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머리가 그냥 [바낭]인 이유는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맨날 넷플릭스 얘기만 하니 오해하실까봐. 영화 내용 스포일러는 없어요.



 - 쌩뚱맞게도 물가에서 모닥불 피워 놓고 파티하는 10대들의 모습, 그 와중에 남자 친구랑 끈적끈적하게 키스를 나누는 에밀리 브라우닝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콘돔도 준비해왔으니 나 믿고 한 번 하자는 준비성 좋은 남자 친구를 뒤로 하고 어두컴컴 울창한 숲길을 홀로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러다 쓰레기 봉투에 담긴 어린 여자애의 시체를 발견하고, 으악! 하고 집에 달려갔으나 평소와 달리 집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고!! 이상한 게 막 보이고 !!! 집에 불이 막 나고!!! 팡팡 터지고!!!! 이게 다 정신병원에서 의사에게 털어놓는 안나(=에밀리 브라우닝)의 꿈이었고!!!!!

 ...라는 도입부를 거치면 주인공은 퇴원을 하죠. 아빠가 차로 데리러 와서는 엄청 기뻐하며 딸을 데리고 씐나게 숲속 집으로 가겠죠. 거기엔 새엄마가 있겠고, 한국과 미국의 언어 차이로 인해 영화 내내 동생인지 언닌지 헷갈리게 만드는 알렉스가 있겠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린 애였을 때부터 '알렉스'의 키가 훨씬 큰 걸로 미뤄보아 주인공이 동생인 듯 하네요) 뭐 이상하고 불길한 일들이 막 벌어지겠죠. 이건 '장화, 홍련'의 리메이크니까요.



 - 유명한 한국 영화의 헐리웃 리메이크이다 보니 아무래도 원작과의 차이점을 따져보면서 보게 되는데, 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 포인트입니다. 딱히 못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영화 자체의 재미보단 이런 변경점 찾기 놀이의 재미가 더 크더군요. 장화, 홍련을 안 보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소감이 궁금하더라구요.

 대략 기본 틀은 유지하고 원작의 아이디어도 대부분 재활용(일부는 그대로 쓰고 많은 부분은 수정해서 살짝 다르게 씁니다)하며 벽지까지 나름 신경 쓴 성실한 리메이크이지만 중반 이후로는 거의 재조립 수준으로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근데 전 그마저도 그냥 충실한 리메이크인 걸로 받아들였어요. 원작 내용에서 '그 순간에 주인공이 그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했다면?' 이라는 아이디어를 갖고 브레인 스토밍으로 발전 시킨 것 같은 이야기거든요. 뭔가 좀 팬픽 같기도 하고. 



 - 원작과의 차이점 얘길 스포일러 피해가며 해보자면,

 일단 리메이크판은 무섭지가 않습니다. 뭔가 의무방어전 느낌으로 겁주는 장면이 몇 번 들어가긴 하는데 문자 그대로 '하나도 안 무서워'요. 장르 자체가 호러보다는 미스테리 스릴러라고 해야 맞을 듯. 귀신이 나오긴 하지만요.

 미쿡 물을 먹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원작의 그 처연하고 애달픈 정서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원작의 멜로(?) 요소가 스토리상으로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뭔가 좀 덜 중요하게 취급되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안나와 알렉스'는 원작에 비해 수수께끼 풀이에 중점을 둔 느낌입니다.

 벽지는 있어요. ㅋㅋㅋㅋㅋ 다만 원작처럼 그렇게 강조되진 않습니다. 신경써서 보면 보이는 정도.

 아버지는 여전히 잉여 캐릭터지만 새엄마의 비중이 아주 커졌습니다. 대신 덜 무서워요. 거기에 안나 담당 의사, 남자 친구, 보안관 등등 추가되거나 비중이 커진 캐릭터들이 많습니다.

 알렉스는 덩치부터 안나보다 큰 데다가 건강 튼튼하고 씩씩합니다. 자매 관계는 좀 덜 끈적해졌어요. 뭔가 동성애 느낌까지 들던 원작 자매들에 비해 이 영화의 자매는 상대적으로 현실 자매 느낌.

 ...적다 보니 정말 중요한 변경점은 거의 다 스포일러라 말을 못 하겠네요. 그러니 여기까지만. ㅋㅋ



 - '올드보이' 리메이크판을 보면서도 했던 생각인데, 동양쪽 영화들은 서양 사람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여백이 많고 설명이 부족한 느낌인가 봅니다. 올드보이 미국판을 보면 악당이 원한을 갖게 된 사연부터 주인공을 가둬두는 방법과 과정과 풀어준 후 복수의 방법까지 원작에다가 추가 디테일을 와장창창 때려박아 놓았었거든요. 결과적으로 뭔가 좀 더 말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긴 했지만 이야기가 상당히 구차하고 구질구질해지면서 재미가 없어졌었죠.

 '안나와 알렉스' 역시 원작에 비해 이야기가 좀 복잡하고 번잡스럽고 그렇습니다만. 위의 경우와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올드보이'는 원작 스토리를 그대로 두고서 디테일만 들이 부었다가 맹탕이 된 경우였는데 이 영화는 아예 다른 이야기를 짜 버렸으니까요. 짜장 떡볶이와 고추장 떡볶이의 레시피 중 어느 더 '우월'한지를 따져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 일단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원작의 호사스러운 예쁨과 갬성 터지는 아련한 정서 같은 건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미국맛 or 헐리웃맛이랄까.

 처음부터 비밀과 미스테리, 떡밥들을 던져 놓고 이야기를 꼬아가다가 마지막 반전을 통해 풀어내는 스릴러 영화에 가까워요.

 이것저것 많이 뜯어 고쳐서 미스테리를 구성해 놓았는데 기대(?)보다 미스테리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원작을 본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반전 하나가 끝까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긴장감도, 막판의 놀라움도 거의 휘발되어 버린다는 거.


 원작을 어떻게 고쳐놨는지 궁금한 분들은 보세요. 만듦새가 아주 쳐지는 영화는 아니고 이런저런 제약을 생각하면 나름 선방했습니다.

 원작을 아예 안 봤고 내용도 모르는 분이라면 볼만 하겠으나... 그냥 원작을 보시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또 '꼭 봐야할 영화!' 같은 거랑은 좀 거리가 멉니다.

 원작의 존재를 아예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대략 볼만한 B급 스릴러 무비 정도는 충분히 됩니다만. 떼어 놓고 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네요.

 그래도 특별히 나쁘진 않았으니 먼 훗날 언젠가 무료로 보실 기회가 생기시면 한 번 도전해 보셔도 괜찮을 듯.




 - ...덤으로. '더 보이'에서 엘리자베스 뱅크스를 보고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보게 된 영화네요. 근데 뭐 특별히 캐릭터도, 연기도 인상적이진 않았습니다.

 주연 에밀리 브라우닝을 좋아하는 분들은 보셔도 될 것 같아요. 사실 이 분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서 '매력적이네'라는 생각은 했어도 '예쁘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이 영화에선 참 예쁘게 나옵니다. 원톱 주인공이니 분량 지분도 크구요.



 - 원제는 The Uninvited이고 한국 제목은 '안나와 알렉스: 두 자매 이야기' 인데... 원제가 좀 심심하니 '안나와 알렉스' 까진 나쁘지 않은데 뭘 또 굳이 부제까지 붙였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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