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이라는 조롱조의 말에 발끈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뿌리에는 십 년 전에 이미 38도선 이남을 휩쓸고 간 "김치녀"라는 말이 있고, 그 전에 "된장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게 맛있는 된장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사람들은 급하게 어원을 끼워맞췄는데요. 급기야, 밖에서는 도도하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지만 집에서는 된장찌개를 끓여먹는 여자들이라는 되도 않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야 그게 뭐야? 무서워...

된장녀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90년대 통신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한 손에는 전화비 고지서를, 다른 한 손에는 빗자루를 든 엄마를 피해 필사의 탈주를 해본 사람이라면, 퇴마록 그까짓거 몇 바이트나 한다고 굳이 도트 프린터로 출력을 해서 친구들과 돌려본 사람이라면, 지금은 미립자보다 존재가치가 희미한 1바이트의 소중함을 알고 있지요.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이 인터넷의 탑골공원이라면, 그에 못지 않아 가히 게시판 계의 정동 라디오 극장이라 할만한 듀나게시판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요. 바로 바이트 낭비. 이것은 비단 그것을 공유하게 도왔던 물리적인 정보 양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것을 공유할 수 있었던 이용자들의 수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소수의 우리라는 자긍심은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너희와 달라'라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선민 의식을 갖게 하였고. 개화기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통하는 세련 된 미를 추구했듯이,

초창기 통신을 할 수 있었던 계층들이 이른바 지식인,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이 주축이었기에 좁은 울타리 안에서 굉장히 높은 수준의 예절과 상호 이해를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단 겁니다.

오프라인에선 그때나 지금이나 개새끼, 소새끼, 저 개호로잡놈 어젯밤에 귀신은 저 새끼 안 잡아가고 뭐했나 지랄발광을 하지만, 일단 하이텔 채팅 방에 들어서기만 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격식을 갖추고 언제나 밝은 미소와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누구누구님 안녕하세요? 방가방가 하이?

이때의 통신은 고구려 소수림왕이 태학을 세우고 나라의 동량들에게 마침내 유학을 공부하도록 했던 이래로 거의 이천 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반도를 지배한 유학. 그 중에서도 병신 같은 서인 새끼들이 여자랑 애새끼들 보기를 아주 좆같이 봤던 변태적 가학성을 배제한, 순수한 공자의 유토피아가 실현 될 수도 있었던 일종의 해방구였습니다.

계급, 나이, 성별을 뛰어넘어 모두가 모두를 님이라 부르고, 속으로는 저 얄미운 놈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어도 서로 만나면 어쨌든 공손히 맞절을 하는 광경. 동학 교도들이 스스로 집강소를 열어 자치를 시작했듯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소모임을 꾸려나가는 평등한 사회. 이것이 해방구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감히 그때의 사람들이 저 가오 잡다가 골로 가버린 볼셰비키들보다 위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봄날은 빨리 가버립니다. 통신은 누구나 지불만 한다면 그 울타리를 넘어 들어올 수 있는 요금재였기에 언제든 쉽게 오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요. 통신이란 게 재밌다고 소문이 나고, 영화 접속이 기름을 부어버리자 마침내 그 위대했던 밴드오브브라더스의 울타리가 붕괴 되어 버린 겁니다. 잘 사는 것들이 멤버십 클럽 만드는 거 저는 이해해요.

중학생이었던 제가 유니텔로 통신을 시작했을 때, 이미 붕괴의 조짐은 여러 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그저 재밌다니 들어 온 사람들이 도무지 막말을 하지 않고 대화를 하려니 좀이 쑤시는 겁니다. 지금의 저처럼.

채팅 하다가 울화통이 터져서 '야 이 애비없는 새끼야'라고 치고 싶은 어두운 욕망을, '어허.. 이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사생한 것과 같은 가련한 자를 보았나..'라고 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그래서 마련한 것이 하나는 실컷 욕을 할 수 있는 "욕방", 그리고 단어의 유희적 변형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수 많은 위트와 욕망의 산물들이 만들어집니다. 개나리십장생, 십팔자비기를쓴자, 죽을쑤어먹인소, 등등.. 그 가운데 바로 문제의 단어. <된장>이 있었던 것이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된장은 분명 어떤 육두문자의 변형인데, 이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맞습니다. 젠장입니다. "이런 젠장" 하고 감탄사 격으로 내뱉는 욕을 "이런 된장" 으로 변형을 한 것이었고, 아직 통신의 유산이 남아있던 이천 년대 초에 이르러 "젠장년" 을 "된장년"으로 나름 순화하여 쓴 표현이었던 겁니다.

당대는 어떤 사회였습니까? 우리 사회에서 레귤러 커피란 어여쁜 아가씨를 꼬시러 갔을 때 1회성 이벤트로 마시는 사치재였습니다. 가게의 이름도 과연 고졸하여 "쉘부르", "몽마르뜨",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그런 곳에서 뻐꾸기를 날릴 때나 마시는 필살 아이템이지, 절대 다수의 남자애들에게 생활 속에서의 커피는 학관식당 앞에서 150원에 뽑아마시는 그냥 숭늉이었던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타벅스 인터네셔널이 왜 한국의 스타벅스 1호점을 강남도, 여의도도 아닌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입점 시켰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20세기 이후, 문화를 이끌고,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람들은 대게 여성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식당 예약 문화를 처음 시작한 것이 유대인 여성들이었고, 러셀의 국가 따위 조까라 그래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이 열등하냐? 아닙니다.

여기서, 이 문장들은 절대로 여성이 우월하고, 남성이 열등하다는 논조로 읽혀서는 안 됩니다. 다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성이 변화와 방식의 변화에 비교적 남성들보다 수월하게 반응한다 정도로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신석기 시대로부터 유전자에 새겨져 왔다고 저는 그냥 혼자 생각합니다. 그때 인간의 경제활동은 어떠했습니까? 수렵 채집을 했지요? 남자들은 수렵을 하고, 여자들은 채집을 했습니다.

수렵은 무엇입니까? 가장 전투력이 낮은 포식자인 인간이 야전에서 온갖 위협 속에 기습과 퇴출 활동을 벌이는 것입니다. 당연히 판단과 행동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 맘모스 먹어보겠다고 도전정신 함부로 발휘했다가는 눈 떠보니 저승인데?

반면 여성들은 채집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과일의 발견 및 비교, 새로운 채집지 개척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당대는 평등한 무리 위계의 모계 사회였기 때문에 받이들이고 아니고의 선택은 아마도 여성의 몫이었을 겁니다.

그걸 약 1만 년 가까이 했고, 우리는 지금 약 3천 년째 역사시대를 살고 있는 거지요? 여자들이 왜 쇼핑을 잘 견디는가도 이걸로 대강 해석이 가능합니다. 백화점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또 돌아? 씨바 차라리 행군을 하라고 해라.

당시 남자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니는 '여자'들을 비난한 게 아닙니다. 그들이 그린 된장녀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구한말 유림들이 보는 모던 걸의 표상이었어요. 세련되게 떨쳐 입고, 노래는 꼭 아이팟으로 듣고,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한 커피를 들고 있다는 그녀들은 흥미롭게도 늘씬한 몸매와 잘 꾸민 외모를 갖고 있는 20대 대학생 여자들로 묘사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녀들은 꼭 한 번은 데이트 하고 싶은 아름답고 세련된 신여성이었던 겁니다. 나도 저런 도회적인 세련 된 여성과 팔짱을 낀 채,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그런 부와 여유를 가진 수컷이 되고싶다는 욕망이 그들의 이면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것과는 멀고, 좌절은 으레 그렇듯 분노를 낳습니다.


그 분노를 풀어야는겠는데, 대상이 모호하고, 시장경제 사회에서 누구의 합법적이며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행태를 욕하려니 분노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겁니다. 그렇게 방구석에 처박혀서 키보드로 뒷담화를 까는데, 아직 대놓고 욕을 못 하는 분위기의 게시판에서 "된장", "된장할 년"을 거쳐 마침내 "된장녀"로 탄생하게 된 겁니다.

여우와 신포도였다는 거죠.

그리고, 신포도를 향한 진짜 분노는 사실 포도나무가 아닌, 자신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비루한 현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여자친구는 150원짜리 커피를 좋아하고, 그 년들을 욕한다고 글을 올리면 개념녀라고 칭송을 해주면서. 그럼 된장녀 바람이 불었을 때 스타벅스 커피를 150원짜리 커피처럼 사줄 수 있는 남자들이 그 여자들을 된장녀라고 불렀을까요?

여기서 반전이 등장합니다. 불렀습니다. 실제로 된장녀라고 많이들 불렀습니다. 결국 문제는 그 비싼 커피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남녀 갈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집니다. 과연 여성들이 여성이라 차별을 당하고, 범죄의 대상이 된 걸까요? 그대가 그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라서가 아니라, 권력의 위계에서 그들이 여성을 낮은 곳에 위치한, 자신의 권력으로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대상화 시켜왔기 때문입니다. 이건 남녀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권력의 문제이고, 작년에 벌어진 젠더의 문제는 젠더 문제가 아닌 파워의 문제인 겁니다. 군대에서, 사회에서 보십시오. 남자들이 부대사령관 사모를 어떻게 대하는지, 삼성의 이부진 씨를 어떻게 대하는지.

지금 20대 남자애들이 진짜로 문재인 대통령이 친페미라서, 단지 그 이유로 문재인 지지를 철회하고 있을까요? 저는 이거 백프로 작업이라고 봅니다. 그게 사실이고 기사화 될 근거가 있다면 적어도 갤럽, 리얼미터 급의 회사에서 여론조사를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여론조사를 돌렸다면, 20대 남성인 당신은 무슨 이유로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으신가요? 라고 질문을 했고, 그 보기에 문재인 정부의 친 여성 정책 때문에라는 문장이 있어야 합니다. 지지여부를 묻는데, 저따위 질문을 넣어요? 그럴리도 없고, 그걸 한 놈들은 잡아서 목을 매달아야지.

지금도 언론은 자신들의 파워를 위해 여성을, 그리고 이제는 을의 위치에 있는 남성들까지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비루한 천민들아, 니들이 감히 우리가 만들고 지켜 온 권력의 위계를 파괴하려는 저 문재인이를 지지해? 그냥 닥치고 있어. 마치, 입으로는 위민을 말하면서 끝까지 자기 땅 끌어안고 대동법을 반대했던 송시열 그 비열한 장사치처럼.

어제 쇼트트랙 코치놈이 S선수를 수년 간 폭행하고 강간했다는 폭로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고, 또 비참한 일입니다. 더 비참한 것은 아마도 빙산연맹은 빙신연맹이라는 멸칭 답게 사건을 묻어버릴 거라는 늘 들어맞는 불길한 예상이지요.

문제는 한국 남자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입니다. 15세기 조선의 남자들은 어땠을까요? 근대 수립 이전이니 우하하하 한 손에는 공자, 한 손에는 고기를 들고 채찍으로 여자들을 후드려 패고 다녔을까요? 아닙니다. 양반 관료들도 부인한테 맞고 다녔어요. 진짭니다.

고려 때는 전쟁 후에 불쌍한 부인들이 하도 몽고 놈들 후첩으로 들어가니까 보다 못 한 관료 하나가 왕에게 일부 다처제의 법제화를 건의합니다. 왕은 당연 너님 미침? 을 시전했고, 동료 고위공무원들은 부인이 무서워 따를 시켰으며, 거리에선 여인들이 그에게 돌을 던졌지요.

결국 우리는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90년대에 전화선 위에 수립 되었던 모든 권력과 위계로부터의 해방구, 정략으로 재단되어지지 않은 유가의 이상향을 위해 지치고 힘들어도 같이 걸어가야 합니다. 못생긴 우리 총수가 말 했지요. 디바이디드 앤 룰. 그걸 당하지 않으려면 우선 반성도 필요해요.

한남들, 우리의 잘못은 분명히 있다. 우리부터 반성하고 손을 내밀면 다 같이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다. 지구는 둥그니까. 남자가 가오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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