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적이고 진부한 가족사.

2018.08.22 23:56

아난 조회 수: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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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부모님이 미워 집 나왔다는 글



1년만에 글을 써요. 오늘은 엄마가 밉다는 글이에요.




몇 년 전 엄마 생일. 당시 아빠의 외도로 집안이 풍비박산 난 때였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만 풍비박산. 엄마가 남동생들은 몰라야한다면서 지켰으니까. 매일 밤 나만 붙잡고 온갖 하소연을 했으니까. 아빠는 엄마 생일마저 까먹은 건지, 챙기기 싫은 건지 연락이 없었어요. 남동생1, 남동생2 역시 감감무소식. 독서실 다니는 백수였던 제가 저녁시간 전에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어설프게 미역국도 끓이고 애호박전도 부쳤어요. 초딩 수준의 음식솜씨인데도. 엄마가 결국 오만 짜증을 다 내더라구요. 누가 이런 거 해달라 그랬냐, 너는 왜 몇년 째 공부만 한다고 들어앉아서 사람 구실 못하고 그러고 사냐, 네 사촌언니는 애교가 많아서 부모 사이가 틀어져도 중간에 애교부리고 곧잘 화해하게 한다는데 너는 딸이란 게 왜 그런 것도 하나 못하냐. 밤 늦게 빈 손으로 돌아온 아빠나 동생들한텐 한마디도 안 했어요. 평소보다 더 상냥했어요. 


울면서 애호박전을 부쳤어요. 엄마의 폭언을 들으며. 타거나 덜 익은 것들. 밑간도 하지 않아 싱겁고 또 너무 두꺼워 서걱서걱했던 애호박전. 결국 엄마가 먹긴 했었는지 기억 안 나요. 제 상처에만 집중한 기억이니. 아직도 마트에서 애호박을 안 사요. 볼 때마다 모조리 불살라버리고 싶거든요. 여전히 유효하게 아파요. 마트인데도 눈물이 나서.


맘마미아 원을 엄마랑 극장에서 봤어요. 끝나고 나와 오뎅인가 사먹었어요. 밖에서 엄마랑 뭔가를 사먹는 것 자체가 사치고 특별한 일이니까 행복했어요. 버스비 아낀다고 이수역에서 남현동까지 함께 걸어왔죠. 엄마가 메릴 스트립처럼 슬프더라도 담담하게 당당하게 행동했으면 바랐어요. 제발 아빠랑 이혼했으면. 


아빠가 악이고, 나는 그 구렁텅이에서 엄마를 구해주고 싶었는데. 어린 나는 무력하고. 엄마는 밤마다 울고. 날 붙잡고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하고. 바람 핀 그 아줌마네 자식은 대학을 꽤 잘 갔는데 너는 왜 그 대학을 못 갔냐는 투로 아쉬워하고. 그러면서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아빠를 붙잡고 싶어 몸을 배배 꼬고. 상냥하고 애교많은 딸이 아니라고 날 나무라고.


결국은 다시 둘이 죽고 못 살더라고요. 세상 다정한 부부인 양 구는데 역겨웠어요. 엄마가 미웠어요. 그냥 당당하게 아빠가 좋다고 하면 될 걸, 자식 셋 결혼은 시켜야 이혼하지 내가 너희 생각해서 참는 거야 하며 자식핑계 대고. 외할머니가 첫째 사위 집에 얹혀 살며 어떤 취급 받는지 뻔히 알면서도 아빠한테 잘 보이고 싶으니까 거기에 동참하고. 어서 빨리 외할머니가 새 몸 받았으면 좋겠다면서. 그게 외할머니 한테도 좋다고. 그렇게 좋으면 저나 새 몸 받을 일이지. 아빠는 나한테는 미안할 게 하나도 없다고 했어요. 미안하지 않다고. 그런 아빠보다도 엄마가 더 미워요. 아빠는 이해불가능한 절대악이고, 엄마는 밤마다 나와 그 절대악을 함께 욕하던 사람인데. 변절자처럼 느껴져요. 엄마가 날 배신한 느낌.


맘마미아 투가 나올 줄은 몰랐어요. 벌써 10년이나 된 줄도 몰랐어요. 엄마랑 같이 또 보고 싶어요. 그치만 이번에는 같이 뭘 먹든 옛날 그 오뎅만 못하겠죠. 부딪혀서 아픈 것보단, 그리워서 아픈 게 훨씬 평화롭고 좋아요.


원망할 대상으로 삼기에 부모만큼 만만한 게 없죠. 저는 어디에라도 무엇에라도 화를 내고 싶을 뿐이고, 마침 꽤 잘못한 것도 있는 부모가 거기 적합하게 맞아떨어지는 상황. 얼마나 나이를 먹든 간에 저는 전부 부모 탓이야 앵알거릴 테고, 고집스럽게 떼 쓸 게 눈에 선해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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