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름의 희열 4회. 이번 주도 체급 대항전부터 앞으로 하게 될 토너먼트 조추첨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어요. 이 재밌는 방송이 연말 연예대상 시즌까지 맞으면서 시청률이 지지부진해 슬프지만.. 그리고 재미와는 별개로, 눈에 띄게 체격 차이가 나는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는 씨름의 천하장사 제도에 대해 좀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어요. 


낮은 체급인 태백급이 높은 체급인 금강급과 대진표를 짜면서, 앞 순번에 그래도 승산이 있을 법한 선수들을 매치업 하고 나니 뒷 순번은 정말 체격차, 경력차가 큰 선수들만 남게 된 모양새 같더라고요. 키 차이 최소 10센치 이상, 몸무게 차이 최소 10킬로 이상인 선수들이 마주 앉아 샅바를 잡고 있으니 한 눈에도 너무 표가 나서, 뭔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기도 했어요.

물론 작은 선수들도 최상위 랭커들이기에 결코 쉽게 지지는 않았지만요. 머리 빼내는 기술로 멋있게 한 판을 이긴 손희찬 선수나, 특히 모래판 10cm 위에서 악착같이 승부를 뒤집어 낸 황찬섭 선수는 그야말로 4회의 명장면을 만들어 냈지요. 하지만 씨름은 기본 3판 2선승제.. 작은 선수가 기지를 발휘해 한 판을 가져올 수는 있어도 경기 자체를 이기는 건 결국 불가능 했어요.                         


'천하장사'는 전 체급 통합 장사의 개념이자 씨름의 상징이기도 한데, 이렇게 통합 챔피언을 뽑는 종목이 씨름 말고 또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통합 챔피언의 존재로 인해 결국 각 체급별 챔피언은 뭔가 2인자처럼 되어 빛이 바래 버리고, 궁극적으로는 체급을 나누는 기본 의미도 퇴색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씨름에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경량급이 별 주목을 못받고 주로 덩치 큰 중량급이 관심을 받는 것도, 결국은 천하장사가 나오는 체급이기 때문이니까요. 씨름천재 임태혁이 금강급 챔피언을 14번씩을 해도, 경량급 선수가 천하장사를 할 수는 없으니 크게 주목도 못 받고.. 체급을 나눴으면 그걸로 끝인거고 목표가 높은 선수들은 개별적으로 증량해서 올라가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근데 천하장사 제도도 전통이 있고 워낙 씨름 종목의 대표 이미지이기도 해서, 갑자기 누가 그거 하지 말자고 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천하장사 소세지는 어쩔 것이며..  


어쨌거나 이 프로그램의 컨셉은 경량급의 통합 장사를 '태극장사'로 이름 붙이고 한 번 뽑아보자는 거니, 이제 그 안에서 몸이 작건 크건 대학생이건 실업10년차이건, 한 명의 선수 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는 없게 됐어요. 다음 주부터는 토너먼트가 진행되고 탈락자가 나오기 시작할텐데, 조 추첨할 땐 왜 그렇게 제가 다 떨리던짘ㅋㅋ  범수야 D조 들어간 게 그렇게 좋으니..? 선수들 모두 벌써 정이 들어 버려서 누가 탈락해도 슬플 것 같아요. 다들 부상 없이 후회없는 경기 하길 바랍니다.




-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2,3부. 구멍난 양말을 신은 수사들이 가난에 대해 토론합니다. 선택한 가난과 그로 인해 얻은 정신적 자유에 대하여..

식사는 하루에 한 번, 흔히 중국집에서 쓰는 철가방에 담겨 방으로 전달 되고, 식사 준비와 전달 또한 그 소임을 맡은 수사가 하는 것 같았어요.

침묵은 참 평화롭고 귀한 것입니다. 수사들은 각자 맡은 바 노동을 하는데, 아무도 남에게 잘한다 못한다 느리다 빠르다 말하지 않으니까요.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

표정이 온화하며 입가에 자주 미소를 머금는, 그러나 유난히 청소하는 동작이 느릿하고 머리의 흉터들이 눈에 띄었던 한 수사는, 알고 보니 피부암을 앓고 있는 분이었어요.      


'우리는 병약함의 시련이 영원한 기쁨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뜻에 유순한 마음으로 자신을 의탁해야 한다.' - 카르투시오 헌장 27-7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 - 122시편 1절


젊은 수사들은 가끔 어떤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어요. 한 나이 든 서양인 수사는 한국어 수업 시간에, 서툰 한국말로 얘기합니다.

젊은 사람은 고통과 영적 결핍이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잘하게 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늦게 좋다.


신을 믿는 순간 세상과 삶을 보는 관점은 마법처럼 달라집니다. 그래서 혹자는 종교를 정신적인 아편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글쎄요. 종교가 아니더라도 나약한 인간은 결국 각기 다른 종류의 아편을 취하며 살아갈 뿐인 것 같기도 해요. 인류가 우주의 과학적 진실과 자신의 유전자 지도를 모두 알게 되었을 때, 과연 행복할 것인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인간들은 유전자의 번식 명령을 거부한 채, 아이를 안 낳기 시작했는데 말이에요.  

 


참 길고도 짧았던,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힘들었던 1년.. 내년은 십자리가 바뀌는 해이니, 뭔가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것 같기도 해요. 

모두들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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