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는 없구요.



 - 걍 편하게 '아메리칸 갓'이라고 적었지만 사실 원제에서 '갓'은 복수죠. '갓즈'라고 해야 맞습니다만 뭐... 왓챠플레이에도 '갓'으로 적혀 있더군요.

 원작 소설은 '신들의 전쟁'이라는 기억하기 어려운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전 안 읽어봤는데 기회 되면 읽어보려구요. 최소한 드라마보단 훨씬 재밌을 거라 믿습니다.



 - '섀도 문' 이라는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울 것 같은 이름을 가진 몸매 끝내주는 흑인 청년이 주인공입니다. 시작부터 암울해요. 뭔가 큰 죄를 지어서 교도소에서 3년을 살고 있는데 분위기를 보면 억울한 상황도 아닌 것 같고. 이제 3~4일만 버티면 출소인데 갑자기 소장이 불러다가 오늘 당장 나가랍니다. 왜냐면 그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랑하는 마누라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대요. 그래서 황망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향하는데 일이 계속 꼬입니다. 일찍 나오는 바람에 예약한 비행기를 못 타게 됐는데 당장 출발하는 비행기랑은 못 바꿔준다고 하고. 그래서 공항에서 하룻밤을 노숙한 다음에 다음날 일찍 비행기를 탔는데 이건 또 한 번에 목적지로 가는 게 아닌데 연착이 되든가 어쩌든가 해서 결국 도중에 내리게 되구요. 어쨌거나 개고생 끝에 장례식이 끝나기 전에 도착했더니 절친의 와이프가 다가와서 하는 소리가 '니 마누라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니? 내 남편의 곧휴(...)를 입에 물고 죽었단다.'

 이래서 꿈도 희망도 사랑도 모두 잃고 피폐해진 와중에 공항에서부터 자꾸 주변에 나타나 얼쩡거리던 '미스터 웬즈데이' 라는 이름의 할배가 주급 2000 달러짜리 보디가드 일자리를 제안하고,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으니... 라는 맘으로 그 수상쩍은 일자리를 수락했는데 아무래도 이 할배는 좀 이상해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



 - 굉장히 야심이 큰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에 아주 그냥 겹겹이 레이어가 쌓여 있어서 쏟아지는 정보와 은유들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기회의 땅 미국!'에 도착했다가 꿈도 희망도 다 날리고 전락한 이민자들의 이야기죠. 그 와중에 인종 차별, 총기 문화와 같은 미국의 문제들을 계속 지적해대구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믿으면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뭔가 뉴에이지스런 사상을 바탕에 깔고서는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고대신들이 미디어, 기술과 같은 현대 신들의 멸시와 지배에 맞서 떨치고 일어나는 이야기를 꽤나 낭만적인 비극의 뉘앙스로 보여줍니다. 유명한 신화와 전설, 민담들에 등장하는 신적인 존재들이 궁상맞게 살아가는 현대 미국 시민의 모습으로 원작(?)의 특성에 맞춰 개작된 모습들 또한 상당히 세심하다 하겠구요. 또 당연히 오손 웰즈부터 루 리드까지 미국의 각종 문화들에 대한 인용도 그치지 않고 쏟아지구요. 그런데...


 아. 재미 없습니다. 제가 이걸 어쩌자고 50분씩 16편이나 다 봤는지 모르겠어요. 이럴 시간에 게임이나 할 걸.



 - 재미 없는 이유가 하도 많아서 일일이 떠올리기도 힘들 지경이지만 한 번 간략하게라도 도전해 보겠습니다.


 1) 개인적으로 결정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작품의 톤입니다. 당연히 코미디가 되어야할 것 같은 소재 아닙니까. 절친의 xx를 입에 물고 죽은 아내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은 남자가 고대 신화의 신들을 만나서 벌이는 모험담!! 이잖아요. 그리고 또 보다보면 '이건 대놓고 농담이잖아?' 싶은 상황들이 여럿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런 장면에서 조차도 작품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궁서체로 진지한 다크 환타지입니다. 그것도 아주 느리게 전개되는.


 2) 방금 위에서 말해버렸지만, 진행이 너무 느립니다. 원작 소설의 국내판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주 소재가 '신들의 전쟁'인데 두 시즌이 끝나도록 전쟁은 시작할 기미도 안 보여요. 주인공 부부의 이야기도 계속 닿을 듯 말듯 닿을 듯 말듯 애태우면서 두 시즌 내내 진전이 없구요. 등장하는 신이란 놈들은 다들 지독한 수다쟁이여서 매회 나올 때마다 한 명당 거의 5분에 육박하는 인문학적 연설(...) 찬스를 부여받는데 이게 뭐 소설이라면 모를까. 드라마에서, 그것도 메인 사건이 극단적으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런 연설 장면이 회마다 튀어나오니 나중엔 짜증이 날 지경입니다. 그리고 대립하는 양측 신들이 다 행동이 정말 끔찍할 정도로 느리고 비효율적이어서 보고 있기가 고통스럽습니다. 


 3) 주인공들이 심히 무매력이에요. 섀도와 미스터 웬즈데이 이야기인데, 섀도는 어쨌거나 잘 생기고 몸매 죽여주는(!) 청년이고 웬즈데이도 나름 카리스마 있는 (알 파치노와 가브리엘 번을 섞어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분위기의 배우가 연기합니다) 캐릭터이지만 이야기가 받쳐 주질 않습니다. 특히 섀도의 문제는 심각해요. 애초에 무슨 마음으로 웬즈데이를 따라다니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게 뒤로 가면 갈 수록 심각해지거든요. 시즌2 말미에는 정말 재수 없는 짓들까지 해대는데 도통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두통이 날 지경이더군요. 게다가 추가로 등장하는 조연, 단역급 신들 중에도 매력적인 존재가 거의 없어서 더더욱 흥이 안 나구요.


 4)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지만 하나만 더 짚고 넘어가자면 각본이 뭐랄까... 큰 그림은 되게 대충대충 그리면서 디테일에만 집착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전쟁 준비하러 다니는 웬즈데이와 그를 막으려는 현대신들의 대결! 이 분명 메인 스토리일 텐데 보다보면 당최 그게 어떻게 진행중인 건지 이해가 잘 안 돼요. 내가 뭘 놓친 게 있나? 하고 몇 초 전이나 몇 분 전으로 돌리기를 수십차례는 한 듯 한데 그렇게 돌려봐도 방금 이해가 안 간 부분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악하게 비유를 해 보자면 얼굴만 대빵 크게 잡는 클로즈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되는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원작자가 각색에도 관여했던데 음...;;



 - 황희 정승 모드로 장점을 찾아보자면 그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1)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독점작들 얘기에는 늘 따라오는 얘기인데, 때깔이 참 좋습니다. 돈 많이 들인 티가 팍팍 나요. 액션씬은 좀 잭 스나이더(...) 스타일로 연출되는데 정말로 잭 스나이더 삘이 충만해서 지루할 때도 있지만 역시 때깔은 최상급이구요. 음악도 꽤 잘 쓰고 프로덕션 디자인도 좋고 cg 퀄리티도 수준급입니다. 


 2) 섀도 말고 다른 주인공과 그 파트너(별 거 아니지만 스포일러가 될까봐 이 둘이 누군지는 안 적습니다)의 이야기는 멀쩡하게 재밌습니다. 둘 다 처음엔 별로 호감이 안 가는 캐릭터들인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매력도 생기고 둘 사이에 케미 같은 것도 느껴지고 그래요. 그나마 이 콤비가 없었다면 아마 시즌 1도 다 못 보고 포기했을 거에요. 


 3) 더 이상은 생각이 안 나네요.



 - 결론은 간단합니다. 닐 게이먼의 열혈 팬이라서 영상화 된 건 다 봐야겠다는 분은 보세요. 고대 신들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지식도 많은 분들은 그냥 한 번 도전해볼만도 합니다. 원작(?)의 캐릭터들을 어떻게 변형했는지 따져가며 보면 그래도 좀 재밌을 거에요. 자극적인 드라마 원하신다면 역시 도전해볼만 해요. 고어가 상당히 강한 장면이 자주 나오는 와중에 베드씬도 많고 남자 성기가 그냥 막 나오고 여자들도 자주 헐벗습니다.

 하지만 세상엔 이보다 재밌게 시간 보낼 수 있는 일이 엄청 많을 거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도 많을 것이며 넷플릭스에도 아주 많을 거에요.

 그러니까 보지 마세요.



 - 여기부턴 이제 다 사족 순서인데. 일단 자막이 개판입니다. 시즌1은 그럭저럭 볼만한데 시즌2는 정말 헬이에요. 세상에 'your majesty'를 '고마워요 마제스티'라고 번역하는 사람이 왜 고대신들 나오는 드라마 자막을 만들고 있는 겁니까. 루 리드의 이름을 어떻게 읽으면 '로우 리'라고 적게 되는 거죠. 등장인물들이 서로 말을 높였다가 낮췄다가 하는 건 기본이고 말도 안 되는 의역과 요약 번역이 난무해서 종종 중요한 정보를 괴상하게 전달해버리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이 드라마에 저로서는 흔치 않은 '재미 없음' 판정을 내리게 하는데에 이 자막 퀄리티도 꽤 공헌을 했어요. 가뜩이나 수다쟁이들 투성이인 드라마인데 중간중간 계속 의심가는 문장들이 들어가니 대화에 집중이 안 되더라구요. 오프닝 크레딧이 끝날 때마다 자막 번역자 이름이 뜨는데 보면서 '이거 보고 욕하라는 건가?' 싶었습니다.



 - 시즌2에 나오는 현대신들 중 하나는 컨셉이 무려 한국 아이돌입니다. 배우도 한국인으로 캐스팅했고 (정보를 보니 한국에서 뭘 찍은 적은 없어 보이더군요) 어떤 장면에선 완전히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다다다다 구사하는 장면도 나오고 그래요. 다만 한 가지 소소하지만 확실한 문제가 있다면... 절대로 한국에서 잘 나가는 아이돌일 리가 없게 생긴 배우를 캐스팅했더라구요. 이게 예쁘다 안 예쁘다와는 좀 다른 얘기인데... 암튼 그랬습니다.

 그냥 방탄 때문인지 한국 아이돌이란 존재가 물 건너에서 좀 존재감이 커졌구나... 했네요. 극중에서 되게 인기 있는 걸로 나오거든요.



 - 질리언 앤더슨의 팬이시라면 시즌1은 질리언 앤더슨 장면 발췌 감상으로라도 보실만 합니다. 20세기의 아이콘급 스타들로 이 사람 저 사람 분장해가며 등장하는데 잘 어울리거나, 그냥 예쁘거나, 아님 최소한 재밌기라도 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요. 참고로 시즌2엔 안 나오십니다.



 - 에밀리 브라우닝의 이름은 꽤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실제로 본 영화는 몇 개 없는데, 이 드라마에선 아주 괜찮더군요. 보기에도 예쁘고 캐릭터도 매력적인데다가 비중도 꽤 크니 팬이라면 추천합니다. 뭐 정말 팬이라면 다들 이미 보셨겠지만요. ㅋㅋ



 - 마지막 한 마디는

 보지 마세요. 입니다. ㅋㅋㅋ


 재밌게 보신 분들도 많은 것 같던데 자꾸 보지 말라고 해서 죄송합니다만. 제겐 그만큼 힘든 시간이었어요.

 '다음은 어떻게 될까?'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도대체 시즌 끝나기 전에 뭔가 전개가 되기는 하는 거야?'라는 게 궁금해서 본 드라마는 처음이었습니다. ㅋㅋㅋㅋ

 그리고 시즌2까지 다 봤는데도 전개가 여전히 굼벵이라 결심했어요. 시즌3은 나와도 안 볼 겁니다.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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