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솔직이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카타르시스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이야기의 카타르시스란 환경에 굴하지 않는 한 명의 초인이 제공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조커의 캐릭터도 좀 걱정됐어요. 


 왜냐면  그동안의 조커들은 모두 유능했잖아요? 니콜슨의 조커는 잘나가는 마피아였고 레저의 조커는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초인간적이고 비인간적이었죠. 레토의 조커는 영앤리치핸섬가이였고요.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능가할 역량은 다들 갖추고 있었죠.


 

 2.한데 이 영화의 조커는 예고편만 봐도 현실에 짓눌려 살잖아요? 애초에 만화에서 시작된 캐릭터니까 만화적이길 바라는 건 아니예요. 캐릭터의 변주는 감독의 권한이죠. 한데 기본 설정이란 게 있잖아요. 조커는 갑부히어로의 배트맨의 돈지랄을 상대로 대등하게 겨루는 빌런이란 말이예요.


 그런데 예고편만 보고도 의아했어요. 저 나이 먹을 때까지 저러고 사는 사람이 어느날 어떤 일을 계기로 조커가 된다? 글쎄요? 착하던 사람이 어느날 어떤 일을 겪고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쁘던 사람이 어느날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어떤 일을 겪든간에 무능하던 사람이 어느날 유능한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아무리 예고편을 봐도 이런 남자가 어떻게 조커가 될 수 있는건지 궁금했어요. 전투력 같은 건 없어도 브배의 월터처럼 왕년에 노벨상급 연구를 했던 사람인 건가도 싶었고요.



 3.영화를 보러 갔어요. 영화 초반을 보면서 '어떻게 이 사람의 인생에 떡상이 일어날 수 있는거지?'라는 의문만이 들었죠. 떡상의 기운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사람이 주인공이었거든요. 


 아니 떡상은커녕, 아서 플렉은 기생충의 송강호보다 더 답이 없는 상황이예요. 송강호는 하다못해 이것저것 벌여도 봤고 운전으로 먹고살 수 있을정도로 운전도 잘하잖아요. 아서 플렉과 비교하니 기생충의 송강호가 유능한 사람인것처럼 착각될 정도로, 진짜 아무것도 없는 캐릭터란 말이죠.



 4.휴.



 5.이 영화의 조커는 어떤 사람도 아니예요. 그의 말 그대로 살아오면서 행복해본 적이 없던 실패자죠. 게다가 불행한 놈은 대개 불쌍한 놈인 법인데, 이 사람은 연민을 가지기엔 너무 서늘해요. 그냥 불행한 아픈사람이죠. 그리고 영화 내내, 눈여겨볼 점이 별로 없는 이 불행한 남자의 행적을 계속 따라가야 하고요. 아프고 슬픈 남자에게 계속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걸 봐야만 하죠. 그리고 결국에는 그가 나쁜 일을 일으키는 걸 봐야 하고요.



 6.그동안의 조커들은 이 세상에 작용을 가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게 뭐든간에 세상에 자신의 철학이나 에고를 투사할 힘이 있었죠. 그러나 피닉스의 조커에겐 철학도 에고도 능력도 없어요. 수십년간 쌓인 슬픔과 분노만이 있죠. 


 피닉스의 조커는 이 세상에 작용을 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 딱 한번 반작용을 가하고, 그 대가로 영원히 자유를 몰수당해야 하는 슬픈 남자일 뿐이예요. 다른 조커와 달리 그에겐 범죄 조직을 만들거나 감옥에서 탈옥할 힘이 없으니까요.



 7.조커가 마지막에 머레이의 토크쇼에서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은 진지해서 슬펐어요. 레저의 조커가 'why so serious?'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었던 건 그가 미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가 세상보다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거든요. 세상이 보통 사람들을 짓누르는 힘겨움쯤은 가볍게 넘어설 수 있는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진지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가진 거니까요. 세상에 화내는 대신 세상을 조롱하는 것은 강자의 특권이니까요.

 

 하지만 피닉스의 조커는 마지막 순간에 'why so serious?'라고 모든걸 웃어넘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닌거예요. 그를 평생 짓눌렀던 현실의 무게는 너무나도 리얼한거고, 그걸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결국 그는 진지하게 울분을 토해내고 그냥 잡혀버려요. 다른 조커들처럼 멋진 탈출 계획 같은 건 그에게 없으니까요.


 

 8.머레이의 쇼에 초대받는 걸 보고 '조금만 더 참지...이제 기회가 왔는데.'라고 생각한 관객도 많았겠죠.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조커가 분노하는 걸 보면 그건 그에게 '기회'가 아니라 세상이 그에게 가하는 또다른 조롱일 뿐이더군요. 적어도 그는 그렇게 받아들인 거죠.


 글쎄요. 아마 나라면 그걸 기회삼아 행사도 다녀보고 코미디언으로서 이것저것 시도해 봤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서 플렉은 모욕을 참아내고 그걸 기회로 삼을 만큼 의욕이 남아 있지도 않은 상태였으니까요. 


 씁쓸한 영화일 수밖에 없어요. '깨달음'을 얻어서가 아니라 '자포자기'에 의해 조커가 되어버리는 남자의 이야기니까요. 원래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카타르시스라곤 단 한조각도 없는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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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모르겠어요. 몇몇 평론가가 우려하는 것처럼 이 조커가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사람들을 부추킬 만한 캐릭터일지요.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찌질이들이 닮고 싶어할 만큼은 멋있었지만 이 조커는 아무도 롤모델로 삼고 싶어하지 않을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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