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

2017.12.06 14:54

여은성 조회 수:972


 1.어제는 서울 북쪽에 사는 공주를 만나고 왔어요. 한 15년만에 노래방에 가서 제대로 노래불러봤죠. 노래방 가격표에는 1시간 20000원, 2시간 25000원이라고 써있었어요. 공주가 노래방을 냈어요. 1시간을 끊었어요.


 1시간이랑 2시간 가격이 저렇게 차이가 안난다면 그냥 25000원을 내고 2시간을 끊는 게 낫지 않나 싶었는데...곧 그러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됐어요. 계속해서 보너스 타임이 들어오는 거예요. 


 '좋아, 이제 9분만 버티면 여기서 해방될 수 있어.'라고 생각할 때쯤 보너스를 몇십분 퍼주는 게 몇 번 반복되니까 정말 괴로워졌어요.


 

 2.두 시간쯤 지나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성대결절을 호소하는 아이돌들을 비웃었던 게 너무 미안해졌어요. 걔네를 보면서 '성대결절 같은 거, 징징댈 거 없이 근성으로 고쳐버리면 되잖아?'라고 생각했거든요. 고작 두시간 정도 노래불렀을 뿐인데 목이 정말 아파왔어요. 아이돌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노래 연습을 해야 하다니...정말 힘들 것 같았어요. 


 Q의 가게에서 부르려고 외워둔 노래를 다 부르고 반쯤 가사를 알고 있는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더이상 부를 게 없어졌어요. 결국 과거로 무한히 회귀하며 애니메이션 노래의 봉인을 풀어버렸어요. 건담 시드에서 진겟타로, 진겟타에서 역습의 샤아까지 거슬러올라가니 정말, 정말로 부를 노래가 없어져 버렸어요.


 하지만 공주는 보너스타임이 안 들어올 때까지 계속 버티며 노래를 불렀어요. 두시간 반쯤 버티자 보너스 타임이 더이상 안 들어오게 됐고 노래방 타임이 끝났어요. 공주가 말했어요.


 '우리가 이겼어. 우리가 저놈들에게 이긴 거야.'



 3.공주에게 한 소리 들었어요. 듀게에 가끔 쓰는 패션 자조적인 소리에 대해서요. 패션 좌파들이 좌파 타이틀을 액세서리로 써먹듯이 너도 자조를 패션으로 써먹고 있다고요. 


 사실은 열심히 살고 있는 주제에 패션 자조는 그만두라는 말과, 누군가가 널 오해하면 앞으로는 꼭 변명을 하라는 충고를 들었어요.



 4.휴.



 5.11시쯤에 헤어졌어요. 너무 일찍 헤어져서 좀 놀고 싶어졌어요. 한데 뽑아둔 현금이 없었어요.


 전에 썼듯이 놀러갈때는 반드시 현금이라서요. 그런데 현금 뽑아둔 건 없고 11시 30분이 지나버려서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ATM만 남는다면? 차라리 노는 걸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버려요. ATM수수료 따윈 내지 않는 게 철칙이거든요.


 택시를 타며 기사에게 최대한 빨리 가달라고 했어요. 기사는 네비에 찍힌 시간을 몇 분 줄이긴 했지만 결국 동네에 있는 ATM이 닫히기 전에 도착은 못했어요. 그래서 노는 걸 포기하고 얌전히 돌아왔죠.


   

 6.흐음...변명이라. 투덜거리는 건 좋아하지만 변명은 별로예요. 남한테 사정 좀 봐달라고 하는 거잖아요.


 문제는, 처지가 별로였던 시절에 내 처지 좀 봐달라고 떠들어대며 살았다면? 처지가 나아졌을 때 다른 사람들이 처지를 알아달라고 떠들어대는 걸 들어줘야 한단 말이예요. 도움도 줘야 하고요. 그래야 공평한 거니까요. 그냥 남한테 알아달라고도 하지 않고, 남을 알아주지도 않으면서 사는 게 편할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세상이 잘해주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예요. 세상이 내게 잘해줬다면 지금 나도 세상에게 잘해줘야 하잖아요? 그건 정말 귀찮은 일이예요.


 

 7.휴. 이틀이나 안 달려서 AP가 200% 회복됐어요. 면역력과 내구력은 웬만큼은 회복된 것 같아요. 그럼 놀러가야죠.


 어차피 시간이 내 건강을 해칠텐데 가만히 앉아서 그걸 기다리진 않을 거거든요. 내가 내 건강을 미리 해쳐놓을 거예요. 시간이 내 건강을 해치러 왔을 때 해칠 건강이 한 조각도 남아있지 못하도록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3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8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52
123334 유월 시작을 분노로. [8] thoma 2023.06.01 504
123333 연극 [벚꽃동산]을 보고 왔습니다 [4] Sonny 2023.06.01 247
123332 모기장 칠 때가 됐네요 [1] 가끔영화 2023.06.01 135
123331 [웨이브바낭] 척 노리스 영화를 처음으로 각잡고 봤습니다. '델타 포스' [6] 로이배티 2023.05.31 354
123330 프레임드 #446 [4] Lunagazer 2023.05.31 103
123329 [인어공주](2023) 보고 왔습니다 [5] Sonny 2023.05.31 790
123328 [인어공주](1989) 봤습니다 [2] Sonny 2023.05.31 386
123327 근황 [6] 칼리토 2023.05.31 474
123326 2010년대의 미국 대중음악 [2] catgotmy 2023.05.31 253
123325 북한에 대해 [5] catgotmy 2023.05.31 413
123324 오랜만에 안반가운 위급재난문자 [10] 예상수 2023.05.31 742
123323 [게임바낭] 플랫포머 게임 둘 엔딩 봤습니다. '플래닛 오브 라나', '서머빌' [1] 로이배티 2023.05.30 232
123322 Peter Simonischek 1946-2023 R.I.P. [1] 조성용 2023.05.30 153
123321 오늘 마지막 글: 윤석열은 죽을때까지 간호 못받았으면 좋겠네요 [2] 예상수 2023.05.30 548
123320 프레임드 #445 [4] Lunagazer 2023.05.30 105
123319 우주는 어떻게 끝나는가 [3] catgotmy 2023.05.30 267
123318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3] 조성용 2023.05.30 513
123317 크리에이터, 거미집, 킬러 오브 더 플라워문,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파트1 새 예고편 예상수 2023.05.30 239
123316 점심시간을 빌려, 한달만에 잠깐 쓰고 갑니다:비뚤어진 어른들 [4] 예상수 2023.05.30 465
123315 ‘다음 소희’ 없도록…경기도의회, 현장실습생 안전보장조례 입법예고 [1] 왜냐하면 2023.05.30 18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