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가시, 집착)

2018.06.03 15:09

여은성 조회 수:590


 1.손에 가시가 박혔어요. 가시는 사실 관용적인 표현이고 아주 짧은 머리카락일 수도 있어 보였어요.


 한데 너무 짧아서 도저히 뺄 수도 없고 계속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파고들어간 후 새 살이 돋아서 완전히 묻혀 버렸어요.



 2.이걸 그냥 놔둘까...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손톱깎이를 꺼내서 살을 째기 시작했어요. 이젠 정말로 안에 파고 들어가버려서, 그 부분을 꽉 압박해서 하얗게 만들어야 저 안에 간신히 보이는 정도였어요. 겉살을 들어내고 속살을 째기 시작하자 진짜 아팠어요. 그렇게 몇 시간쯤 살을 째고 있자니 브레이킹 배드에서 월터가 하루종일 파리를 잡으려는 에피소드가 떠올랐어요. 아무것도 아닌 집착을 뭐하러 하고 있나...싶었지만 문제는 살을 이미 너무 많이 째버린 거예요. 


 이제는 반드시 가시를 빼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지금까지 날린 시간과 생살을 매몰비용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요.



 3.이건 요즘 하는 모바일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모바일 게임이란 건...말도 안 되는 거예요. GTA5같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마스터피스급 게임도 7~8만원이면 살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 게임의 100%를 온전히 즐길 수 있죠. 


 한데 모바일 게임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캐릭터 하나...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데이터 쪼가리 하나 뽑는데, 수학적으로 50만원이라고요. 50만원에 5성 캐릭터 1명...이라는 기대값이죠. 5성 캐릭터 중에서 또 한번 원하는 캐릭터가 나와 줘야 하고요.


 문제는, 인간들은 그렇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50만원에 뽑는 캐릭터를 나는 몇만원이면 뽑을 수 있어...나는 운이 좋으니까...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수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가챠를 사서 돌리기 시작하면 수학은 이 우주에서 절대적인 규칙이라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물론 수학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50만원에 뽑는 캐릭터가 2만원만에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다른 사람들이 50만원에 뽑는 캐릭터가 500만원을 써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확률의 신의 시점에서는 어느 쪽이든 똑같거든요. 양 극단의 확률이라는 점에서요.



 4.휴.



 5.여기서 제일 큰 문제는, 50만원을 써 놓고 그 캐릭터가 안 나왔을 때예요. 이미 거기까지 와버린 사람이라면 쿨하게 '데헷~50만원 썼는데 흑잔느가 안 나왔네?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라고 할 수 없거든요. 왜냐면 그랬다간 그 50만원은 완벽히 매몰비용이 되어버리는 거니까요.


 매몰비용 따위보다 더욱 화가 나는 부분은 이거예요. 내 옆을 지나가는, 페이트에 50만원을 안 쓴 사람과 페이트에 50만원을 쓴 내가 똑같은 처지라는 거죠. 말 그대로 50만원짜리 도박을 했는데 아무것도 손에 넣은 게 없다면? 그건 도박을 처음부터 안 한 사람과 같다는 거잖아요. 이건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거예요. 도박장에 발을 들였으면 무언가는 얻어가야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죠. '51만원이었으면 뽑을 수도 있어. 아니면 52만원...53만원이라면...어쨌든 여기서 멈추는 건 말도 안 돼. 이제 거의 다 왔어.'하는 식으로요. 이런 수렁에 빠져버리면 결국 5성 흑잔느가 뜨는 걸 볼 때까지 가챠를 멈출 수 없게 되는 거죠. 



 6.아참, 가시 얘길 하고 있었죠. 이미 살을 너무 많이 째버려서, 여기서 그만둬버리면 나는 몇 시간 동안 무의미하게 살을 째는 미친짓을 한 게 되어버리는 거였어요. 적어도 그 순간엔 그렇게 생각됐어요. 그래서 계속 파고들어갔어요.


 그리고 알았어요. 잘못된 곳을 째고 있었다는 걸요. 아니면 째는 동안에 박힌 가시가 살짝 옆으로 이동한 건지. 몇밀리 옆을 쨌어야 하는데 살짝 어긋난 곳을 째고 있었던 거예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순간 '미스터 드릴러'라는 게임이 생각났어요. 그냥 미친듯이 지하로 파고들어가는 게임인데, 그 게임을 하다가 전원이 꺼져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어쨌든 다시 살을 처음부터 째기 시작했어요. 이미 한 번 맨살을 째봐서 그런지 작업 속도는 좀더 빨랐어요. 문제는...이번에는 정확한 곳을 쨌는데 그렇게 째다 보니 그 가시가 안 보이는 거예요. 이미 너무 깊숙히 박혀서, 상처가 없는 맨살일 때도 살 안쪽에 희미하게만 걸로만 보였거든요.



 7.그래서 잠깐 멈추고 한숨 돌렸어요. 사실 살이 아니라 손목도 아파와서요. 가시가 잘 보이는 각도를 유지하고 있으려니 몇 시간 동안 테니스를 친 것처럼 손목이 아팠어요. 그리고 지금 내가 대체 뭘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집착하는 거요.


 어쨌든 다시 살을 째기 시작했는데 살을 한꺼풀 한꺼풀 째도 도저히 그 가시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 같았어요. '이번 한번만 참고 째면 되겠지'하면서 째도 사실은 더욱 안쪽에 박혀있는 거였어요. 그러다가 날이 밝아오고...계속 하다보니 어느 순간 가시가 뽑혀나왔어요. 


 손톱깎기 끝에 걸린 걸 가만히 보니 역시 가시는 아니고 잔털 같은 거였어요. 한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부러뜨릴 수도 없는 잔털이라서 그냥 버렸어요.



 8.하여간 그래요. 집착은...별것도 아닌 걸 위해 엄청난 지불을 하도록 만들곤 하죠. 그래도 모바일 게임이나 이런 가시는 가르침이 되어줄 수 있죠. 스케일이 작으니까요. 스케일이 너무 커서 교훈이 아니라 파멸을 안겨주는 것...예를 들면 강원랜드 같은 곳에 휘말려서 끝까지 달린다면 되돌릴 수 없게 되거든요. 이런 작은 일들로 예방주사를 맞는 게 나아요. 집착에 대한 교훈 말이죠.


 예방주사를 맞았으니 강원랜드에 가게 되더라도, 중간에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된 거겠죠?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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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 다른 얘기면서 비슷한 얘긴데...다음 주부터는 정상적인 가게를 다니려고 해요. 이것에 관해선 나중에 써 보죠. '전에도 이런 말 하지 않았었나?'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이번엔 진짜로요.


 갓포서울의 크림고로케가 먹고싶네요! 뭐 크림고로케를 먹으러 가는 김에 한우 오마카세도 먹고요. 올분있음 말해주셈. 오늘 저녁도 내일 런치도 가능해요. 이번 사이클이 끝나서 한동안은 일이 널널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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