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과학의 특성 중 하나가, 뭔가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정한 경제 이론, 경영 이론 등등은 대개 몇 개의 확고하다고 믿어지는 명제 또는 다른 이론으로부터, 또는 제한된 관찰의 결과로부터 유도되는데,

이것이 실제 세계를 잘 설명하는지, 혹은 맞지 않는지를 확인하려면

1) input과 다른 교란변수들을 통제한 비교 실험 (controlled experiment)를 하고

2) outcome을 측정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과학의 특성으로 인해

A. input과 교란변수의 통제가 어려운 (윤리적 이유, 다양한 교란 변수 등) 경우가 많고 (즉, 비교 실험이 불가)

B. input, outcome의 객관적인 측정이 어렵거나, 또는 제한된 시간 이내의 관찰이 어려운 (예: 특정한 사회 정책의 영향을 확인하는 데 여러 세대가 걸린다든지)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정한 양육법 (자유방임 vs. 통제), 조기 교육,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분양가 상한제, 특목고 폐지 등.. 특정한 정책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실히" 판정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2. 하지만, 이를 사회과학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자연과학의 경우에도 윤리가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 밖에 없는 영역 (예: 의학, 수의학 등)은 어느 정도 이와 같은 특성 (무언가의 옳고 그름을 "확실히" 판정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물론, 의학이나 수의학 등의 학문은 인간이나 동물 등 직접적인 대상을 보다 단순화한 surrogate model (분자, 세포, 조직, 동물 등)을 사용해서 

위에서 언급한 A., B.의 제한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데에서 큰 차이가 있고,

2) A., B.의 제한점이 사회과학만큼 크지는 않기 때문에 (예를 들어 outcome의 경우만 보더라도 사망/생존이라는, 딴지를 걸 수 없는, 최종적인, 가장 확실한 outcome이 있음) 사회과학에 비해서 특정한 행위 (예를 들어 A 시술법을 행한다던지 B 약제를 투여한다든지..)의 옳고 그름을 "확실히" 판정한 사례가 꽤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여전히 현대 의학 또는 수의학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실제적인 행위들 중 훨씬 더 많은 부분이 특정한 양육법, 조기 교육,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분양가 상한제, 특목고 폐지 등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행위가 실제 옳은지, 그른지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영역에 속합니다.


3. 하지만,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이나 공히 중요한 부분이,

현재까지 A라는 특정한 정책 (사회과학) 또는 특정한 의료행위 (자연과학)의 실제 효과가 아직 "확실히" "실질적"인 방법을 통해 판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absence of evidence for A) "A가 효과가 없다 (evidence of absence for A)"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A라는 특정한 정책 또는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우리와 같이 숨 쉬면서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A의 실제 효과가 어떠한지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매우 조심스럽게 해석 및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주류 집단 (main stream)이 A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를 (그 의견이 결국 나중에 틀린 것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최소한 현 시점에서는)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4. 오늘도 저는, 그리고 우리들은, 우리들이 일상에서 행하는 수많은 행위들의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서 그 의미를 모르고 있으나, 3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나중에는 오히려 negative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질지도 모르는 행위들임에도, 그 하나 하나를 매우 조심스럽게, 그 행위의 short-term outcome들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그 결과를 feedback으로 다음 행위에 반영하면서, 조심스럽게 행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이들에게 행하고자 하는 양육법 (항상 consistent한 discipline을 보이는 것, 바른 태도를 갖도록 지도하는 것, 매를 들지 않는 것, 사랑을 자주 행위로 표현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것, youtube나 TV를 자주 보여주지 않는 것 등), 교육법 (유치원이나 학교에만 맡겨두지 않고 자주 직접 가르쳐주는 것, 규칙적이고 일정한 공부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 혼자 공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학원의 도움을 무시하지 않는 것, 능력이 된다면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 등등) 중에서 어떠한 것도 실제 제가 기대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 아니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은 아무 효과도 없을 거라고 사실 믿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이전보다 많이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심지어 그 효과가 매우 미미하거나 없을 것이라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중 아무도 우리 아이를 아무렇게나 방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것을 다시 내 훈육방법, 교육방법에 반영해서 수정해가고, 내 훈육방법, 교육방법이 아이에게 미치는 단기간의 영향을 살펴서 다시 궤도를 수정해가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키우고 있죠..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한) 훈육 뿐 아니라 (개인적, 사회적인 존재의 의미를 완성하는데 중요한) 우리의 직업적인 일들을 수행할 때도 대부분은 이 같은 "조심스러움"을 갖고 "실물"을 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가 직업적으로 하는 일들은,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에 극도로 집착하면서 편집증을 갖고 완벽함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이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maneuver임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죠.. 저 뿐만 아니라 사실 대부분이 그럴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믿는 순간 말이죠.


5. 그런데, 제가 좀 화가 날 때는, 실물을 대하는, 정부의 많은 정책적 결정들이, 그 상당수는 실물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할 것임에도, 과연 이러한 조심스러움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입니다. 


내 자식은 (아마도 일반고를 보내는 것에 비해서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더 나은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기에) 특목고를 보냈으면서 특목고를 폐지하는 정책을 만든다면, 나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선호하는) 강남에 살지만 다른 사람까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는 전제를 갖고 (강남에 진입이 어렵도록) 정책을 펴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경기 악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행동할 때 갖는 조심스러움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상이 되는 순간 무시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 아이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면 대다수의 교육학자들이 반대하는 나만의 훈육, 교육 방식을 그렇게 쉽게, 그리고 확고한 신념으로 고집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아플 때 내가 치료받고 싶은 의사는, 주류 의료계가 신봉하는 의료 행위를 대범하게 무시해버리는 의사일까요 아니면 비록 의미를 잘 모르는 하나 하나일지라도 신중하게 재 가면서 진료하는 의사일까요? 이는 단지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 외에도 실물을 다룰 때의 조심스러움이 결여된 행동으로 비판받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만이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대를 많이 했고 지지를 품었던 정부이기에, 더구나 적절한 대안이 별로 보이지 않기에 특히 많이 실망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솔직히, 3년, 5년 이후가 저는 많이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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