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온라인 개학과 직장 풍경

2020.04.20 21:11

로이배티 조회 수:1244

 - 참고로 별로 재미(?)는 없습니다. 왜냐면 생각 외로 너무 멀쩡하게 정착 중이어서요.



 - 이제 온라인 수업을 3일 밖에 안 했어요. 근데 생각 외로 교사들은 넘나 빨리 적응 중이고 학생들도 그래 '보입니다'.

 저만 해도 첫 날엔 실시간 화상 회의로 수업을 한다는 게 되게 민망하고 어색하고 그랬는데 이젠 그냥 애들이 앞에 있는 양 드립도 치고 말도 걸면서 수업 하구요. 애들은 또 의외로 호응을 잘 해 줘요. 아마 학교 특성(원래 이 학교 오는 애들이 되게 80년대스럽게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이 클 것 같지만 다른 학교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진 않네요.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봅니다.


 다만 실시간으로 학생들 상태를 세세하게 체크하기 힘들다 보니 의도적으로 진도는 천천히 나갑니다. 사실 한창 수업 진행 중에는 한 두 놈 정도 딴짓 하거나 자리를 비우거나 심지어 접속이 끊겨도 바로바로 확인이 힘들어요. =ㅅ=



 - 일단 피곤한 건 아침 1교시입니다. 아무래도 애들 접속에 시간이 걸려서 수업 시간을 많이 까먹죠. 안 들어 온 애들을 참가자 리스트와 반 명렬표를 대조하며 찾아내다가 결국 찾아서 전화를 걸고 있으면 그 사이에 접속 해버리고. 다른 놈을 찾아서 전화 걸면 전화는 그냥 응답 거부해 버린 후에 접속하고. 뭐 이러면서 한 10분은 까먹죠. 그래도 결국엔 다 접속을 하더라구요. 가정 형편상 시설에서 생활하는 녀석들도 있는데 빠짐 없이 접속을 해주니 수업 태도 같은 걸로 투덜거릴 생각이 안 드네요. 그렇게 태도가 나쁘지도 않구요. 정말 솔직히 말하면 교실에 와서 수업 들을 때랑 큰 차이가 없는 느낌(...)



 - 다만 가끔 카메라에 본인이 안 비치게 하려는 녀석들이 있어요. 비디오를 꺼놓고 버티다가 몇 번을 부르니까 켜긴 켰는데 천장만 보이고. 니가 있는 거 확인 시켜달라니까 그냥 카메라를 좌우로 흔듭니다. ㅋㅋㅋ 그래서 '보이게 해달라고!!' 라고 재촉을 하니 스윽 내려서 원경(...)으로 본인 이마랑 눈까지만 보이게 아주 열심히 조정을 합니다. 그래서 그걸로 그냥 만족하고 수업 했죠.

 또 다른 녀석은 계속 카메라를 열정적으로 피하길래 '출석 체크 때문에 어쩔 수 없으니 얼굴 좀 보여줘!!'라고 했더니 '제가 오늘 얼굴에 엄청 큰 뾰루지가 나서요!!! ㅠㅜ' 라길래 걍 알았다 그랬습니다. 사실은 '니 얼굴 아무도 안 보니까 신경 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제가 어찌 소녀의 심정을... ㅋㅋㅋ



 - 근데 사실 저희 학교는 '줌'을 씁니다. 네. 보안 문제로 전세계에서 멀리하는 분위기라는 그 '줌'이요.

 실시간 수업을 하려다 보니 선택지가 몇 개 없었는데, 구글이랑 마소 물건을 쓰려면 돈이 들어서요. 보니깐 서울에선 서울 교육청에서 '돈 대 줄 테니 구글이나 마소 꺼 쓰려면 말만 해라'라고 그랬다던데 경기도는 돈이 없나봅니다. 슬프네요.



 - 매 시간 학생들을 접속시켜야 하는데 애들은 폰을 쓰는 경우가 많고. 이 수업 저 수업 옮겨다니며 접속하려면 힘들 것 같아서 성실한 동료분들이 반별 시간표 모양으로 QR 코드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애들은 요일과 교시만 확인해서 QR코드를 찍으면 접속이 됩니다. 물론 PC로 접속하는 학생들을 위해 하이퍼링크로도 만들어서 돌렸죠. 대한민국 교사들 생각보다 성실합니다. 물론 저는 말구요. 그런 분들이 있다구요. ㅋㅋ



 - 어디 가서 욕 먹을 소리지만 사실 교사들 입장에선, 대략 온라인 수업에 적응한 사람들의 경우엔, 특히 담임 교사들의 경우엔 솔직히 지금이 편합니다. 왜냐면 학생들이 학교에 안 오잖아요. 생활 태도 갖고 잔소리할 일도 없고 싸운 애들 붙들고 고뇌할 필요도 없고 학급 청소 시간에 도망다니는 애들 잡으러 다닐 필요도 없죠. 그래서 온라인 수업 초기엔 "얼른 개학해서 애들 학교 나왔으면 좋겠다!!!"는 게 중론이었는데 슬슬 분위기가... 하하하.

 근데 문제는 평가죠. 뒤바뀐 학사 일정에 맞춰 6월달에 평가를 치르는 걸로 잡아 놨는데, 그렇게 하려면 5월 초순에서 늦어도 중순에는 오프라인 리얼월드 등교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뭐 사실은 1차 지필 평가를 없애 버리면 됩니다만 그래도 수행 평가가 있으니 더 미뤄지는 건 좀 부담스럽거든요.

 지금 보니 5월 6일 등교 이야기가 솔솔 나오는 것 같던데. 뭐 두고 봐야겠죠. 


 참고로 대부분의 학교가 여름 방학 시작을 8월 중순에 하게 될 겁니다. 기간은 2주. 올 여름 각 가정의 휴가 계획에 애로사항이 꽃을 피울 것 같은데... 어차피 이 시국에 어디 놀러가기도 힘드니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되면 관광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엄...


 그리고 뭣보다 지금 시국은 학부모들에게 큰 스트레스겠죠. 직장 교사들 중에도 당연히 학부모들이 많은데 한숨을 푹푹 쉽니다.



 - 매 시간마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수업 듣는 녀석이 있습니다. ㅋㅋㅋㅋ 뭐 그 고양이가 수업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매 시간 풀메이크업으로 앉아 있는 녀석도 있죠. 역시 그러려니 합니다만 어차피 아침부터 오후까지 시간표 맞춰 수업 들어야 하는데 그 전에 미리 메이크업을 마치는 정성이라니... 라는 생각에 좀 감탄스럽기도 하네요. 학교 나올 땐 참아줘

 어떤 학생은 엄마가 옆에 함께 앉아 있기도 하고. (넘나 부담스러운 것!!) 어떤 학생은 수업 내내 진수성찬 간식을 옆에 두고 맛있게 먹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동생이 난입해 '리락쿠마 내놔~~~!!!!!!' 라고 소리 지르고 도망가기도 하구요. 뭐... 재밌습니다. ㅋㅋㅋ



 - 며칠 전엔 학교 현관에 열화상 카메라가 설치됐어요!!! 우와 이런 거 실물을 보다니 신난다!!! 입니다만.

 화면에 지나가는 사람들 체온이 표시되긴 하는데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입니다. 그래서 그냥 결국 체온계로 체온 재고 들어와요.

 그럼 이건 뭐죠. 500만원짜리 간지템이란 말인가. ㄷㄷㄷ



 - 사소한 부분이지만 교사들이 좀 난처한 게 뭐냐면... 밥입니다. 급식소 운영을 안 하니 밥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데 시국이 시국이니 배달 음식은 자제하라고 눈치를 주셔서 결국 도시락을 싸와야 하죠. 대부분 걍 마켓 컬리 같은 데서 주문한 도시락 같은 걸 하루에 하나씩 들고 와서 렌지에 덥혀 먹는데. 몇몇 분들은 집에 있는 반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모여 앉아 나들이 기분으로 드시는 분들도 있구요. 또 어떤 사람들은 이참에 다이어트나 하겠다고 집에서 삶은 계란과 푸성귀들을 싸들고 와서 먹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직장의 경우엔 이 다이어트파들이 많아서 교사들이 날씬해지고 있네요.


 사실 저도 2월달에 '딱 개학 할 때까지만 할 거야!' 라고 맘 먹었던 다이어트가 어느새 세 달을 향해 가고 있고, 이제 감량 10kg을 돌파했습니다. 이러다 자칫하면 20대 때 체중까지 내려갈지도 모르겠지만... 요 며칠간 자꾸 '오늘 피곤해 보이시네요' 라는 말을 듣는 걸 보면 살을 그만 빼야할 것 같기도 해요. 진짜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살이 빠지면서 -> 관리 안 하고 대충 살았던 피부가 늘어지고 -> 예전보다 늙어보임. 의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의미라서... ㅠㅜ 그러니 여러분. 다이어트는 젊을 때 하고 나이 먹으면 조금씩 살을 찌우세요. 그게 중장년 동안의 비결입니다. ㅋㅋ



 - 암튼 뭔가 큰 일이 생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대한민국 교사들은 생각보다(?) 유능하고 성실한 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도 언론에서 풍문으로 떠드는 것과 달리 생각보다(??) 착실하고 성실해요. 이런 괴이한 시국이 아니어도 교사나 학생들이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경험해 볼만한 여건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저답지 않게 건설적인 생각을 해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 하지만 출근은 하기 싫군요. 놀고 싶습니다. 다시 휴업을 달라!!!! 방학 2주가 웬 말이냐!!!! ㅠㅜ



 + 여담이지만 제 아들놈이 오늘 온라인 개학을 했습니다. 올해 갓초딩이거든요. 다들 아시다시피 초등학교 1, 2학년은 집에서 교과서 들고 EBS를 봅니다. 오전에 4교시를 하고 수업 하나당 30분씩이더군요. 퇴근해서 소감을 물어보니 '피곤하고 졸려요'라고 하네요. ㅋㅋㅋ 이놈아 그래도 학교 가는 것보단 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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