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글2 후기 & 어머니글 3

2018.05.29 16:49

sublime 조회 수:1339

지난 글에 다정하게 쓰신 댓글들 잘 보았습니다.

거기에 댓글을 달다 길어져 후기는 게시글로 올립니다.^^

(저번 글 : http://www.djuna.kr/xe/index.php?mid=board&page=2&document_srl=13431120)


반갑게 글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께 보여드렸더니 광대승천하시고 얼굴도 발그레해지시면서

'왜 출판도 안한 글을 니가 먼저 소개하냐'시며 괜한 핀잔을 주시더군요.

좋아하셨고 감사해하셨습니다.

마침 제가 게시판을 보여드린 날 한동안 가지않던 문화센터 글쓰기 교실 친구들도 연락이 와서는

어머니 글이 너무 그립다 하시며 돌아오시라 했다시면서 또 멋쩍은 웃음을 지으시더라구요.


저는 진지하게 다시 여쭤봤죠. 왜 글을 더 이상 안쓰시냐고.


첫번째 이유는,

어머니께서 신경쪽 문제인지 안면근육이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시는 증상이 수년 째 계속되고 있어요. 

긴장하거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거나 하면 더 심해지고 평소에는 틱 증상 비슷하게 깜빡 깜빡 하시는 정도구요.

그래서 문화센터에 가서 남들앞에 글을 읽는다던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앉는다던가 하는 상황이 적잖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셨나봐요.

(구안와사 인것 같다 하시는데 제가 보기엔 안면이 굳었거나 틀어지지는 않았거든요...한의원, 양병원 모두 다니셔도 쉽게 안 고쳐지나보더라구요..)


그리고 두번째는 글쓰기교실 강사님이 써온 글을 보고 첨삭해주시는데

다른 수강생들(대부분이 퇴직공무원, 교수, 선생님 등등 이라시네요)글 자체에 대한 언급이 많은 반면,

어머니는 맞춤법 띄어쓰기 등에 대한 첨삭이 주로 이루어져서 그게 그렇게 부끄러우시대요.

강사님은 그런거 하나도 신경쓸거 없고 ,나중에 책을 내더라도 이런 건 다 봐주는 사람이 있다. 라고 하시는데도

너무 부끄럽고 내가 나이들어 이런 부족함을 느끼며 뭐하러 이 고생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하시더라구요.


그렇다면 문화센터는 가지않더라도 글이 쓰고 싶을 때 쓰시고 그걸 차곡 차곡 써놓기만 하면

제가 워드로 정리해서 모아드릴테니 계속 쓰시기만 해달라 말씀드렸죠.

옆에서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남은 자식이나 손주들한테 얼마나 좋은 선물이 되겠냐며 같이 거드셨구요.


아무튼 저도 모쪼록 어머니가 글을 계속 쓰시고 또 그걸로 본인도 치유받고 힘이 많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머니글 3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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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시루떡>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에 달빛이 내려앉는다. 내가 심은 무와 배추밭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서툰 농사꾼은 10년이 넘어도 속이 꽉 찬 배추를 키워 보지 못했다. 엉성하게 자란 배추는 벌레들이 먼저 맛을 본다. 이 잎에서 저 잎으로 옮겨 다니며 배춧잎을 뚫어 체 구멍을 만든다.

작은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여러 가지의 먹거리를 만든다.

무잎은 잘라 짚으로 엮어 그늘에 걸어 말려두었다가 추운 겨울날 들깨를 갈아 뽀얀 국물을 넣고 부드러운 시래깃국을 끓인다.

잎이 잘려나간 무 중에 큰 것은 하나씩 신문지에 말아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봄까지 먹을 준비를 한다.

그 다음 큰 것은 동치미를 담근다.야들야들하게 곰삭은 동치미 무를 시원한 국물에 띄워 삶은 고구마와 함께 내어놓으면 식성 까다로운 남편도 고구마 두 개는 거뜬히 먹는다.

나머지 작은 것들은 채를 썰어 말려 마른오징어를 넣고 김치를 담근다.

무 한 가지를 가지고 겨우내 먹을 밑반찬 거리를 만들어 두고 나면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연례행사처럼 가을이 끝날 무렵이면 항상 해 먹는 무 시루떡이다. 쌀을 조금 불려 믹서기에 갈아둔다. 팥은 통통하게 삶아 주먹으로 대충 으깬다.

시루 밑에 물이 끓으면 삼베 헝겊을 깔고 설탕과 소금을 조금 넣고 팥을 고르게 깐다. 그 위에 나무젓가락 두께로 채 썬 무와 쌀가루를 섞어 끓는 물 위에 시루를 얹어 건져낸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 이틀을 두어도 굳어지지 않는다. 담백한 맛과 또 하나 어머니의 손맛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나는 해마다 서너 번 떡을 찐다.

 

16녀의 많은 딸을 둔 어머니는 이웃에 길흉사가 생기면 먼저 쌀을 불린다. 대충 만든 떡을 딸들에게 먹인다. 이웃집 잔치 음식에 눈 돌리지 말라는 어머니의 당부다.

자식 많이 낳아 남의 음식을 탐내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었다.

가을이면 무시루떡 겨울이면 호박떡. 담장 위에 걸터앉은 잘 익은 호박은 아껴 두었다가 길게 썰어 줄에 걸어 말린다. 노긋노긋하게 마르면서 고운 색을 낸다.

곶감을 깎고 버려지는 감 껍질을 말려 호박과 섞어 또 떡을 찐다. 봄이면 쑥떡, 찹쌀과 쑥을 푹 익혀 확돌에 넣고 절구질로 몇 번 밀어 눌러 널따란 도마에 콩가루를 깔고 식힌다.

도마 가에 둘러앉은 딸들에게 큼직하게 썰어 먹인다. 그릇에 담아 먹는 것보다 칼끝에서 떨어지는 떡을 고물에 굴려 먹으면 그 맛이 더 좋았다.

비가 오는 여름날엔 마을 앞 냇물에 돌 구르는 소리가 더그덕더그덕 거린다. 어머니는 치맛자락을 돌돌 말아 걸어 쥐고 빗길에 나가 두벌 콩을 따다가 백 시루떡을 찐다.

마당에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문턱 깊은 부엌 바닥에 앉아 떡시루에 불을 지핀다.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들일을 할 줄 몰라 가난하지만 어쩔 수 없이 머슴을 둘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시골을 벗어나려고 일본에서 이발 기술을 배워와 마당 한 켠에 이발관을 차렸다.

가끔은 가게 문을 닫고 집을 떠나는 아버지는 무능하고 게으른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비로소 무능한 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밀수를 했다. 하동과 충무에서 나는 김을 싣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미싱과 다오다라고 하는 옷감을 바꿔 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열 식구의 먹을 것, 입을 것을 마련하느라 잠든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외아들인 아버지께 시집을 와 어머니는 아들 하나밖에 낳지 못했다. 딸을 많이 둔 것이 어머니의 잘못만도 아닌데 죄인이라도 된 듯 쉬지 않고 일만 했다. 낮에는 논밭으로 밤이면 길쌈을 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아버지의 바지저고리, 두루막은 언제나 깨끗하게 지어 걸어 두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잊으려고 그렇게 일을 했나 싶다.


어머니는 먼 길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더 보고 싶어 뒷산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섬진강을 건너는 나루선에 하얀 두루막을 입고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내려왔다고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을 했다.

그때는 별 의미없이 들은 그 말이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은 내 나이와 함께 슬픔처럼 자라난다. 마당에 가득 달빛을 남겨 두고 창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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