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불안

2019.10.08 05:28

어디로갈까 조회 수:904

1. 누군가 제게 상처를 주는데도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때, 그 이해에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괴로움의 얽힘이 생겨납니다. 깊고 캄캄한 틈이 발 밑에 열리는 것 같죠.
이 나이쯤 되니까 상처 자체는 별반 고통으로 작용하지 않는데, 그들에 대한 제 이해가 때로 몹시 벅찹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살 것 같았던, 그런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러므로 잘 살고 있는 셈이죠. 아무렴 그렇고말고요~ 

2. 협화음 보다 멋진 것은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으로의 이행이에요. 그 과정에서 만나는 새로운 시야와 긴장의 해소가 마음을 잡아줍니다.
그런데 모든 불협화음이 다 그런 선물을 주는 것은 아니죠. 협화음을 필연적으로 추동하는 그런 불협화음이어야 해요.
아, 어쩌면 모든 불협화음 속에는 협화음으로 통하는 복도가 열려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어두운 단상일까요, 밝은 단상일까요.

3. 사람들이 닮은 것을 사랑하는지, 혹은 닮지 않은 것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물론 이런 의문은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것이죠.
사랑하기 위해선 닮지 않았음의 이격離隔이 필요하고, 다시 한번, 사랑하기 위해선 당신을 알겠다는 동일同一이 필요한 것이니까요.
그러니 '사랑해줘'라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든 있는 거죠. 왜냐하면 '넌 나이니까.' 왜냐하면 '넌 내가 아니니까.'

4. 퇴근길, 심란한 마음을 무시할 겸 필요한 문구류들이 있어서 대형서점엘 들렀습니다. 간김에 영화/미술 코너를 구경하고 있는데 어떤 파파할머니가  말을 건네왔어요.
"아가씨,  내가 이 나이에 연필스케치를 배우고 있어요. 도움이 될만한 책 좀 골라줄 수 있어요?"
얼굴에만 살짝 부기가 있을 뿐, 목소리도 카랑카랑 생기있고, 돋보기 없이도 글자들을 다 읽으시더군요. 건강해보이셨어요. 몇권 권해드렸더니 고맙다며 활짝 웃으시는데, 누군가의 이 글이 떠올랐습니다. "가장 깊은 것이 가장 맑은 것이다." (폴 발레리였나?)

5. 갑자기 책상에서 물러나, 현관문을 열고 어딘가로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 캄캄한 새벽이라 갈 곳이 없어요.  
5분 가량의 무작정 가출본능이 막무가내로 물결칩니다. 4분 분량의 궁리가, 3분 분량의 심호흡이, 2분 분량의 포기가, 1분 분량의 침묵이 지나갑니다. 자리에서 일어서,  뒤로 돌아...... 커피 한 잔을 만들어왔습니다. -_-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282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09415
110854 저도 등업 했습니다~ [8] 정우 2019.10.27 370
110853 최근 다이어리 꾸미기에 빠져 있습니다. [1] 스위트블랙 2019.10.27 452
110852 폼롤러를 사려고 하는데요+몇 가지 구매 잡담 [4] 2019.10.27 658
110851 원신연 감독은 정말 동강할미꽃을 멸종시켰을까 [2] 보들이 2019.10.27 935
110850 등업 인사 글 - 영화이야기 조금 [8] 예정수 2019.10.27 529
110849 이런저런 일기...(레이싱대회, 새벽) [1] 안유미 2019.10.27 360
110848 저도 등업했습니다 [7] 히미즈 2019.10.27 375
110847 [듀9] 정말 재밌는 글 쓰시던 글리의 남주 코리 몬티스랑 구스털 베개를 좋아하시던 분 [5] 그리워영 2019.10.26 864
110846 다시 보니 더 재미있었던 곡성, 봉오동 전투 [11] 보들이 2019.10.26 809
110845 [채널CGV영화] 공작 [3] underground 2019.10.26 299
110844 신 희극지왕. 주성치 사랑해요 [6] 보들이 2019.10.26 900
110843 고양이 사무라이 시즌1, 2 극장판 1, 2편 주행 완료 보들이 2019.10.26 336
110842 [넷플릭스바낭] 독일 드라마 '다크' 시즌2까지 완료했습니다 [10] 로이배티 2019.10.26 1077
110841 믿고 보는 시사인의 기획기사 시리즈 <빈집>을 추천합니다 [14] ssoboo 2019.10.26 1418
110840 *경* 탕탕절 40주년 *축* (냉무) [3] 타락씨 2019.10.26 651
110839 [KBS1 한국영화100년더클래식] 휴일 [EBS1 영화] 미시시피 버닝 [3] underground 2019.10.25 357
110838 여러가지 [9] 겨자 2019.10.25 993
110837 불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예매실패 두번째;;; [3] ally 2019.10.25 1368
110836 오늘의 80년대 배우들 사진 [2]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10.25 495
110835 내 입맛에 맞는 뉴스만 보는, 그걸 부추기는 시대 [18] madhatter 2019.10.25 122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