫고 지겨웠던 날들입니다.

사실 1년 가까이 공들여 이제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제 프로젝트들의 성과가 이 코로나에 묻혀 아무것도 아닌 채 빛도 못보는 듯한 속상함이 가장 크겠지요. 그래도 이 불경기에 일감이 끊이지 않는게 어딘가 싶지만, 이보다 더 장기화 되면 누구보다 제 자신이 제일 못 견딜 거라는 신호를 이미 감지하고 있어요.

실제로 집에 들어와 자려고 누우면 목도 따끔거리고 기침도 자꾸 나고 밖에서 절대적으로 참느라 용량을 초과하며 봉인돼 있던 온갖 물리적, 심리적 비말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도 하구요. 혹시 내가 무증상 확진자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드는데 체온을 재보면 35. 심리적 상상코로나를 앓고 있는 몹쓸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 아주 예전에 잠깐 알았던 어떤 시인이 떠오르네요. 그 시인은 IMF때 줄을 서서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 하는 국민들이 그렇게 멍청하고 웃겨 보여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말을 했었죠. 정부와 질본의 통제하에 대부분의 국민이 마치 말 잘 듣는 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근 석 달 가까이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일상화 하는 지금, 그 시인은 이 시국을 어떻게 관통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드네요. 하긴 금 모으기 운동은 질병과는 다른 문제니까요.

회사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조심조심 출퇴근 하고, 그 나마의 활동도 대폭 줄어든 채로 집에만 있다 보니 우연찮은 기회로 옛날 드라마를 정주행 했는데, 정제된 연기며 세련된 세트장 때깔은 요즘 드라마가 매끈하게 잘 뽑아도, 드라마의 드라마틱함은 역시 옛날 작품을 따라가지 못하네요.

청춘의 덫을 다시 봤는데, 당시 드라마 속 심은하의 패션은 지금 봐도 이격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상하고 특히 그 미모는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너무 자연스럽고 아름답더군요. 의술로 깍지 않은 자연스러운 얼굴선과 말간 피부가 주는 청신함, 그리고 연기를 저렇게 잘 했었나 싶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진짜 여주는 북청사자머리 펌을 하고 순대색 립스틱을 발랐음에도 천박은 커녕 볼수록 어여쁘다 빠져드는 유호정이죠. 어떻게 저런 쿨함과 지순함과 강단을 다 갖췄는지 이태원 클라스의 조이서가 나오기 전, 이미 20년전 영주가 다 씹어먹었군요.

뜻밖의 재난으로 가족과 친구와 직장과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도 있는 마당에 그깟 취미가 무슨 대수랴 싶은 상황에 때마침 발레학원도 꽤 오래 휴원을 했고, 저야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취미라 이것도 사치다 싶은 상황도 길어지면서 몸이 근질근질 확찐자가 되어갈 무렵 학원이 조심스레 수업을 재개했어요. 진짜 간만에 학원 가서 보니까 예고에 진학하고도 학교를 못가는 친구는 개인레슨과 실기 동영상으로 수업을 대체해 왔고 코로나 전까지 성실하게 발레단 준비하던 친구는 원래의 연습량에 턱없이 부족한 레슨 때문에 몸도 굳고 살이 너무 찐다고 몹시 우울해 하네요. 전공이든 취미든 급찐 몸에 레오타드는 형벌 같은 것이라 다들 워머를 벗지 못하고 왔어요. 그나마 학원은 코로나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며 혹시라도 방만한 회원에 대한 원장님의 경고와 퇴원 조치가 칼 같은데

전에 비해 현격히 줄어든 수업으로 웨이트라도 잠깐 해볼까 나간 헬스장에서는 마음만 잔뜩 상하고 왔습니다. 이런 시국에 그나마 운동이라도 하고 싶으면 다같이 거리 두기 유지하고 마스크에 장갑에 소독제 발라가며 조심조심 숨 참아가며 최소한의 운동만 하고 오는게 암묵적인 분위기에서, 마스크 착용도 아예 안 하고(운동하다가 숨이 차서 잠깐 벗거나 턱에 걸친 게 아닌), 개인 PT 받던 어떤 회원 때문이죠. 마스크도 그렇지만 회원간의 인사도 최소한의 대화도 싸인으로 대체하며 서로 조심하는 와중에, 눈감고 들으면 무슨 정사씬이라도 찍는 듯 요란한 호흡과 육성을 맘껏 뱉어내며 벌크업 하고 있던 남성회원을 봤어요. 헬스장 곳곳에 소독제가 비치되어 있고, 실내에서 마스크 착용 필수라고 사방 벽에 써 붙여 놨는데도 무슨 배짱인지 특권인지요.

처음에 한 번 목격했을 때는, 그 회원 잠깐 숨 돌릴 때 내가 우연찮게 들어온 건가 싶었는데, 그날 이후 2번을 더 봤어요.  눈짓으로 몇 번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다 참다 못해 안내 데스크에 가서 방송을 하거나 주의를 달라고 요청했더니, 마지못해 한 두번 방송 나오는데 난독인지 난청인지 방송이 나가는데도 아랑곳 없이 비말 뿜어가며 격렬하게 운동합니다. 정작 PT 진행하는 트레이너는 마스크를 꼈던데 아무런 규제도 마스크 권장 한 마디도 없어요. 되려 그 회원은 4월 안에 복근 완성하면 애인 앞에서 자랑할 거라고 큰 소리치던데, 거지같은 복근 만들어서 애인과 뒹굴다가 쌍으로 코로나나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 떨어지고, 없던 혐오가 생길 지경이에요. 다같이 고통 분담하면서 서로 조심하자고 하는 상황에서도 참는 사람들만 참고 이기적인 인간들은 자기밖에 모르는구나 싶어요. 

더욱이 같은 헬스장 10년째 다니는데, 이런 예민한 시국에 철통같이 지켜야 할 룰은 대충대충 헐거우면서 매월 말일이면 재등록하라고 어찌나 개인 핸드폰으로 연락들을 하는지, 다들 그냥 먹고사니즘 밖엔 안 남은 그 생존 본능에 일말의 연민도 안 느껴지는 건 이런 질병 시대에 제가 극도로 야박해진 건가 싶어 그것도 기분이 좋지 않아요.

언제까지 상상코로나를 앓으며 이런 예민한 기분으로 통제된 일상을 버틸 수 있을까 싶지만 이 답답함을 같이 버티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이겠죠. 이러다가 더 길어지면 갑자기 폭동이라도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들지만,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시민의식과 인내심에, 그나마 화창한 절기로 위안을 받을 수 있도록 날씨가 조금만 더 환하고 따뜻하게 풀려 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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