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한다는 카피와, 배우의 표정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꼭 보고 싶었어요.

 보고 나니, 예상보다 더 많은 내용을 보게 된 거 같고, 비슷한 재료의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부턴 내용 관련 언급)



 카피를 보고 짐작한 내용은 아동 학대를 하는 못돼먹은 부모를 고발하는 내용인가 보군! 이었는데, 영화는 그 부모 개인을 고발하고 폭력 가정에서 아이를 구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 외에 그를 힘들게 만드는 여러 조건들, 그리고 그 조건들을 만든 조건들..?까지도 영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담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세상이 문제다, 사회 구조가 문제다' 뭐 이런 식의 뻔한 얘기 같아지지만... 이 작품이 저보다 백만 배 훌륭한 것은, 이것들을 영화 속에서 인물과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해놓았다는 점이겠죠.

 그중 한 예로, 주인공 '자인'이 겪는 일을 보여줌과 함께, 자인이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적지 않게 나옵니다. 가난한 삶과 아이들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부모의 얼굴이 종종 나오고요. 이 '어린이'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참 많지만, 그들이 성격이 못돼 처먹은 사람들이거나 도덕관념을 갖다 버린 악마라서가 아니에요. 흔한 표현처럼 가난이 죄고,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알고 배우고 자라난 탓이고, 각자가 서로를 구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로 적당한 대가를 주고받는 걸 살아가는 법으로 알고 사는 거죠. 누구의 삶을 더 감당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데, 유일하게 그걸 넘나드는 인물이 바로 '자인'과 '하릴'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이들이 남들보다 더 고통받는 이유겠죠.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선 듀나 님 평을 읽고 무릎을 탁 쳤어요. 영화가 소년의 비극적 삶을 다루는데, 희한하게 좀 따스한 느낌이 있거든요. 



(여기서부턴 직접적인 내용 언급)


1. 

무책임하게 자식을 대하는 부모 때문에 집을 나왔는데,

조건 때문에 자식을 팔아넘기는 부모를 경멸했는데,

자신이 그와 다를 바 없는 처지에 처하게 되는 이야기가 마음 아프기도 하고, 참 기구해요.



 2.

인상깊은 장면들이 있었어요. 


2-1. 자인이 교도소에 가게 된 사건을 그리는 시퀀스. 보통의 영화가 반드시 담을 '핵심' 장면을 전혀 담지 않고도 그 일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칼을 들고나가고, 뛰어가고, 말리는 사람들이 쫓아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쳐다보고, 쳐다보고, 쳐다보고, ...그리고 이어서 경찰서입니다.

 i) 그러니까, 저 '쳐다보고'의 다음은 대개, 목적지에 도착 -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칼 든 아이를 본 상대방의 놀란 얼굴 - 회심의 일격... (-_-) 뭐 이런 것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쳐다보고, 쳐다보고, 쳐다보고, 쳐다보고' 라니요. 

 ii) '쳐다보고'들의 처음은 그곳으로 뛰어가는 자인을 보는 것, 나중의 '쳐다보고'는 행위를 마친 후 경찰에 연행되는 걸 보는 것, 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떤 장면을 담고, 안 담고에서 창작자, 연출자의 태도가 드러나잖아요. 그래서 전 이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심지어 시퀀스의 마무리인 경찰서에 끌려들어 올 때도, 자인의 얼굴과 옷에 묻은 피는 (시뻘겋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슥슥 지워지고 난 다음이에요.


2-2. 하릴이 마음 아프게 모유를 버리는 장면. 자세히 쓰는 게 영화의 좋은 점을 해칠 것 같아서 풀어쓰진 않아야겠어요.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만을 명확히 담은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2-3. 마을의 지붕들을 부감으로 담는 장면에서 '아, 이런 삶이 한둘이 아니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데, 카메라가 이내 더 멀리 뒤로 빠져서, 내가 방금 '아 많구나'라고 인지했다고 생각한 것도, 실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부끄러움이 들어요.


2-4. 마지막에 라힐과 요나스의 재회 장면도, 1-1.과 '느낌'이 비슷한데,  자질구레한 것에 치중해서 삐져나가지 않고, 전체적 큰 의미를 담은 시퀀스 '안에' 들어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적당함이 참 좋더라구요.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과하지도, 처리해야 할 에필로그처럼 가볍게 다뤄지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3.

마지막 장면 어떠셨나요.


이 날이 어느 날인지, 씬의 시작에선 알 수 없잖아요. 대사를 듣고서야, 자인이 입은 단정한 노란색 옷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늘 쳐져 있던 그 입꼬리가 단번에, 너무나 단번에 챡, 뒤집어지듯 올라가는데, 분명 주인공이 웃으며 끝나면 해피엔딩인데 왜 마음이 짠하죠ㅎㅎ 이렇게 쉬운 일인데, 이 인물을 웃음 짓게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데 그게 주어지지 않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웃음이 크고 멋진데.



4.

TV 생방송 전화 연결 연설은 다른 장면들에 비해 조금 장황하든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의 말이라기보다는 감독의 주장이 갑자기 말로 막 설명되고 있다는 느낌. 그런데 혹시 번역의 문제로, '어른의 언어를 차용하는 어린이의 문장'이 자막으로 잘 구현되기 어려웠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5.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이야기를 할래요.


하릴이 케익을 가져와 자인이 초를 훅 불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우린 여기서 처음으로 자인의 웃음을 희미하게나마 보게 되잖아요. :)

짐작건대 아마도 이 인물의 인생에서도 이런 생일 놀이는 처음이었겠죠.


이어서 여동생 사하르에 대해 하는 이야기. i) 자인은 그렇게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ii) 타인에게 여동생을 소개하면서, '걔는 ~~한 사람'이라고 하면 상대방에게 '걔'는 말 그래도 '~~한 사람'이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소개함으로써, 여전히 동생을 지켜준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하릴의 반응. 눈앞의 이 어린아이의 여러 정황상, 그리고 자신의 경험상, 저 말이 거짓말일 것이 짐작됨에도 불구하고, 캐묻지 않고 응수해주는 눈빛도 참 고맙고 따뜻했고요.


어쩌면 이 순간에 처음으로, 자인이 그런 상상을 해봤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니까, 현실을 이겨내는 상상을 하려면, 

최소한의 달콤함은 주어져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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