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3.

2020.02.26 23:38

잔인한오후 조회 수:575

갑작스럽지만 적확하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떠올랐습니다. 소설에서는 모임이 금지된 나치 치하에 모여있다 발각된 사람들이 우연히 둘러댄 변명으로부터 독서 모임이 시작될 껍니다. 그리고 전시에 이루어진 독서모임은 일상의 조각으로 보전되어 사람들의 감정을 잡아줍니다. 일상의 행동들이 전시의 언어로 번역되어 이야기 될 때, 가끔은 실제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들_


독립서점에서 사온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를 다 읽었을 때, 더욱이 글을 쓰고 싶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굳이 또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을 사고 만 것입니다. 남이 일하는 것이 무엇이 재미있는지 몰라도, 꾸준히 읽게 됩니다.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제 자신이 그렇게 충실하지 않은 인간이라 봤기에 자기 자신을 못 미더워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공부하는 것과 일하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최근에도 지인과 논쟁거리였던 것이,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과연 따로 있고 서로가 그렇게까지 영향을 주지 않는가 였는데 저는 따로 있다는 걸 밀었습니다. 지인은 일머리는 광의의 공부머리에 속해 있고, 제대로 풀이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위주의 이야기를 했고, 저는 실예로 많은 교수들이 일을 잘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쪽으로 빠졌는데, 주제로 잡은 '어떤 책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최근 [구부전]을 다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게시판에는 듀나의 SF 서평이 올라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 기억에 남을 정도의 후기를 읽은 기억이 없는걸 보면, 아예 한 번도 안 올라왔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럭저럭 듀나의 SF들을 나오는 족족 읽는 편인데, 사실 저도 게시판에 그 후기를 써본 적은 없습니다. 이미 포기해버린 일이지만 서평 비슷한 것을 그럴싸하게 써서 올려보겠다 하다가 마음에 들 정도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어찌 되었든, 어떤 책들은 정신이 어느 정도 말짱할 때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처음 읽는 일이란 어떤 이야기이든 단 한 번 밖에 없는데 정신차리지 않으면 그 맛을 영영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읽어가다가도 뭔가 읽는 맛을 망치겠다 싶으면 냅다 덮고 멀리 치워봅니다. (자제력이 부족할 때는 그 상태로 읽어버리게 됩니다, 아까워라.)


[나이트 우드]가 그러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가, 장중한 옛표현들이 쏟아져나오자 잠시 치워놓는 상태입니다. [구부전]도 읽기는 다 읽었는데 두 세 편 남은걸 엇그제 읽었다는 이야기였죠. 개중에 '겨자씨'가 정말 좋았는데 그 감각을 나눌 사람이 없군요. 듀나의 글 중에서 여러 개념들이 또릿한 형태를 띌 때 매우 재미있는데, 아무래도 그런 감각은 명사를 최대한 고르고 둘레를 파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겨자씨'의 주요 소재인 특정 TV극과 사람들의 그 TV극에 대한 감상같은 것 말이죠. 마이너 감성을 실존하는 듯이 구성하는 것 말이에요.


어찌 되었든 [오늘의 SF #1]까지 읽고나자, '그래, 제인 에어를 꼭 읽고 말아야겠다'란 말을 할 수 밖에 없군요. (이미 [헤러웨이 선언문]까지 사버렸지만 말이죠)


몸과 미학_


최근 있었던 실망스러운 일 중에 듀나님의 특정 연예인에 대한 성형 비판이 있었죠. ( 사실 그 글 타래들을 깨끗이 정리해서 써볼까 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해서 접었습니다. ) 효과적이고 실패하지 않는 성형을 위한 비평이 존재해야 한다는 쪽인지, 아니면 여러 장르의 신체적 미학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쪽인지 모호했지만 썩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대학생 때 희곡 전공이던 분에게 물어봤던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즉흥적으로 모여 서로 역할을 정하여 글로 연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도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는데, 한참 생각하던 그 분은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아니, 몸이 없다면 연극이라고 하기 어렵다.' 아마 그 대화가 몸을 앗 하고 생각해보는 첫 대화였을 겁니다.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잊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그런 것들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몸을 평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또는 다른 사람의 몸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에서야 많이 뜸하지만, 듀게에 아이돌 관련 글들과 함께 대상화에 대한 비판 글이 동시에 올라오는 상황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또한 거기까지 가지 않고도, 배우들의 미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몇 가지를 골라내긴 했지만, 아무래도 저에겐 너무 어렵습니다. 보통 그런 미학에 둔감한 쪽이 글을 쓰면 민감한 쪽에게 힐난이 되도록 써져버리게 되니 조심스럽기도 하구요.


'다리가 아름다운 연예인들'이라는 옛 글이 광고 사이에 끼어있던 걸 보니 불현듯 생각나더랍니다.


후천적이든 선천적이든 개개인에게는 신체의 미라고 하는 것이 머리 속에 박혀 있을 것이고 자세히 설명을 하라면 신나서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매혹되는 것이기에) 앞으로의 도덕은 그런 것들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 밖에 없는 것일까요? 대상화를 피하는 몸의 미학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여러 순간들_


장염을 앓기 전까지 한 참 동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길거리에서 여러 광경들을 마주치는데 가끔 그런 것들을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 그러고는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 누군가의 토막 대화 같은 것 말이죠. 


집 주변에 오랜 창업적 겨울을 보내고 살아남은 닭강정 집이 있습니다. 가끔 거기서 닭강정을 사먹는데, 혹시 치킨과 닭강정이 무엇이 다른지 알고 있나요? 이건 또 다른 이야기고. 여튼 어느 날 거기서 '혼자서' 닭강정 하나를 주문하고 앉아 있는데 옆에서 끊임없이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린 두 아이가 서로를 바라보며 킬킬 대며 웃고 있었죠. 자세히 보니, 중간에 휴지 하나를 두고 서로에게 불어내는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얀게 이렇게 뒹굴고 저렇게 뒹구는 사이 사이 무엇이 재미있는지 그렇게 좋아하더군요. 잃어버린 여러 순간 중 살려낸 하나네요.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 늙었다는 말_


벌써 두 번이나 '나이 드셨네요' 비슷한 말을 듀게에서 들었는데요. (한 번은 '죄송하지만'이란 전렴구가 붙어서.) 진짜 나이가 들면 일정한 방향으로 사람의 성격이 수렴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시간이 흘러 사람이 변했단 이야기인가, 그리고 왜 미안한 것인가 잡다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 나쁘지 않고, 핏 하고 웃음이 나거나 누군가에게 '내가 늙었나봐'하고 말할 수 있는 소재가 되긴 하지만요. 보니까 정 반대로 변한 사람들에게도 그런 말을 하는 경우를 봐서 후자인가 싶기도 합니다.


보통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해졌다, 이런 말인가 싶고 자의와 달리 변해버렸다고 생각하는게 미안하다인가 싶기도 하고, 미스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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