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팬픽...(낭만과 복수)

2019.09.05 04:17

안유미 조회 수:848


 1.일기에 종종 나온 29는 진보 편이예요. 그래서 조국을 편들고 있죠. 대화 중에 내가 조국을 싫어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그가 지적했어요. 이번 일이 터지기 전부터도 이미 조국을 싫어하는 거 아니었냐고요. 그래서 대답해 줬죠. 


 '조국이야말로 법무부장관에 제격인 인물이야. 며칠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해. 이제는 그렇게 되었으니까.'


 그러자 그가 물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그래서 다시 대답해 줬죠.


 '상상해봐. 지난 몇주동안 조국이 받은 폭격을 말이야. 그 짧은 기간에...가해진 폭격말이지. 그만한 폭격을 겪고도 살아남으면 복수심이 싹틀 수밖에 없어. 조국은 이제야 일을 열심히 할 진짜 이유를 얻은 거야. 지금까지는 가져보지 못했던거지.'



 2.내가 조국을 싫어하는 건 사실이긴 해요. 한데 내가 조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 돈이 많거나 인기가 많아서가 아니예요. 내가 조국이나 하루키 같은 작자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잠이 덜 깬 채로 살아가는 인간들이기 때문이죠.


 아니 뭐 그건 나름대로 축복이긴 해요. 축복받은 재능이나 환경을 타고난 사람들은 평생을 몽유병자처럼 살다가 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나는 조국같은 애송이를 믿지 않은거예요. 그야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비웃겠죠. 네가 조국보다 잘났냐고요. 조국이 달성한 커리어와 그가 해온 일들을 예로 들면서요. 하지만 글쎄요.



 3.그야 뭐 조국은 잘났어요. 타고난 기프트의 질과 양이 압도적이죠. 그래서 그가 북콘서트나 저서에서 검찰 개혁을 하고 싶다거나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할 때 나는 비웃을 수밖에 없었죠.


 왜냐면 지껄이는 걸 보아하니, 그에게 그런 건 로망의 영역인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남자에게 '로망'이라는 건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해요. 폼나지 않아 보이면 그냥 안 하고 마는 그런 것에 불과한거죠. 


 개인의 커리어 같은 건 타고난 기프트로 어떻게든 되는 거예요. 하지만 개혁 같은 건 개혁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온갖 악의와 온갖 방해를 마주해야 해요.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낭만이나 로망 같은 건 샌님이나 가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여간 그래요. 조국이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지껄이는 걸 보며 '이 놈은 검찰에게 명치를 쎄게 맞아본 적이라도 있긴 있나?'라고 갸우뚱했어요. 검찰같은 조직을 상대할 때는 정의감으로는 부족하잖아요? 여러분도 알겠지만 남자가 쎈놈에게 굳이 싸움을 걸려면 얼마간의 분노나 복수심이 필요해요. 조국에게선 그냥 낭만과 정의감밖에는 보이지 않더라고요.



 4.휴.



 5.나는 조국이 사람의 악의를 딱히 느껴본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러면 누군가는 이러겠죠. 어린 나이부터 수많은 경쟁을 치르고 외국유학을 가서 타지 생활도 해보고 교수도 하고 사회운동도 해본, 50년도 넘게 산 사람을 감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요. 


 하지만 글쎄요. 그가 아무런 갑옷 없이 맨살로 사람들의 악의를 온전히 받아내본 적이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기엔 조국이 걸친 갑옷이 워낙 단단하니까요. 그러니까 잠이 덜 깬 채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힘껏 부메랑을 던지면서 산 거죠. 왜 그러냐면 좆같은 게 뭔지를 모르니까요.


 보통 그런 경우엔 열라 멍청해서 그러는 거거나, 좆같다는 게 뭔지 몰라서 그러는 거거든요. 조국이 멍청한 사람은 아니니까 후자일 거라고 생각해요. 좆같은 게 뭔지 아는 사람은 절대 부메랑을 그렇게 세게 던지지 않거든요.



 6.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매질을 가한 적이 있나요? 매질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어요. 상대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 하는 매질과, 상대를 죽이기 위해 하는 매질이죠. 그리고 요 몇주간 조국이 당한 매질은 명백히 후자예요. 야당과 언론, 네티즌, 심지어는 검찰까지 가세한 요 몇주간의 매질은 앞으로 공존할 상대에게 가하는 매질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조국은 알았겠죠. 좆같다는 게 뭔지를 말이죠. 자신뿐만이 아니라 온 가족에게 가해지는 매질을 보며 굴욕과 분노를 충분히 맛봤을거예요. 복수자가 되기에 충분히 말이죠.



 7.뭐 누군가는 이럴 수도 있겠죠. 조국 저놈은 맞을 만하니까 맞는 거 아니냐고요. 하지만 내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조국이 군중들을 속이건 뺀질거리건 알바 아니거든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두가지예요. 첫번째는, 저만한 매질은 매질을 당한 남자를 거듭나도록 만든다는 거죠. 두번째는, 남자들은 로망은 쉽게 포기하지만 복수는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거듭난 조국'은 이제 법무부장관 일을 열심히 할 진짜 이유를 찾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복수 말이죠. 그가 법무부장관 일을 제대로 하는 게, 그가 법무부장관이 되는 걸 막으려고 한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은 보복을 하는 거니까요.


 

 8.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조국이 법무부장관이 돼서 검찰개혁을 하려는 건 이 샌님 녀석이 또한번 자신의 멋짐에 취하려고 하는 짓거리일 거라고요. 하지만 이제는 장관이 된다면 낭만따위를 위해 법무부장관을 하는 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 법무부장관을 하는 거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할거라고 믿어요. 수컷들은 다른 건 게을리해도 복수만은 열심히 하잖아요.


 게다가 조국이 법무부장관이 된다면, 법무부장관 자리는 그가 평생동안 얻어본 것들 중 가장 힘들게 얻은 것일 테니까요. 아니면 유일하게 힘들게 얻은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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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팬픽이라고 썼듯 실제적인 관찰이나 통찰과는 관계 없어요 이 일기는. 그냥 망상이라고 해 두죠. 사실 내 일기는 평소에도 망상이 강하지만 오늘 일기는 실제보다 망상의 비중이 너무 커서 팬픽이라고 썼어요.


 어쨌든 이제는 정말로 조국이 법무부장관이 되길 바라는 편이예요. 왜냐면 조국이 법무부장관이 되어야 이 쇼가 계속되니까요. 사실 내가 보기에도 조국은 맞을 만하니까 두들겨맞는 중이지만 조국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게 부당하게 느껴지겠죠. 


 매질을 당하는 중인 남자에겐 그 매질이 온당한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거든요. 복수자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매질을 당했다는 사실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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