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죠



 - 그렇습니다. 그 전설의 '존 카펜터의 할로윈'인 것인데요. 1편의 강력한 아우라에 비해 속편들이 거의 다 비리비리 평범한 B급 영화들이라서 존재감은 없지만 이 영화 이전까지 이 시리즈의 갯수는 무려 열 편입니다. 1편을 빼도 아홉편이죠. 리메이크 두 편을 빼고 속편만 세어도 일곱편.

 여기에 2018 버전 할로윈의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1편에서 바로 이어지는 속편이며 동시에 지난 일곱개의 속편을 몽땅 다 없었던 일로 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쿨하게 와장창 다 흑역사로 밀어 넣어 버리고 1편만 정사로 인정해요.

 그러니까 진짜 '빠돌이'의 태도로 만든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할로윈 시리즈? 그건 1편이 진짜고 다른 건 다 짭이야. 인정할 수 없음!!


 그래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우리의 마이클 마이어스씨는 1편의 그 사건 후로 쭉 정신병원에 갖혀 있었습니다. 무려 40년의 세월 동안 말을 그냥 한 마디도 안 하고 여가 시간엔 정신병원 운동장 가운데 서서 멍때리고 있었다나봐요. 생존자 로리는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열심히 살아 봤지만 그 날의 기억을 극복하지 못 해서 모두 다 망쳐버렸고 결국 혼자가 되어 언젠가 풀려날 마이클을 자기 손으로 직접 죽여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자기 집을 요새화하고 사냥 기술을 연마하며 살아갑니다. 49년 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이슨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게 되고... 뭐 당연히 탈출하겠고 살인 잔치가 벌어지고 하겠죠.



 - 시작할 때 뜨는 제작사 로고를 보고 피식 웃었습니다. 또 블룸 하우스야? 요새 헐리웃 호러 영화는 여기서만 만드나.

 감독인 데이빗 고든 그린은 주로 코미디나 드라마를 만들던 사람입니다. 호러 영화는 사실상 거의 처음에 가깝고 그동안 찍은 영화들 중 가장 유명한 거라면 파인애플 익스프레스(...) 그런 것 치고는 호러에 꽤 익숙한 사람인 것처럼 매끈하게 만들긴 했어요. 호불호는 크게 갈릴 것 같습니다만.



 - 이걸 뭐라고 해야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설명이 될지 모르겠는데. 대략 '조상님에게 경의를 바치는 요즘 슬래셔 무비'라는 느낌입니다.

 오리지널의 요소를 훼손하지 않고 살려 보려 애쓰는 느낌은 드는데 결국엔 오리지널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요즘 영화라는 느낌인 거죠.

 사실 원작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그대로 살려서 영화를 만들어 버리는 건 좀 곤란합니다. 제가 대략 2년쯤 전에 1편을 다시 봤는데 뭐랄까... 여전히 재밌고 인상적이긴 하지만 요즘 기준으로는 너무 소박(?)하거든요. 죽는 사람도 몇 명 없고 폭력이나 액션 장면도 자극이 약하구요. 이 작품으로 확립된 슬래셔의 공식들이 이후로 수천번 반복되고 발전되었다 보니 지금 와서 보면 이야기도 임팩트는 없어요. 이제 40년이나 흘렀는데 업데이트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겠죠.


 그래도 주로 원작을 오마주하고 찬양하는 톤으로 흘러가는 (2018 버전) 이야기 초반에는 원작 분위기가 좀 나는데, 마지막 결전 장면으로 가면 정말 21세기 호러 영화 느낌이 격하게 밀려와서 좀 위화감이 듭니다. 그리고 이 부분 때문에 이 영화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구요.


 이렇게 적어 놓으니 전혀 감이 안 오는데, 그러니까 원작보다 사람도 많이 죽고 고어의 강도도 강합니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선 소소한 드립과 아이디어들, 그리고 반전으로 양념을 팍팍 쳐주고요. 요즘 세대 감각으로 보기엔 이 쪽이 원작보다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만큼 원작의 아우라를 좀 많이 깎아 먹는 평범하게 재밌는 호러 영화였습니다.



 -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영화는 (물론 '할로윈' 빼구요) 쌩뚱맞게도 터미네이터2였습니다.

 일단 로리의 캐릭터가 터미네이터2의 사라 코너랑 거의 똑같아요. 다가올 절망적 미래를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놈 취급 받구요. 사람 없는 곳에서은둔하면서 결전의 날을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고 또 자기 자식들에게도 같은 걸 가르치려 하죠. 심지어 옷차림, 머리 모양도 비슷하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닮은 곳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마이클 마이어스는 움직임이나 맷집이나 정말로 터미네이터 느낌이라... ㅋㅋㅋ



 - 사실 단점이 많습니다. 

 일단 이야기의 개연성이 팍팍 떨어지는 허술한 장면들이 되게 많아요. 초반 마이클의 버스 탈출 장면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린 건 캐릭터의 간지를 위한 선택이었던 셈 치더라도 이후의 이야기 전개가 너무 아무 설명 없이 툭 툭 건너 뛰는 부분이 많아서 맥이 빠집니다. 

 캐릭터들이 쓸 데 없이 많은데 그 중 거의 전부가 마이클의 칼질 연습용 표적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하는 일 없이 괜히 등장해서 자기소개 해놓고 바로 퇴장들 해버리기 바빠서 이럴 거면 그냥 엑스트라로 처리하는 게 차라리 덜 산만하지 않았을까 싶고.

 마이클찡을 제외해도 주인공이 2명인 것 같은 전개인데, 둘의 비중 처리가 애매하고 각각 별다른 드라마가 부여되질 않아서 그냥 산만한 느낌이었습니다.



 - 그래서 제 소감은요... 그냥저냥 시간 죽이기 괜찮은 슬래셔 무비입니다. 다만 '그 전설의 마이클 마이어스!, 그 전설의 스크림퀸 로리!!!' 없이 오리지널 영화로 나왔더라면... 아마 애초에 볼 생각도 안 들었겠지만 봤어도 그냥 그랬을 것 같아요. 아직 1편도 안 보신 분이라면 그걸 찾아보시는 편이 호러 역사 공부도 되고 어디 가서 잘난 척(...)도 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유익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그냥 팬들만 보셔도. ㅋㅋ



 - 초반에 동네 청년이 실실 웃으며 '마이클 뭐시기 그거 뭐 그 당시에나 대단한 사건이었지 요즘 기준으로 보면 별 것도 아니라구?'라는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어서 쟤는 꼭 죽겠구나 싶었는데...



 - 참으로 요즘 헐리웃 영화답게 폼나고 중요하고 긍정적인 역할은 여자 캐릭터들이 다 하고 남자 캐릭터들은 그냥 진상 부리거나 똥폼 잡다 죽느라 바쁩니다. 그래도 뭐 어차피 이건 마이클의 영화이고 마이클은 남자니까... ㅋㅋㅋ



 - 아까 처음에 1편 이외의 모든 시리즈를 개무시하고 만들어진 영화라는 식으로 적었는데, 엄밀히 말해 다른 시리즈를 무시하진 않아요 그냥 흑역사로 만들어 놓았을 뿐이지. 무슨 얘기냐면, 전반적으로 할로윈 1편의 오마주격 영화인 가운데 속편들의 장면들도 짧게짧게 오마주 해주는 부분이 많아요. 속편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겠죠.



 - 3부작으로 기획되어 있습니다. 내년에 2편, 내후년에 3편까지 만들어 내놓고 '영원히 종결' 시킬 거라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죠. 일단 전 안 믿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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