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온라인 수업 첫 날 단상

2020.04.16 16:40

로이배티 조회 수:1104

 - 미리 알아두셔야할 것. 현재 시행되고 있는 초중고 온라인 개학에 있어서 수업 방식은 '사실상' 그냥 교사 재량입니다. 그냥 시간 맞춰 EBS 컨텐츠 틀어줘도 됩니다. 그냥 기간 정해놓고 그 기간 안에 EBS 무슨 강의 몇 번부터 몇 번까지 들어라~ 해도 별 문제 없습니다. 물론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진행해도 됩니다. 교사들이 직접 영상을 제작해서 틀어줘도 됩니다. 그냥 다 됩니다(...)

 근데 제가 있는 곳은 학교장의 고집으로 전교사가 '줌'을 통한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하고 있죠. 뭐 그렇습니다.



 - 1교시. 첫 시간입니다. 담임 교사들 같은 경우에는 준비 기간 동안 매일매일 학생들과 줌으로 조종례하고 전달사항 전하고 하면서 연습을 해둬서 익숙한 상태인데 저는 올해 담임이 아니라서요. 프로그램 설정과 작동법은 다 알고 수업 준비는 해놨지만 좀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교실로 갑니다. 게다가 애들도 담임이랑 대화하는 게 아닌 그냥 교과 수업 참여는 처음이니까요.


 일단 애들이 다 들어오는데 15분이 걸렸습니다(...) 1교시라 자는 놈도 있었고 처음이다 보니 비번을 몰라 못 들어오는 놈도 있었고 뭐 다양했습니다. 교실에 비치된 비상연락망으로 안 들어온 학생들에게 전화를 하고 난리를 쳐서 결국 다 입장을 시켜 놓고 나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네요.

 그런데 '소리가 심하게 끊겨서 안들린다'는 애들이 있습니다. 확인해보니 1/3정도가 그렇다네요. 이러쿵저러쿵 해보다가 결국 해결책을 찾았습니다만. 그게 뭐냐면 학생들 마이크를 다 비활성화 시켜 버리는 겁니다. 30명이 내는 조그만 소음들이 모여 제 노트북에서 크고도 복잡한 소리가 되면서 제 목소리가 잘 전달 안 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같네요.

 그래서 비활성화로 문제는 해결했는데, 그러고 나니 혼자서 아무 소리 없는 애들을 상대로 떠들고 액션(?)을 하는 게 심히 정신 나간 사람 같습니다. 혼자 수업하고 드립 치고 리액션까지 자연스럽게 하고 노는 EBS 강사들이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제 좀 뭘 해볼까... 했더니 그때부턴 또 자꾸 제 접속이 끊어지기 시작합니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걍 제 노트북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정확히는 이게 제 개인 노트북(이라고 적고 '서피스 프로'라고 부르는)인데. 유선 랜포트가 없어서 usb 허브로 연결을 하는데... 학교에서 쓰는 랜선이랑 제 usb 허브가 뭔가 미묘하게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접속 끊김과 재접속을 반복하다가 심신이 지친 상태로 첫 시간은 끝.



 - 첫 시간이 끝난 후 컴퓨터 기자재 관리하는 분에게 찾아가 무선 공유기를 빌렸습니다. 이러면 이제 접속이 안 끊기겠지!!! 그러고 다음 수업.

 오. 역시 전 훌륭한 교사였어요. 안 끊기고 잘 됩니다. 심지어 애들 말로는 마이크 안 꺼도 목소리 잘 들린대요. 그래서 신나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한 시간 종료.



 - 쉬는 시간에 교무실 전화가 울립니다. 학부모에요. 자기 딸이 수업 접속했는데 비번을 모른다고. 몇 학년 몇 반인지 물어보고 우다다다 3층까지 달려가서 비번을 물어보고 다시 우다다다 내려와서 비번을 알려드립니다.

 이걸 오늘 세 번 했습니다. ㅋㅋㅋ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경험하셨겠죠.



 - 그리고 들어간 다음 수업.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들리는 하울링(?) 같은 소리. 모두에게 들려서 다들 괴로워합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그룹을 나눠서 차례로 마이크를 비활성화 시켜봤으나 정확한 범인이 안 나와요. 결국 다시 모두 마이크 끄고 혼자서 중얼중얼...;



 - 방금 전에 그 하울링의 범인을 찾았습니다. 그 반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하다 보니 두 놈이 같은 방에 앉아서 라랄랄라 수업을 듣고 있었다네요. 갸들 마이크를 꺼버렸더니 조용해졌더랍니다. 아까 제가 시켜봤을 땐 아마 그 둘이 말을 안 들었던 듯(...)

 그런데 잠시 후에 그 담임에게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담임이 자기들을 범인으로 지목해서 애들이 상처받고 울고 있다고 화를 내시네요. 아 네.........



 - 투덜투덜 적어놨지만 의외로(?) 놀랍게도(??) 오늘 학생들 출석, 참가율은 아주 높았습니다. 저희 학년의 경우엔 한 명도 빠진 애가 없었구요. 또 마이크를 켜놓고 진행하는 상태에선 크게 딴짓하거나 그런 경우도 없었구요. 대체로 열심히 들으려고 애쓰고 따라오려고 노력을 해서 놀라웠네요. 지난 주에 시작한 3학년 교사들 같은 경우엔 벌써 적응 돼서 그럭저럭 할만 하다고들 하구요.

 다만 1:30으로 진행하는 화상 수업이라 학생들에게 골고루 신경 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잘 듣고 있겠거니...' 하고 혼자 쑈를 하게 되는 전개가. ㅋㅋ 그리고 활동 같은 걸 시키면서 하려면 지금 이런 환경과 장비, 조건으로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교사들 중 이런 부분 연구하는 분들이 샘플을 보여주지만 그건 밥 아저씨가 그림 그리는 거랑 비슷한 거라서요.


 뭐 저도 곧 적응 하겠죠. 애들도 적응할 거구요.

 하지만 얼른 오프라인 개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ㅋㅋㅋㅋ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1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7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20
123324 오랜만에 안반가운 위급재난문자 [10] 예상수 2023.05.31 742
123323 [게임바낭] 플랫포머 게임 둘 엔딩 봤습니다. '플래닛 오브 라나', '서머빌' [1] 로이배티 2023.05.30 232
123322 Peter Simonischek 1946-2023 R.I.P. [1] 조성용 2023.05.30 153
123321 오늘 마지막 글: 윤석열은 죽을때까지 간호 못받았으면 좋겠네요 [2] 예상수 2023.05.30 548
123320 프레임드 #445 [4] Lunagazer 2023.05.30 105
123319 우주는 어떻게 끝나는가 [3] catgotmy 2023.05.30 267
123318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3] 조성용 2023.05.30 513
123317 크리에이터, 거미집, 킬러 오브 더 플라워문,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파트1 새 예고편 예상수 2023.05.30 239
123316 점심시간을 빌려, 한달만에 잠깐 쓰고 갑니다:비뚤어진 어른들 [4] 예상수 2023.05.30 465
123315 ‘다음 소희’ 없도록…경기도의회, 현장실습생 안전보장조례 입법예고 [1] 왜냐하면 2023.05.30 183
123314 버호벤의 <캐티 티펠>/안데르센/<늑대의 혈족> daviddain 2023.05.30 177
123313 [웨이브바낭] 세상의 모든 영화 감독 지망생들에게 바칩니다 '달은... 해가 꾸는 꿈' [18] 로이배티 2023.05.29 626
123312 Yesterday, Ditto, I am, DibloVI,지브리스튜디오 애니 그리고 수영 [4] soboo 2023.05.29 281
123311 '큐어' 짧은 잡담 [11] thoma 2023.05.29 429
123310 외로우니까 좋네요 [6] catgotmy 2023.05.29 411
123309 누구일까요? [5] 왜냐하면 2023.05.29 208
123308 뻔뻔한 유베/레비/컨퍼런스 리그 [2] daviddain 2023.05.29 135
123307 프레임드 #444 [4] Lunagazer 2023.05.29 83
123306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씬은 무엇인가요? [12] 말러 2023.05.29 528
123305 인어공주 박스오피스 [4] theforce 2023.05.29 55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