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1 14:21
아래 MELM이 올린 '청년세대의 역린. 단일팀 문제'란 글을 읽었습니다. MELM님이 쓰신 무임승차자의 목록은 이렇더군요.
"비정규직, 서남대생, 간호조무사, 기간제교사, 각종 여성지원책, 지역균형선발, 이대 미래라이프대학, 정유라, 정용화, 그리고 북한(아이스하키팀)이에요."
이 부분을 읽고 제가 놀랐던 건 첫번째 비정규직, 두번째 각종 여성지원책 이었습니다. 다른 건 제가 뉴스를 잘 읽지 않아서 몰라도, 이 둘은 제가 반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7년 11월 13일 지한파 경제학자인 후카가와 유키코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합니다. 여기서 후카가와 교수는 중요한 발언을 하는데, "비정규직 생산성이 정규직보다 더 높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왜곡됐다"는 발언입니다. 보통 생산성은 노동자들이 산출하는 생산량을 생산시간으로 나눈 것인데, 한 시간에 생산하는 생산량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높다는 말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한시간에 10개를 만들고, 다른 사람이 20개를 만든다면, 20개를 만드는 사람이 임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옳고 그르고의 문제, 정의의 문제조차 아닙니다. 노동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이 보상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장이 왜곡됐다는 것입니다.
후카가와 교수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이른바 무임승차자는 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이 아닙니다. 생산성이 높아야 이윤이 나기 좋은데, 비정규직이 올려놓은 조직의 전체 생산성을 정규직이 나눠먹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이 무임승차자라니 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걸까요?
2017년 12월 27일에 시사인에는 '인천공항 정규직의 '무임승차론'이 폭로한 것'이란 기사가 실립니다. 기사 읽어보면 인천공항의 한 정규직 사원은 자기는 시험을 치고 들어왔는데, 비정규직은 시험을 치고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과연 정의로운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이 정규직 전환 대상들이 맡은 업무는 '공항운영·시설관리·보안검색·보안경비'이며, 한재영 비정규직 노조 대변인은 “인천공항 용역 노동자들은 평균 7년간 이곳에서 문제없이 같은 일을 해왔다. 그중에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절반 수준을 받고 힘든 조건에서 일해온 사람들도 있다. 이들 모두에게 이제 와서 시험을 보라는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조직이 애초에 왜 사람을 고용하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사람이 뽑는 것인지, 아니면 시험 잘 치는 인간을 보유하기 위해서 사람을 뽑는 것인지 말입니다. 정규직 사원은 '시험을 치고 시험에 통과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정의라고 보지만, 애초에 그 시험을 보는 목적은 조직이 업무를 더 많이, 더 잘, 더 빨리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단 한 번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평생동안 경쟁에서 벗어나 비정규직보다 적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법니다. 이것이 바로 무임승차자 아닌가요? 남들의 생산성으로 버티어지는 조직에서 적게 일하고 많이 월급을 가져간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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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저는 정규직이 필요 없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정규직은 필요합니다. 조직이 그때 그때 시장에서 인력을 사와서 얻는 이득이 있고, 또 인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서 조직이 얻는 이득이 있습니다 (Market vs. Hierachy). 그런데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많은 인력은 사무직, 생산직 등 중간 수준의 일자리를 바랍니다. 아주 고임금 고숙련도 아니고, 아주 저임금 저숙련도 아닌 적당히 연봉이 높고 안정성이 높은 자리를 바란다는 거죠. 시험 쳐서 통과한 사람이나 통과 못한 사람이나 능력은 에 큰 차이가 없고 (KDI 최경수 연구원 말에 따르면 "동질적으로 양성된 청년들") 일자리를 한 번 잡으면 아득바득 마켓에서 싸울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또 시험을 쳐서 올라가기를 바라죠. (9급 공무원이 7급 공무원 시험 치고, 7급이 5급 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조직의 목적이 시험 잘치는 인재를 보유하는 것이냔 말입니다. 일을 해야 조직이 돌아가죠? 그리고 조직이 돌아가야 돈을 벌어오고, 돈이 벌려야 경제가 좋아지죠?
p.s.2.저는 노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노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사인 기사 읽어봐도 인천공항에 비정규직 노조가 없었으면 저렇게까지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귀족 노조'란 말 때문에 노동자가 무슨 귀족이야, 귀족은 노동하고 안살아, 하고 그 어휘에 대단히 진저리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또, 맨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니 정규직 노조의 월급을 깎을 생각을 말고, 공무원의 연봉을 깎을 생각을 말고, 비정규직의 임금을 높일 생각을 해야지 하고 반발하는 분들도 있는 걸 압니다. 그런데, 그런 말만 계속 되풀이할 뿐이지 비정규직 임금 높이는 데 누가 힘을 보태주었나요?
p.s. 3. 노동시장 유연성 이야기를 하면, 또 사람들이 진저리를 내면서 조선일보나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거 뭐 사람 자르기 쉽게 만들겠다는 거 아니야 하고 말이죠. 그럼 다 같이 비정규직 하잔 말이야? 하고 반발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겨레에서 논점을 잘 정리해 둔 게 있으니 그걸 링크합니다. 이 토론에서도 노동시장 양극화에 대해서는 보수, 진보 쪽이 동의를 합니다. 그렇다고 고용보호가 높지도 않고, 뭣보다도 이상하게도 재취업을 잘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이 조직에서 저 조직으로 옮기는 게 쉽지도 않고, 또 실업했을 때 사회에서 안정망을 잘 주지도 않습니다. 한겨레 기사에는 없지만,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해서는 사회 안정망 확충을 먼저 보강해야한다는 것은 꼭 빠져선 안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p.s.4. 비정규직 이야기 하다보니 체력이 다 되었네요. 제가 오늘 여성행진 (Women's march) 다녀오고 맥주 한 잔 하느라 체력이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왜 무임승차자가 아니고 오히려 기차에 불 때는 노동자들인가하는 이야기까진 가지도 못했군요.
2018.01.21 14:53
2018.01.21 15:42
펑
2018.01.21 21:41
2018.01.21 14:55
잘 읽었습니다.
2018.01.21 15:24
2018.01.21 15:26
1. 제 무임승차자 목록은 제가 그들을 무임승차자로 판단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무임승차자로 낙인찍히고 있다는 말이죠.
2. 이건 사실 계급투쟁입니다. 한국같은 시험사회에서 무임승차자는 시험을 노오력이라는 정해진 룰에 따라 통과하려고 하지 않는자들을 멸시하는 호칭이죠.
그런데 시험이란건 자격증을 부여하는 것이고, 자격증은 기회독점 권한입니다. 베버 혹은 E.O 라이트적 의미에서 정확히 계급재생산의 논리죠.
그렇다면 이건 하방압력에 노출된 집단들이 하위계층들과 자신들을 구별지으려는 노력이라고 봅니다.
2018.01.21 15:57
1. 알고 있습니다.
2. 시험은 꼭 자격증을 부여하진 않습니다. 시험은 시험문제에서 물어보는 내용을 알고 있나 살펴보는 도구죠. 오늘도 저는 시험을 봤지만 자격증도 기회독점 권한도 안생겼습니다. 그런데 조직에서 준전문직으로 (중간 숙련) 과업을 수행할 때에는 추진력, 판단력, 행동력, 협업, 커뮤니케이션 스킬 이런 것이 중요한데 그런 것을 공무원 시험이나 공채에서 사지선다로 물어 추려내기는 함들죠.
2018.01.21 16:04
당연히 모든 시험을 의미하는게 아니죠.
다만 한국사회에서 사실상 계급재생산 매커니즘의 중심에 "시험"이 있다는 겁니다.
시험(수능, 대기업/공무원 취업, 각종 고시 등등)을 통과한 사람이 기회를 독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시험들이 그나마 한국사회에서 공정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거죠.
기회, 과정, 결과 모두에서 사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요.
2018.01.21 15:34
그냥 청년층에서 무임승차로 보는 여러가지 예시를 드신건데, 개별론으로 들어갈 문제인가 싶네요. (물론 이런 논의도 중요하고 올려주신 글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유라를 무임승차로 보는 청년의 비율은 매우 높을 것이고, 비정규직 정규화나 세월호 특별전형을 무임승차로 보는 비율은 작겠지요. 개별 사안이 무임승차인진 각자 판단하겠지만, 그렇다고 판단했을때 그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걸 봐야한다는거죠.
2018.01.21 16:16
모 유저분 댓글을 보고 화가나서 쓸데없는 글을 남겼었는데, 다시 보니 무의미한 얘기 같아 펑합니다
2018.01.21 16:21
전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는데요. 전 다만 비정규직이 무임승차자가 아니라고 했을 뿐입니다.
2018.01.21 16:25
대안까진 아니지만 방향 정도는 제시하신 걸로 보여서 ^^; 글 자체는 좋게 봤습니다.
2018.01.21 16:23
그나저나 대한민국 국민들 존경합니다. 추운 날 시위가 이렇게 고된 데 이걸 열아홉번이나 하다니... 힘들어서 여러번 쓰러질 뻔 했네요.
2018.01.21 18:42
복잡한거 있나요 너도나도 힘든 와중에 뼈빠지게 준비해서 시험이라도 하나 합격해놨는데 그 파이 마저도 나누자고 하니까 짜증나는거죠
2018.01.22 14:28
인천국제공항 공사의 대주주는 대한민국입니다. 전통적인 주주이론 shareholder theory에 따르면 주주가 그 파이를 소유하고 있죠. 시험에 통과해서 정직원이 되었다고 해서 그 파이가 정직원의 것인가요? 이해관계자 이론 stakeholder theory 로 보더라도 맞질 않아요. 이해관계자 이론으로 보자면 비정규직이나 정규직이나 둘다 조직의 이해관계자예요.
2018.01.22 21:17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제가 말하는 파이는 이익에 대한 지분을 뜻했던 것은 아닙니다. 배부르고 따스한 정규직의 온기라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이런 반응이 맞다는게 아닙니다. 다만, 이들이 빡친건 이해할만 하다는 거죠. 애초에 자기가 살던 대한민국이 이런 대한민국이 아닌데 '왜 굳이 나한테' 소리 나올만하죠
저도 그 글을 읽고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비슷한 주장이 인천공항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마자 인터넷에 무섭게 돌기 시작했는데요. 사람을 채용하는데 이미 여러해동안 쌓은 경력으로 실력이 검증된 사람을 놔두고도 오직 같은 과목의 시험성적으로 평가해야 공정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생각이 공감을 얻는 것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했습니다. 정규직 채용이나 신입사원 채용에 시험을 치는 것은 경력이 증명되지 않아서 이 사람이 일을 잘 할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기준이 없기 때문에 시험으로 판별하는 거죠. 일단 경력직이 되면 이직할 때 경력과 평판등으로만 판단합니다. 신입사원 채용과 같은 시험을 요구하지 않죠. 왜냐하면 자기들 포지션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이력 사항과 면접으로 충분히 판단이 가능하니까요.
비슷하게 SKY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 채용되거나 요직에 진출을 하는 경우, 인서울 출신도 아닌데 괜찮은 자리를 얻는 경우 이것은 불공정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죠. 일생중 고등학교때 성실하게 (그러나 그 보다는 어쩌면 운이 더 작용했을테지만) 공부한 것만으로 그 사람의 평생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저는 이 경우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탓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가르친 탓이죠. 어린 나이에 과다하게 짊어지는 중압감과 불행을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모두 보상받는다고 구슬렸을 겁니다. 고등학교 때 얼마나 공부에 투자했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는 둥, 마누라 몸매가 바뀐다는 둥 각종 희안안 표어로 아이들을 세뇌시켜놓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자기보다 노력을 안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떨거지 학교 아이들과 같은 대접을 받는 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박탈감따위는 생각지도 않은 채 아이들의 이기심을 비난하기에 정신이 없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박탈감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게 전혀 논리적이지가 않다는 거죠. 회사는 당신이 학창시절 얼마나 공부했는지에 대해 보상을 해 주는 곳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당신이 취업을 위해 남들보다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 보상해주는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회사는 이익을 내기 위한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일을 잘 하는 인재를 뽑으려고 하는 것일 뿐이죠.
문제는 우리 모두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우월하다'는 것에 너무나 집착하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뿌리깊은 신분적 사고는 신분제가 무너져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요. 저는 교육의 영향이 첫번째라고 생각하는데 학교나 가정이나 평등한 시민사회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 하면 무시당하지 않고 사람대접받고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열심히 가르치죠. '공부 안하면 인간대접 못받는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라는 말은 '공부를 잘하면 공부를 못했던 사람을 인간 대접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