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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자전거 여행을 하다 시골 어느 외딴 곳에서 미친 놈을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어떤 이유도 인과관계도 없이 돌을 들고 날 향해 돌진하던 그 희멀건 눈동자를 본 이후로 난 이성을 상실한 존재에 대해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한 여학생이 어느 대학교에서 표창장을 받았다.

이름 없는 지방 사립대 교수이던 엄마의 권유(내가 볼땐 부탁같다)로 최고 학벌 대학원생인 학생은 대학교 봉사프로그램에 참석해서 며칠동안 열심히 봉사했고 그 시골에 내려와 숙식까지 혼자 해결하며 열심히 봉사한 것에 감동한 교수들이 표창장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쪽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있다. 

그는 평소 법 운영과 고위층 부정부패 척결에 뚜렷한 소신이 있고 청와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런 소신을 밝혀왔다.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게 이명박 정권때였으니 이제 꽤 시간이 되었고 새 정권의 민정수석 자리에 올라 거진 3년을 일했으니 그의 과거행적이나 업무 능력 모두 충분히 검증할 시간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후보에게 아무리 털어도 털게 없다는 걸 아는 야당과 언론이란 것들은 일찌감치 가족들을 털어댔다. 뭔가 있을 거다, 뭔가 있을 거다, 그걸 엮으면 어떻게든 될 거다는 주문을 외우면서 조국과 연관만 있으면 누구든지 쑤시고 들어갔다. 동생의 전처가 나오고 5촌조카가 나오고  온갖 굵직한 의혹처럼 보이던 것들이 한달도 안되어서 딸의 부정입학만 남았고 그것도 종국에는 표창장 한장만 남았다.

마치 나라 망할 것처럼 쏟아진 수백만건 기사와 정치적 논란의 끝이 결국 표창장 한장이라는 사실은 세계 11위 국가의대통령과 시총 300조가 넘는 세계 최대의 전자회사 회장(다들 그가 진짜 회장임을 잘 알고 있다)을 동시에 감옥으로 쳐넣었던 모든 일의 시작이 고작 친구 딸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말 세마리였다는 사실처럼 허탈하고 낮부끄럽다. 

서울대 교수에 논문최다 인용의 최고 학자가 딸에게 표창장을 주려고 이름도 생소한 대학의 표창장 위조를 공모했을 것이다라는 의혹이 이들의 최종 병기라는 현실앞에서 난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모욕감.

압도적인 모욕감.

이것들이 나를 방사능 원숭이 조팝으로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웅동학원이니 사모펀드니 부동산 투기니 부정입학이니 이런 초반의 정말 나라 뒤집어 놓을 듯 엄청난 부정부패가 있었을 거라는 그런 의혹들이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밀당을 하고 당내 분란까지 일으켰던 그 대단한 청문회의 하루 전 바로 지금 내놓는 게 표창장 한장이라는 얘기다.

11시간동안 300명의 기자를 모아 놓고도 위에 열거한 의혹을 하나도 증명하지 못한 것들이 나한테는 다른 부정은 몰라도 사문서를 위조해서 딸에게 표창장을 주도록 했을 거라는 의혹만큼은 믿으라고 한다. 

유치원생들도 만원짜리 세뱃돈을 500원으로 바꿔 준다는 말은 못받아들인다.

개 돼지도 사료를 후진 걸로 바꾸면 고개를 돌린다.

이것들은 지금 개도 안물어갈 논리를 들이대며 나보고 믿으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지금 나를 유치원생보다도, 아니 개돼지도 못한 놈이라고 전제하고 윽박을 지른다.

 

국회의원이라는 것, 조중동 기자라는 것, 뉴스 아나운서라는 것, 모두 엄청나게 공부를 하고 어마무시한 경쟁을 뚫고, 대단한 능력치를 입증해야 그 직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들 대단하고 자부심 충만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뒷골목 양아치, 주점 주정뱅이보다도 못한 억지를 부리며 나보고 믿으라고한다. 안믿으면 좌빨이고 대깨문이고 달창이고 노사모고 종북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능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든다. 

하지만 그런 회의를 비웃듯 이제 검사들까지 등장한다.

 

검찰압수수색.

하아, 대기업 회장들이 수천억 비자금을 조성하고 뇌물을 주고 받아도 왠만해선 하지 않는 짓거리를 한 여학생의 표창장 기사가 나온 다음날 해치운다. 언론은 굵직한 헤드라인으로 검찰수사 박차! 조국 정조준! 이라고 도배를 한다. 이 시점에서 이 나라 법치의 중추에 있다는 기관이 촌각을 다투며 한다는 일이 한 여학생에게 표창장을 준 대학 압수수색과 총장 심문이다. 문과 최고 능력자라는 검사들이 하는 일이다. 이쯤되면 인간의 능력, 실력이라는 잣대가 얼마나 공허하고 기만적인 신화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희들은 개돼지다.

조국보다도 못한 너희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어떤 정의로운 짓거리도 시도할 수 없다.

정의로운 척 할 수는 있어도 주제 넘은 짓 하면 진짜 조때는 수 있다.

네 성적표, 표창장, 통장 거래 내역, 문자, 호적등본 다 까발려 볼까?

네 과거, 네가 했던 모든 짓, 네가 했던 모든 말, 네 생각, 네 관계 다 하늘을 우러러 떳떳하다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먹고 사는 일만 충실히 해. 정치같은 것, 정의로운 사회, 공평한 과정 이런 주제 넘은 걸로 자부심 느낄 생각 하지 마.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 너희들은 뭘 해도 모르는 거고 잘못 아는 거야.

이 사회의 이른바 지도층이라는 것들이 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때 촛불이 아니라 단두대를 세워야 했어.

땅바닥을 구르는 박근혜와 이명박의 대가리, 조중동 사주의 대가리들을 봤어야 서늘하게 가로지르는 등줄기 땀방울과 함께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위라는 게 바로 국민에게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텐데...  

하지만 폭력은 폭력을 낳고, 이익은 정의보다 빠르지만, 그래도 최후의 승자는 정의 일거라는 역사의 믿음 때문에 4000만분의 1의 존재로서 할 수 있는게 고작 버티고 또 버티며  뉴스란 이름의 주술을 목도하는 것. 그 현실이 슬프고 괴롭다.

 

산발한 광녀의 머리카락처럼 사방으로 휘몰아치던 비가 좀 멈췄다.

폭우처럼 쏟아지던 기사란 이름의 주술도 내일쯤은 좀 개일려나.

 

마지막 지점까지 왔다.

내일 조국 후보가 잘 버텨주기만 바랄 뿐이다.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러니까 분명히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존재들이 자신과 가족을 향해 달려드는 걸 한달 넘게 목도한다는 것은 분명 제정신으로 감당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라를 위해서, 거기 살고 있는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니까 그래도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은 결국 법치라는, 그 법치에 기대어 우리 같은 힘도 돈도 없는 이들도 인간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는 거라는, 그 보잘 것 없고 우스운 신념을 위해서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그 믿음이 그가 평생을 바친 연구 주제였으니까. 

그래서 다른 이도 아닌 그가 이 현실 가운데 서 있는 것이니까. 

그게 어쩌면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운명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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